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北 춘궁기 ‘제2 고난 행군’과 김정은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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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언젠가 북한 김일성은 “우리는 1972년부터 식량 자체 해결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실토한 적이 있다. ‘이밥에 고깃국’을 사회주의 지상낙원의 목표로 설정한 지 꼭 10년 만의 일이었다. 그때부터 북한은 식량 문제를 풀기 위해 이른바 ‘대자연 개조사업’을 시작했고, 이밥 대신 옥수수밥이라도 양껏 먹겠다고 ‘밭곡식의 왕은 옥수수’라는 새로운 구호를 제시했다. 하지만 선대 수령들이 아직도 신격화되고 있는 북한에서 인민들은 여전히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 특히, 올해 춘궁기는 ‘제2 고난의 행군’을 예고한 가운데 지독하게 북한 주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한다.

북한 노동신문은 21일 ‘물과 공기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면서 주민들의 내핍을 강조했다. 앞서 지난 14일 복수의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경제 사정 악화로 재난대비용 비상식량을 시장에 풀고 있다고 밝혔다. 한 소식통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시로 몇 달 전부터 5호 창고를 개방해 쌀 등 양곡을 대거 시장에 풀고 있다”며 그만큼 북한 식량 사정이 나빠졌다고 말했다. ‘5호 창고’는 재난 및 구호 상황에 대비해 비축하는 전략 예비물자를 가리키는 북한 내부 용어다. 노동당이 직접 관리하며 주로 쌀을 비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일시적인 고육책으로 식량 문제를 풀기에 북한 체제는 이미 그 한계를 넘은 것 같다. 5호 창고 식량도 조만간 고갈될 것으로 보여 ‘2호 창고’를 열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2호 창고는 전쟁에 대비한 양곡 비축분으로, 군대가 관리한다. 그래서 이곳을 개방한 적은 거의 없다. 2호 창고 식량을 빼돌린 간부는 총살형에 처할 정도로 북한 정권이 중시하는 곳이다. 1995년에 시작된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2호 창고는 열리지 않았다. 김정은 집권 직후 인민의 환심을 사려고 2호 창고를 잠시 개방했는데, 이후 식량난이 가중될 때 한두 차례 양곡을 풀었다고 한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지난해 폭염과 홍수가 겹쳐 올해 북한의 식량 비축량이 크게 줄었다. 몇 년 동안 연간 곡물 540만∼560만t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왔지만, 지난해 490만t으로 뚝 떨어졌다.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대사는 지난달 유엔에 긴급 식량 지원을 요청했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 방문 때 베트남 정부에 쌀 5만t 긴급지원을 간절하게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소식도 있다. 이대로 갈 경우 북한은 제2 고난의 행군이 아니라 ‘최후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 김정은 정권은 춘궁기에 인민들의 무서운 저항이 예상된다며 장마당 경제 활성화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래 봐야 당국의 감시와 통제를 느슨하게 하는 내용이 태반인데, 교통보안원(경찰)들에게 교통위반 딱지를 끊어 절대로 인민들을 분노케 하지 말하는 지시까지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국경 지역의 밀수행위도 웬만하면 눈감아주라고 했다 한다. 그 수혜 대상자는 주로 국경 일대와 도시지역 주민들뿐이다.

북한 밖에서는 ‘자유조선’이라는 북한 임시정부가 등장해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박살 내며 “독재 타도”를 외치고 있어 평양 정권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있다. 북한 망명 임시정부 자유조선의 조직적 저항은 비록 북한 밖일지언정 ‘총성 없는 혁명’이며 70년 독재에 단호하게 맞서는 일대 ‘선전포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저항 기운이 조금이라도 북한 안으로 파급될 경우 북한 전체가 혁명의 불길에 휩싸이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현재대로 갈 경우 북한은 이번 춘궁기를 넘기기 어려워 보인다. 결국 제재에 굴복하든지, 아니면 ‘핵 보유’ 깃발을 내리든지 하는 ‘절대 운명’을 피해 가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