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담판’ 결렬 이후>“美 제재해제땐 北 협상장 안나와… 비핵화까지 유지해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90년대부터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과 6자회담 등 북핵 협상에 관여했던 이용준 전 외교통상부 차관보가 3일 광화문 인근 공원에서 2차 미·북 하노이 정상회담 결과를 평가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

이용준 前외교차관보 인터뷰

김정은 오판·强手에 판 깨져
北 누군가가 책임져야 할 것
對美 협상라인 숙청 가능성

美·北협상 교착 장기화 전망
실무·정상회담 재개 어려워

美는 北 ICBM 폐기가 목적
韓 위협은 중·단거리 미사일
폐기압박·방어체계 강화해야

북핵 문제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이용준(63) 전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3일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온 이유는 대북제재 해제 때문이며, 제재가 해제되는 순간 북한은 더 이상 협상장에 나오지 않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1990년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북한 경수로 협상 대표, 2006년 북핵 담당 대사와 북핵외교기획단장 등을 역임했고 ‘게임의 종말: 북핵협상 20년의 허상과 진실’에 이어 최근 ‘대한민국의 위험한 선택’을 펴내는 등 실무경험과 이론을 두루 겸비했다.

이 전 차관보는 이날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월 27∼28일 2차 미·북 정상회담 결과와 관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단을 잘못해서 강수를 뒀고, 이에 대해 누군가가 책임져야 할지도 모른다”면서 북한의 대미 협상 라인 숙청 및 교체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2차 미·북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원인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판을 깬 이유는 두 가지다. 북한이 너무 큰 걸 요구하기 때문에 이걸로는 미국 국내에서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는 것이 첫 번째다. 또 북한이 협상에 나온 이유는 단 하나, 제재 해제다. 지금 북한 수출이 10분의 1로 줄었다. 북한은 유엔 대북제재 결의 마지막 5개만 해제를 요구했다고 했지만, 마지막 3개가 결의의 핵심으로 사실상 100% 제재 해제를 요구한 셈이다. 반면 북한 핵시설은 미국이 제기한 강선 외에도 최소 1∼2곳이 더 있을 텐데 영변은 전체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 이를 대가로 사실상 모든 제재를 해제하라고 하면 흥정이 안 된다. 제재를 해제하고 나면 북한이 다음번에 미국과 협상을 할 이유가 없다. 이게 트럼프 대통령이 판을 깬 두 번째 이유다. 미국이 북한의 진짜 비핵화를 만들어 내고 싶다면 장기든, 단기든 모든 핵이 해제될 때까지 제재라는 레버리지를 끝까지 붙잡고 있어야 한다.”

―북한도 상당히 당황한 듯하다.

“상황 판단을 잘못한 것이다. 너무 강수를 둔 것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북한이 너무 과신하고 상황을 낙관했다.”

―향후 북핵 협상은 어떻게 전망하나.

“이번에 양 정상이 직접 담판하려다 판이 깨졌기 때문에 앞으로는 실무협상 없이 정상이 또다시 담판을 갖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실무협상을 하더라도 별 진전이 없고, 그렇다고 위기로 가지도 않는 장기적 지지부진 상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상황이 고착화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제재를 유지한다면 경제난으로 북한 체제는 약화돼 결국 지금보다 더 융통성 있는 입장으로 변화될 가능성도 있다. 이 단계까지 가려면 1∼2년이 아닌 장기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

―문 대통령은 미·북 회담 결렬 이후 3·1절 기념사에서 ‘신한반도체제’를 발표했는데.

“신한반도체제에는 남북관계 발전구상만 있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안보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한국 외교·안보가 남북관계의 종속변수가 되면서 기본적으로 과거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정책과 매우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고 본다. 현 정부의 북핵 문제 대처나 안보문제 등은 다른 무엇보다도 정부 정책의 핵심인 남북 관계에 맞춰져 있어 바뀌기 어려울 것 같다.”

―문 대통령은 ‘동아시아 철도공동체’도 다시 언급했는데, 현실성이 있나.

“북한 철로의 부실과 기관차 노후화는 아주 작은 문제다. 진짜 문제는 전기다. 해방 직후부터 북한이 전력이 더 풍부했기 때문에 철도·난방 등 모든 주민 생활이 전력을 이용하는 형태로 구성돼 있다. 이후 경제가 나빠지니까 전기량이 모자라서 모든 게 ‘올스톱’됐다. 철도를 연결하려면 먼저 전력이 있어야 한다. 결국 전기까지 대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전력망 교체까지 정말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

―한국은 향후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은 대북 협상에서 자국의 안보를 위한 비핵화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를 위한 협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위협되는 것은 북한이 실전 배치한 1000여 기의 중·단거리 핵미사일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고, 미·북 협상만 쳐다보고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는 탄도탄요격미사일(ABM) 방어체계를 확립하고, 재래식 화력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미·북 핵협상과는 별도로 북한에 대해 핵무기와 중·단거리미사일의 폐기를 강력히 요구하는 남북협상을 시작해야 할 때다.”

―한·미 동맹도 균열이 많고,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다.

“한국과 미국은 동맹국 간 신뢰가 위험 수준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한국 정부가 지난 수년간 미국의 가상적국인 중국에 대해 과도한 접근을 추진한 결과다. 이로 인해 미국은 북핵 문제나 한반도 안보에 관한 민감한 정보를 한국과 전면 공유하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대일 관계에서는 과거사와 현재 및 미래와의 협력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안보·북핵 문제에서 한·일 협력은 중요한 요소다.”

신보영·박준희 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