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카페>AI·로봇…‘제2 기계시대’ 걸맞은 고용·교육 시스템 구축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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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수의 글로벌 경제 이야기 - (29) 기술진보와 2000년대 고용률의 이상징후

20세기 ‘녹색혁명’ 기술진보는
생산성 향상·새 노동수요 창출

2000년대 들어 로봇 등 자동화
美 등 구조적실업 증가요인으로

舊노동 수요·소득은 줄어들고
新노동으로의 ‘복귀효과’ 미미

생산성-일자리·소득 ‘디커플링’
새 트렌드 대처할 해법 모색을

#1. ‘기술은 우리가 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지금 그 기술이 많은 이를 쓸모없게 만들고 있다.’ 창간한 지 160년이 넘었고 애플 창업자 미망인이 인수해 더 유명해진 정치 문화 평론지 디 애틀랜틱(The Atlantic)에 기고한 노아 스미스의 ‘노동의 종말’에 나오는 대목이다.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위협하고 있다는 경고다.

알파고와 이세돌 간 대국으로 우리 사회가 눈떴던 딥 마인드로 상징되는 기술혁명의 파장에 대해 많은 이가 예측했다. MIT의 에릭 브리뇰프슨과 앤드루 매카피는 2011년 공저 출간한 ‘기계와의 전쟁’(Race against the machine)에서 인간이 패배할 위험을 경고했다.

기술 발전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는 사회적 불안은 오랜 역사를 지닌다. 19세기 초, 러다이트(Luddites)로 알려진 영국의 섬유장인그룹은 자동화된 직기를 파괴하는 기계파괴운동을 일으켰다. 후세에 러다이트는 새로운 기술을 두려워하거나 반대하는 사람, 즉 구(舊) 노동자를 지칭하게 됐는데 여기에는 나름대로의 합당한 이유가 있다.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기술 진보가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것은 케인스가 말했던 유효수요의 부족 때문이다(김경수의 글로벌 경제 이야기 6 참조). 기술혁신으로 생산성이 100배 증가할 때 만약 사회적 수요, 즉 유효수요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노동자의 100분의 1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해고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기술 진보는 나라의 경제성장과 국민 복지 수준의 잣대인 생산성을 높이는 동력이다. 긴 호흡에서 실질임금과 생산성은 높은 상관관계를 가질 뿐 아니라 ‘생산성 → 실질임금’의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이 인과관계는 실질임금의 증가율과 생산성 증가율이 높은 상관관계를 가지는 정형화된 사실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기술 진보가 노동을 대체함으로써 이룬 생산성 향상은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해 노동수요를 증가하게 한다. 미국을 예로 들자면 1900년 노동인구의 41%가 농업에 종사했으나 100년 뒤 2%에 불과해졌다. 1900년 당시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을 의료, 금융, 정보기술, 가전제품, 여가 및 엔터테인먼트가 농업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터에 따르면 녹색혁명은 신체 및 인지 기술에 대한 요구와 인간의 삶까지 변화시켰다. 여성이 고용시장에 뛰어들면서 고용률이 상승했으며 사람들의 노동시간이 줄어든 대신 여가시간은 늘어났다. 출산율이 하락하는 인구구조변화도 뒤따랐다. 이 모든 것이 생산성 향상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2. 첫 번째 그림은 한국, 미국, 일본, 호주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경제활동참가율(15∼64세 인구 가운데 고용됐거나 일자리를 찾는 경제활동인구의 비율) 추이를 보여준다. 이 비율이 우리나라, 일본, 호주를 비롯한 OECD 회원국에서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는데 ‘생산성 → 실질임금 → 고용’의 인과관계를 시사한다. 즉 기술 진보가 한편으로는 노동을 대체하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노동수요를 이끌어 내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하는 데 기여한 것이다.

다만 미국은 2000년대 들어 감소하는 예외적인 모습을 보인다. 경제활동참가율뿐 아니라 인구에서 차지하는 취업자 비율인 고용률도 마찬가지로 감소하고 있다. 20년 가까이 진행된 미국 고용패턴의 변화는 현재 학계의 주된 관심사다.

두 번째 그림은 미국의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 취업자의 상대적 비율을 보여준다. 농업, 제조업의 고용비율이 줄어드는 대신 서비스업의 고용비율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는데 산업화된 나라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산업별 고용비율이 바뀌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술 진보 속도가 산업별로 다르기 때문이다.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에서 기술 진보는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 순으로 일어났으며 그에 따라 고용도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다시 서비스업으로 이동했다.

한편 산업 간 고용의 이동이 원활하지 않을 때 실업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실업은 구조적이다. 경기순환에 따라 변동하는 경기적 실업은 통화와 재정정책을 통해 대응할 수 있으나 구조적 실업은 거시정책으로 치유될 수 없다. 더욱이 구조적 실업이 장기화될 때 구직을 단념하고 고용시장에서 이탈, 비경제활동인구로 편입되는 실망실업자가 늘어나 경제활동참가율이 감소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제무역은 교역 상대국 산업의 기술 진보가 자국 산업의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러스트벨트는 1980년대 일본에 밀려 불황에 빠진 미국의 중공업이 위치한 오대호 연안에서 시작됐다. 2000년대 들어와 중국산 수입품이 쏟아져 들어오자 러스트벨트는 제조업이 있는 미국의 대부분 지역으로 확대됐다. 한국판 러스트벨트도 수출시장에서 중국에 밀린 수출제조업이 밀집한 지역에서 생겨났다.

지난 20년간 미국의 경제활동참가율이 하락하는 현상을 놓고 학계는 무역과 함께 로봇의 도입과 같은 자동화를 핵심 요인으로 들었다. 이 밖에 중년 세대의 약물중독, 청년 세대의 여가 선호, 최저임금 등도 작지만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지적된다. 과연 미국이 겪는 고용의 이상징후가 앞으로 글로벌 경제가 당면할 전조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3. 자동화(Automation)는 고용과 관련해 가장 많이 검색되는 단어다. 미래를 예측하는 다수 서적과 언론 기고문은 기계가 인간을 대체한다는 섬뜩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누차 강조했듯이 자동화는 노동을 대체해 생산성을 높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노동수요를 창출하는 보완성을 속성으로 가진다. 즉 컴퓨터가 일상적이고 정형화된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을 대체할 수 있지만 동시에 문제해결능력, 적응력 및 창조성이 요구되는 노동의 비교우위를 더욱 크게 한다. 그러므로 비록 자동화의 영역이 급속히 확장되고 있으나 유연성, 판단 및 상식이 요구되는 작업에서 인간을 대체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정보기술(IT)과 은행업의 고용 간 보완성은 널리 알려진 사례다.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1995∼2010년 ATM의 보급이 4배 증가했지만 은행 직원은 더 늘어났다. 지점당 은행 직원이 3분의 1 이상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 지점 수가 40% 이상 늘어났기 때문이다. 비용절감을 통해 ATM이 간접적으로 은행 직원을 늘린 것이다. IT는 신용카드, 대출, 금융투자상품 판매 등 은행 직원의 업무 다변화를 가능하게 했다.

컴퓨터가 노동에 대한 전반적인 수요를 줄이지는 않았다. 줄어든 것은 중간층 일자리다. 대신 컴퓨터가 하기 어려운 비일상적인 업무가 늘어났지만 전문직 일자리만은 아니다. 식당의 서빙과 같이 상황에 따라 기민하게 대처해야 하는 수작업이 요구되는 일자리도 늘어났다. 그러나 수작업에 필요한 기술은 쉽게 습득 가능하기 때문에 낮은 임금의 직종이 대부분이다.

그 결과 녹색혁명과 달리 자동화는 소득의 양극화를 초래했다. 따지고 보면 미국 청년 세대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낮아진 것도 저임금을 받고 허드렛일을 하기보다 부모 집에 얹혀살면서 넷플릭스나 비디오게임으로 여가시간을 즐기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에서 비롯한 것이다.

기계시대(Machine age)의 스타 다론 아세모글루는 자동화와 같은 기술발전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생산활동에 따르는 과제로 함축했다. 자동화는 생산의 과제를 노동에서 자본으로 대체하는 변위효과(Displacement effect)를 가진다. 그러므로 자동화는 생산활동의 부가가치, 즉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노동의 몫을 줄인다. 한편 자동화는 노동이 비교우위를 갖는 새로운 과제를 창출함으로써 균형을 잡아준다. 새로운 과제는 자동화에 따른 생산성 향상을 포함해 노동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일으키는 복귀효과(Reinstatement effect)를 동반함으로써 반대로 노동의 몫을 높인다. 쉽게 말하자면 자동화는 구 노동의 수요와 소득을 줄이는 대신 신(新) 노동의 수요와 소득을 늘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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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47∼2017년 70년에 걸친 미국의 58개 산업을 분석한 공동연구에서 지난 30년이 그 전 40년과 다른 패턴이 일어났음을 보고했다. 노동의 변위효과가 복귀효과를 압도한 것이다. 그 요인으로 미약한 노동의 복귀효과와 낮은 생산성 증가를 들었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노동을 절약하는 자동화가 생산비용을 줄였을 뿐 생산성 개선이 경제 전체로 확산될 만큼 크게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자동화와 낮은 생산성증가가 구 노동을 대체할 만큼 신 노동을 창출하지 못했고 그 결과 노동의 몫은 정체됐다.


#4. 무엇이 자동화를 이끄는 것일까. 아세모글루는 에이징이라고 설명한다. 이들 연구에 따르면 로봇과 같은 자동화는 일본, 독일, 한국 등의 나라보다 덜하나 미국 등 인구통계학적 변화가 크게 일어나는 산업국가에서 더 많이 진행되고 있다. 자동화는 에이징에 따라 상대적으로 희소해진 중년 노동을 대체하고 있으며 중년 노동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산업에서 더 크게 진전되고 있다.

자동화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당연하다. 그러나 더 넓은 시야에서 에이징이 70년 전 녹색혁명을 계기로 시작된 것을 생각하면 (녹색혁명이라는) 기술진보는 또 다른 (자동화라는) 기술 진보를 낳았다. 경제가 경로 의존적 행태를 보이며 진화하고 있으며 생산성이 진화의 동력인 것이다. 아세모글루는 기술 진보가 에이징에 반응한 것을 감안할 때 많은 사람이 믿는 것처럼 에이징이 생산성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찾기 어렵다고 보고했다. 대신 자동화는 노동의 몫을 줄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브리뇰프슨과 매카피가 연작으로 출간한 ‘제2 기계시대’(The second machine age, 2014)에서는 글로벌 경제가 인공지능, 네트워크 통신 및 디지털화를 최대한 활용하는 스마트 머신으로 도약할 기회가 왔음을 주장했다. 다만 1차 기계시대와 달리 기술 진보는 디지털 경제 영역에서만 집중됐고 그 결과 생산성 증가는 일자리와 소득과 디커플링이 됐다. 1차 기계시대의 총아였으나 지금은 도산한 코닥 이스트먼이 한때 14만5000명의(대부분 중간층) 일자리를 제공했으나 페이스북·인스타그램은 4600명에 불과하다. 대신 슈퍼리치를 배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들은 스마트 머신이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이라는 러다이트의 주장을 부인한다. 제2기계 시대에 걸맞은 교육 시스템이 도입될 때 기계를 상대로 경쟁하는 대신 기계와 함께 경쟁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상식적이나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이다. (문화일보 2월 13일자 28면 28 회 참조)

성균관대 명예교수, 전 한국경제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