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모의 세종이 펼친 ‘진짜 정치’>“누구나 잘하는 게 있다” 人有一能… 인재 유용성 살려준 ‘강점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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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가지씩은 잘하는 게 있다.”

“인유일능(人有一能)”. 완전한 인재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씩은 누구나 탁월하게 잘할 수 있다는 이 말은 1444년 세종이 정척(鄭陟)에게 사역원(司譯院)의 총책임을 맡기면서 한 말이다. 정척은 태종 때 과거에 합격한 이후 외교문서 담당 기관인 승문원에서 실력을 키운 인재였다.

당시는 석 달 전에 최만리가 언급한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 즉 “(언문 창제 사실이) 중국에라도 흘러 들어가면 혹시라도 비난해 말하는 자가 생겼을 때” 노련하게 대처할 인재가 필요한 시기였다. 이뿐만 아니라 그즈음은 일본과의 외교에서도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신숙주 등에 의해 체결된 ‘계해약조’(1443년)에 의거해 조일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나가야 했다. 따라서 외교문서는 물론이고 지리와 예법에도 두루 밝은 정척에게 외교 지원기관인 사역원을 맡게 한 것이다.

완전한 인재란 없으며 “취할 점(可取)”을 잘 찾아 쓰면 누구나 유용한 인재(有用之才)가 될 수 있다는 게 세종의 인사 철학이었다. 이른바 강점경영은 혜강 최한기에 의해 부잣집의 살림살이로 비유된다. 최한기에 따르면 살림 꾸리는 사람은 평소 갖가지 그릇과 물건들을 두루 장만해 뒀다가 일이 생기면 적재적소에 쓰곤 한다. 따라서 사단취장(捨短取長), 즉 단점은 버리고 장점을 취하며, 잘못을 덮어두고 장점을 쓸 수밖에 없다. “발길질 잘하고 잘 무는 말이라야 천 리를 달릴 수 있고, 잘 뛰고 날쌘 매여야만 새와 짐승을 사냥할 수” 있는 법이니, 그 잘하는 점을 취해 쓰는 사람이 살림 잘하는 자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세종 때 박연의 생각은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1431년에 박연은 맹인음악가들에게 벼슬을 줄 것을 제안했다. “관현의 음악을 맡은 맹인은 모두 외롭고 가난해 하소연할 데가 없는 사람들”인데, 악기 익히는 일이 고생스러워 젊은 맹인들이 모두 점치는 일(卜筮)로 몰려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국가 행사 등에 꼭 필요한 음악 연주자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박연이 제시한 해법은 뛰어난 맹인 음악가에게 정규 관직을 제수하는 것이었다(경력과 능력에 따라 7품과 5품). 맹인 음악가를 양성해 국가에 기여하게 하고, 본인은 물론 자손들에게도 벼슬길을 열어주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맹인 음악가를 불쌍히 여겨서가 아니라 “시대에 쓰임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관직을 주고 미래를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한 점이다. 맹인들이 앞을 보지 못하지만 “소리를 살피는 데 뛰어나기” 때문에, 예로부터 거문고 타면서 시를 읊는(絃誦) 임무를 그들에게 맡겨왔다는 것이다.

“세상에 버릴 사람은 없으니” 그 잘하는 점을 취해 쓰자는 박연의 제안을 세종은 받아들였다. 세종은 맹인 음악가뿐만 아니라 나라에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 즉 환과고독(鰥寡孤獨)과 노쇠한 자(疲老)와 폐질(廢疾) 환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먼저 생각하며 정책을 수립했다. 기근이 심할 때는 관리들에게 “두루 자세히 살펴서 굶지 않고 처소를 잃지 않도록 더욱 마음 쓸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지체장애자는 병역을 면제해줬고, 그들을 봉양할 장정을 한 사람씩 지원해주는 제도가 마련된 것도 이 시기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 지어 특별히 장애인을 차별하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근·현대에 이르러서”라는 정창권 교수의 연구는 그 점에서 괄목할 만하다. “과거의 장애인은 비록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몸은 좀 불편했을지라도, 장애에 대한 편견은 훨씬 덜했다”는 정교수의 책(‘역사 속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을 보면서 과연 우리는 알고 있는 역사는 어디까지인가 새삼 되돌아본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