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편지 쓰기>할머니 가슴에선 낙엽 타는 그윽한 냄새가 나요

세종교육감賞 김현서

할머니, 처음으로 할머니께 편지를 씁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이름도 예쁜 구례군 광의면 연파리, 그곳에는 언제라도 달려가면 따뜻하게 반겨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셨지요. 저의 어린 날 추억이 머무는 외갓집, 할머니께 가는 날이면 언제나 설렘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차가 마을에 들어서면 먼저 알고 바쁘게 뛰어나오시던 우리 할머니, 와락 달려가 안기면 할머니의 가슴에서는 낙엽이 타는 것 같은 그윽한 냄새가 났습니다.

그리운 할머니, 더운 여름철이면 시원한 강바람을 따라 섬진강으로 다슬기를 잡으러 갔어요. 저와 동생에게는 한사코 얕은 물가에서 놀고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면서 할머니와 엄마는 옷이 다 젖은 채 깊은 곳으로 들어가 반짝반짝 윤기 나는 갈색 다슬기를 잡으셨어요. 그런 저녁이면 된장을 풀어 다슬기국을 끓여 주셨지요. 밤에는 텃밭에서 금방 따온 맛있는 옥수수도 삶아 주셨지요. 할아버지께서 피워주신 알싸한 모깃불 냄새를 맡으며 평상에 누워 바라보던 밤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을 아직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을 소중한 줄도 모르고 지냈던 저는 그 행복이 아픈 그리움이 된 후에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2년 전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던 추운 겨울날, 통곡하는 어머니의 울음 속에서 저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받은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새롭게 느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병환 중에 계시면서도 손주들 대학 등록금이라고 일일이 봉투에다가 이름까지 써서 챙겨 주셨어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할머니께서는 애써 슬픔을 감추셨어요. 평생을 허리 펴지 못하고 열심히 일하셔서 삼 남매를 훌륭하게 공부시켰던 할머니께서 그 부지런한 일손을 놔 버리시고 의욕을 잃으신 채 한동안 무기력하게 지내셔서 어머니는 무척 애를 태우셨어요. 저는 홀로 계신 할머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납니다. 할머니께서 주셨던 많은 사랑은 이제 보물이 돼 제 가슴에 차곡차곡 쌓여 있어요. 그 소중함을 잊지 않고 날마다 생각하는 손녀가 될게요.


* 문화일보 후원,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주최 '감사편지 쓰기' 공모전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