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하노이 이후 더 중요해진 ‘본류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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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前 통일연구원장

미국과 북한 간의 베트남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이후 평양 정권의 시름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시간이 북한 편인 것도 아니다. 하노이에서 북한은 ‘가짜 비핵화’로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고수하면서도 사실상의 전면적인 제재 해제와 한반도 평화 쇼를 위한 단초들을 얻어내는 ‘나쁜 스몰딜’을 시도했지만, 예상하지 않았던 ‘트럼프 암초’에 부닥쳐 실패했다. 동맹국 한국에 주한미군 철수를 위협하면서 더 많은 비용을 부담시키려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연합훈련을 중단시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변칙’을 내심 반기면서 그와의 타협이 가능하리라 믿었던 북한으로선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바야흐로 북핵 문제가 기로에 선 것이다.

이제 북한은 강공과 후퇴 그리고 현상 유지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한다. 명분은 만들어 둔 상태다.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엄포도 놓아뒀고, “그래도 두 정상 간 사이는 좋다”는 사탕발림도 해 뒀다. 하지만 쉬운 선택은 없다.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재개하는 강공을 택한다면 그동안 펼쳐왔던 평화놀음의 체면은 여지없이 구겨지고 주민에게 더 큰 시련을 강요해야 한다. 미국의 요구대로 실질적 비핵화 약속을 내놓고 이행하려면 ‘핵보유 기정사실 하 경제건설’이라는 지엄한 방침을 거둬야 하고 ‘선대의 유훈’인 ‘조선반도 비핵화’ 논리도 접어야 한다. 현상 유지도 그렇다. 무한정 주민에게 고립과 궁핍을 강요하다가는 권력세습 체제가 흔들릴지도 모른다.

‘노딜’로 마감된 하노이 회담은 많은 진실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적어도 아직은 북한이 핵(核)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점, ‘조금 주고 많이 받기’라는 북한의 협상 전략이 불변이라는 점, 국제 여론과 엇박자를 반복한 대한민국의 외교 고립이 더 심해졌다는 점 등이다. 좋은 합의든 나쁜 합의든 합의만 성사되면 대북 지원의 물꼬를 터는 축포를 쏘려 했던 문재인 정부와 일부 국내 언론으로서는 맞닥뜨리기 싫었던 ‘불편한 진실들’이었다.

하노이 회담을 통해 재확인된 ‘2개의 미국’도 같은 부류의 진실이었다. 상업적 이익을 우선시해 동맹을 압박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변칙 미국’이라면, 그런 트럼프 대통령을 견제하고 자유세계의 리더로서 미국의 역할과 동맹 수호를 촉구하는 미 의회, 전문가, 언론, 여론 등은 ‘본류 미국’이다. 그동안 문 정부는 ‘본류 미국’의 비아냥 속에서도 ‘변칙 미국’으로부터는 ‘남북 공조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노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본류 미국’과 국제사회의 뜻에 부응하는 결단을 함으로써 문 정부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그래도 남북협력을 가속화해야 한다’는 엇박자를 계속한다면 한국의 외교 고립은 적어도 당분간은 ‘수습 불가’ 상태에 머물게 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한국의 목표인 것이 맞고 북한이 제재를 매우 아파한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면, 이제는 발상을 전환해야 할 때다. 대북 제재를 풀어주지 못해 안달하는 ‘제3자’ 역할을 버리고 대북 국제 제재 공조에서 이탈하지 않아야 하며, 실질적인 핵 포기만이 대북 보상을 수반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줘야 한다. 더 큰 역할을 원할수록 국제 여론 및 ‘본류 미국’과의 교감을 강화해 외교 고립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그것이, 갈림길에 서 있는 북한으로 하여금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놔야 한다(拈一放一·염일방일)는 교훈을 깨닫고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돕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