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orld & Idea >정치전·심리전도 중요하다

황성준 논설위원

크림병합 5년, 러시아 굳히기
하이브리드 전쟁의 虛實 논란
한반도에서는 적용될 여지 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8일 크림반도 병합 5주년을 맞이하여 크림반도를 방문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크림반도에 위치한 2곳의 화력발전소 확장 기공식에 참석해 “새로운 발전소들이 크림반도의 전력 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크림반도는 지난 2015년 말부터 우크라이나가 전력 공급을 중단해 심한 전력난을 겪어왔는데, 이번 확장 가동으로 전력난이 해소되게 된 것이다. 이런 푸틴의 행보는 크림반도 영유권을 절대로 내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자국 영토에 대한 강제 점령으로 규정하면서 줄기차게 반환을 요구하고 있고, 미국 등 서방 진영도 우크라이나 주장에 동조해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다.

크림반도 병합 5주년을 계기로 ‘하이브리드전(戰)의 허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하이브리드전은 정규전과 비정규전, 정치·심리전 등이 배합된 전쟁 방식으로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의 2006년 레바논 전쟁 이후 개념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14년 크림반도 병합과 동부 우크라이나 내전 이후 미래전의 주요 양상으로 주목받게 됐다. 전쟁에서 정치·심리전 등 비군사적 수단이 강조되고, 군사작전의 주체도 정규군을 벗어나 다변화돼야 할 필요성이 대두한 것이다. ‘러시아 하이브리드전 이론’으로 확대 해석된 ‘게라시모프 독트린’이 악명을 떨쳤으며, 하이브리드전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인 양 여겨지기도 했다. 특히, 2015년 9월 30일 러시아군이 1500㎞ 떨어진 4척의 군함에서 발사된 26발 순항미사일과 23대 항공기로 112개 시리아 목표물을 공격, 옛 소련권을 벗어난 지역으로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음을 과시하자, 러시아군 경계론이 부각됐었다.

하이브리드전의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 크림반도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세바스토폴 군항에 러시아군이 주둔하고 있었으며, 러시아계 주민들이 적극 호응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러시아계 주민이 다수인 동부 우크라이나에서는 성공했으나, 그 이상 확대에는 실패했다. 따라서 ‘크림 방식’이 동유럽은 물론 옛 소련 국가에서 통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또, 시리아에서 보여준 작전 능력은 1991년 걸프전 당시의 미군 수준에 불과하다는 가혹한 평가도 많다.

러시아는 2008년 8월 조지아 전쟁 이후 본격적인 군 개혁에 돌입했다. 워낙 압도적이기에 승리를 거뒀지만, 합동 및 제병협동 작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지휘 통제 및 통신에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군 통신 두절로 아나톨리 흐룰료프 제58군 사령관이 종군기자의 위성폰으로 예하 부대와 연락했으며, 투입된 탱크 T-62와 T-72M의 반응장갑은 빈껍데기였다.

이에 ‘2008년 군 현대화 프로그램’이 본격화됐다. 골자는 1991년 소련 해체 당시 230만이었던 병력을 100만 수준으로 감축해 정예화하고, 사단 중심 체제를 여단 중심으로 바꿔 명령·지휘 구조를 간소화하고, 기동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대규모 재래전은 핵전략으로 억지하고, 소규모 제한전에 주로 대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2013년이 돼서야 ‘포르탼키’라 불리는 발싸개 대신에 양말이 보급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군 개혁은 쉽지 않다. 또, 정규전을 중시하는 마흐무드 가레예프의 ‘전통파’와 현대 네트워크 중심전을 강조하는 블라디미르 슬립첸코의 ‘혁명파’가 주류인 알렉세이 아르바토프의 ‘현대파’에 대한 비판을 늦추지 않고 있다.

적정 병력과 예산도 문제다. 정치적 이유로 징집 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줄이자, 병력 수급과 병사 숙련도에 문제가 생겼다. 이에 지원병제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 외국인이 군에 복무하면 러시아 국적을 주는 제도를 통해 중앙아시아 젊은이를 유인하고 있다. 그러나 결과는 긍정적이지 못하다. 물론 병력 수가 중요하지 않다는 혁명파도 있으나, 100만 이하로는 긴 국경선을 방어할 수 없다. 그나마 미·중 갈등으로 중국군의 중심이 남쪽으로 이동해 있기에 다행이지, 러·중 국경선은 비워진 상태란 것이다. 겉으론 미국을 경계하면서도 내심 중국을 우려하는 러시아군 수뇌부가 고심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돈이 문제다. 군 개혁 초기엔 오일 달러가 있었으나, 원유 값이 하락하고 서방의 경제 제재가 지속하면서 첨단무기 도입에 차질을 빚고 있다.

러시아 논쟁을 보면, 하이브리드전이 만능은 아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적용될 여지가 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정치 선전 및 심리전과 무관하게 진행될 수 없으며, 민·군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은 형태의 전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간접적이고 비대칭적인 접근, 그리고 비군사적 수단이 강조돼야 하며, 이에 대비해야 한다. 재래식 전력의 우위만으로 자족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