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미생물에게 배워야 할 ‘공생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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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 / 김동규·김응빈 지음 / 문학동네

이 책은 생물학자와 철학자,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의 산물이다. ‘나는 미생물과 산다’ 등을 통해 미생물의 ‘대중화’에 앞장서온 생물학자 김응빈 연세대 생물학과 교수와 ‘멜랑콜리아’ 등을 통해 서양문화의 정체성을 탐구해온 철학자 김동규(연세대 철학과)가 2012년부터 연세대에서 함께 진행해온 화제의 강의 ‘활과 리라’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학제 간 융합과 통섭이 유행한 지는 오래됐다. 하지만 이처럼 생물학자와 철학자가 하나의 책을 공동집필한 사례는 드문 편. 저자들은 “이질적인 두 학문 사이의 짜릿한 조율을 통해 사유를 확장하고 무한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공생’의 지혜를 전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설명했다. 우리 인간이 미생물만도 못한 지점, 즉 미생물에게 배워야 할 핵심 가치도 바로 이 ‘공생’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공생부터 면역과 모방, 동물성과 인간성까지 생물학에서 발아한 다채로운 주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예술의 속성을 생물학적 은유로 풀어낸 것도 흥미롭다. ‘예술은 바이러스다’라는 명제다. 인문학자들에게 예술이 설명하기 힘든 난제이듯, 자연과학자들에게 바이러스는 “자연의 풀리지 않는 암호”이다. 그런데 바이러스의 특성은 예술의 존재방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술 바이러스’는 생물학적 바이러스처럼 ‘전염력’이 강하다. 예술은 그것을 접한 사람들을 쉽게 감염시키고 빠르게 확산되며 역사적으로 전승된다. 예술 바이러스는 숙주에 ‘기생’하면서 존속하는데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 숙주, 인간이 없다면 예술작품도 존재할 수 없다. 더구나 이 예술 바이러스는 인간을 ‘변모’시킨다. 예술적 경험을 통해 인간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생물학 쪽에서는 다윈과 파스퇴르에서 리처드 도킨스, 칼 우즈로 이어지는 근현대 생물학자들이 거론되고, 철학 쪽에서는 플라톤, 하이데거, 해나 아렌트 같은 사상가들이 등장한다. 생물학과 철학은 단순한 만남을 넘어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융합으로 나아간다. 272쪽, 1만4000원.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