<최명식 기자의 버디 & 보기>국내 골프대회도 ‘늑장 플레이’ 제재 고민을

‘빠른 경기 진행을 위해 오늘은 연습 스윙을 금지합니다!’ 만일 골프대회에서 이런 규칙이 생긴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최근 세계정상급 투어 대회에서 늑장 플레이 선수들이 아무런 제재도 없이 잇달아 우승하면서 ‘슬로 플레이 논란’이 재연되고 있습니다. 골프경기에서는 다른 선수가 샷을 한 뒤 40초 이내에 샷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늑장 플레이에 대한 경고나 벌타를 주지 않아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지난 18일 끝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제네시스오픈에서 우승한 J B 홈스(미국)의 늑장 플레이를 두고 “홈스가 저스틴 토머스(미국)의 타이밍을 빼앗았다”고 비난했습니다. 홈스는 대회 4라운드 챔피언조에서 우승 경쟁을 하면서 샷을 할 때마다 1분 이상을 허비했고 심지어 주말골퍼도 그냥 ‘툭’ 쳐서 넣는 50㎝ 거리를 남겨두고도 공 뒤로 물러서 라인을 살피며 시간을 끌었습니다. 지난달 유럽프로골프투어 두바이데저트클래식에서 우승한 브라이슨 디섐보(미국) 역시 늑장 플레이로 동료들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동료 브룩스 켑카(미국)는 “공을 치는 데 1분 15초에서 1분 20초가 걸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그는 항상 2개의 클럽을 갖고 고민하는데 선수라면 자기 클럽의 적절한 거리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습니다.

늑장 플레이를 지켜봐야 하는 동반 선수들은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내심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화를 삭이지 못해 평정심을 잃으면 자신의 스윙을 망가트리게 됩니다. 주말 골퍼도 동반자가 거리 계산을 캐디에게 늘 묻거나 연습 스윙을 수없이 반복하고, 캐디가 클럽을 갖다 주기만 기다리며 시간을 허비한다면 “두 번 다시 같이 안 친다”고 다짐하겠죠. 주말 골퍼들도 이럴진대 1타에 수억 원이 걸린 대회라면 더하겠지요.

슬로 플레이는 골프 발전을 저해한다는 확대해석도 나옵니다. 선수의 지루한 ‘루틴’만 이어진다면 대회장을 외면하고, 채널을 돌리게 해 결국엔 시청률을 떨어트립니다. 더 나아가 골프가 더는 젊은 세대에게 다가갈 이유가 없도록 만든다는 얘기죠. 미국의 한 시청률 조사기관은 2014년 PGA투어 TV 시청자 중 63%가 55세 이상이었고 35세 미만이 12%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습니다. 이는 미국프로농구(NBA)의 시청자 47%가 35세 미만인 것과 대비됩니다. 지금처럼 늑장 플레이에 대한 제재가 없다면 젊은 세대를 더는 TV 앞으로 끌어오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도 합니다. 4월부터 시즌이 시작되는 국내 남녀 골프대회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대목입니다. 6시간씩 소요되는 고무줄 경기 시간은 선수나 팬들을 지치게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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