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핵보다 치명적인 한·미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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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신 정치부 부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베트남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점진적·단계적 접근의 비핵화 방식에 합의할 것이란 모두의 예상을 깨고 김정은의 주특기인 벼랑 끝 전술로 회심의 역공을 폈다. 핵과 생화학무기, 탄도미사일 등 대량파괴무기(WMD) 폐기를 비핵화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트럼프는 ‘전부 아니면 전무’ 식 초강경책으로 김정은을 코너로 몰아붙였다. 김정은의 치명적 약점을 간파했거나, ‘신의 한 수’로 불릴 주도면밀한 전략적 계산이 숨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을 협상의 우군으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을 후원군으로 비핵화 협상 판세를 주도해왔다. 그런 김정은이 이번 협상 과정에서 치명적 약점을 노출했다. 석탄·섬유·수산물 수출 통제와 노동자 해외 송출 금지, 유류공급 금지 등 5개 유엔 제재 해제에 매달린 것이다. 실제 경제 제재가 본격화한 2017년부터 북한 경제는 몰락 일보 직전이다. 지난해 성장률은 -5%대, 수출은 -88%로 급락했다. 초강력 대북 제재는 북한 경제의 숨통뿐 아니라 김정은 체제 버팀목인 통치 자금줄까지 말리며 그의 숨통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김정은 일가 해외도피 자산 추적 및 동결 조치도 효과를 거두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1년 이상 해외 북한 가상계좌 등 불법 거래 은행들을 이 잡듯이 뒤진 결과 통치자금으로 보이는 수많은 계좌를 적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북한의 외환위기설도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협상에 앞서 “서두를 필요 없다”며 여유를 부린 것은, 시간은 미국 편이란 계산이 깔려 있다. 미국은 지난해 하반기 RC-12X 특수정찰기를 2배로 늘려 북한 선박의 불법 환적(換積)을 물 샐 틈 없이 감시했다. 지난 1년간 정찰 위성 등 정보자산을 총동원해 민둥산이 된 북한 산악지역 핵·미사일 시설을 이 잡듯이 뒤져 큰 성과를 거뒀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0일 “눈 한번 깜박임 없이 북한을 본다”고 한 배경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겉으론 서로 웃지만, 뒤로는 한 치 양보 없는 혈전을 벌이고 있다. 정작 협상의 당사자인 우리는 협상 판에 끼어들지도 못하고 핵 인질에서 벗어날 방안 한 번 요구하지도 못하고 있다. 하노이 협상 결과를 낙관하며 남북 경협 속도전과 ‘신한반도 체제’ 구상을 선언한 문 대통령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됐다. 최근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비확산 군축 특보가 “하노이 회담의 패배자는 회담 당사자들이 아닌 자신의 의제인 남북 경협을 가능하게 해줄 비핵화 조치와 제재 완화를 기대한 문 대통령”이라고 꼬집었다. 우리는 3대 한·미 연합훈련 폐지에도 동의했는데 이는 악수가 될 수 있다. 훈련 없는 군대는 존재 의미를 상실한다. 70년간 북한 도발을 억제해온 안보의 버팀목인 한·미 연합방위력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김정은이 핵을 가지고 버틸수록 정권의 몰락을 재촉할 것이란 위기감 없이, 핵을 순순히 내려놓을 것이란 생각은 엄청난 착각이다. 베트남과 대만에서 철수한 ‘닉슨 독트린’의 재판이 될 수도 있는 ‘트럼프 독트린’이 현실화하는 순간, 주가와 부동산은 반 토막이 날 것이다. 북핵보다 더 치명적인 위험은, 한·미 간의 불협화음과 동맹의 균열이다.

cs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