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이해찬의 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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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1982년 전두환 정권 시절 한국기독교 청년연합회 김철기 총무가 외국 기자들에게 반정부 유인물을 돌렸다는 혐의로 국가모독죄를 적용받아 기소됐다. 1심에서는 유죄, 2심에서는 무죄가 나왔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유죄로 결론 내렸다. 당시 대법관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외국인에게 유인물을 배포한 것만으로는 모독행위로 볼 수 없다”며 소수 의견으로 무죄를 주장했다. 결국 김 총무는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앞서 국회의원을 지낸 양성우 시인은 박정희 시대인 1977년 6월 일본 잡지 ‘세카이(世界)’에 ‘노예수첩’이라는 시를 기고했다. 양 시인은 대한민국을 독재국가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국가모독죄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유신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해외 언론을 통해 자신을 비난하는 주장이 빗발치자 이를 단속하기 위해 1975년 3월 공화당과 유정회가 야당을 배제한 채 날치기로 형법 제104조 2항(국가모독 등)을 신설했다. 내국인이 국외에서 대한민국 또는 헌법에 따라 설치된 국가기관을 모욕 또는 비방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하도록 했다. 국가모독죄이지만 사실상 박 전 대통령 개인에 대한 비방을 막기 위해 만든 법이라 ‘국가원수 모독죄’로 더 알려져 있다. 서슬 퍼렇던 유신 시절 술자리에서 조금만 정부를 비판해도 바로 잡혀갔기에 정권 비판은 목숨을 걸어야 했다. 결국 6월 민주 항쟁 이후 대표적인 ‘5공 악법’으로 규정돼 폐지됐다. 지금도 독재국가나 태국, 네덜란드 등 입헌군주국 등에서는 ‘왕실 모독죄’ 등의 형태로 정권에 대한 비판을 억누르고 있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야당이던 새누리당이 ‘육시랄 놈’ 등 육두문자로 비판했지만 어떤 법적인 조치도 하지 않았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김정은 대변인’ 발언에 국가원수 모독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화 선봉에 섰던 이 대표가 ‘5공 악법’을 되살려 단죄하자는 것이다. 최근 여당은 해직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속 조합원 100명을 복직시키기 위한 특별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 대표는 2004년 총리 시절에 “신분과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의 불법행위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해임 조치를 했다. 지금은 과거를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