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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게재 일자 : 2019년 03월 24일(日)
“선배 보면 뛰어와서 폴더 인사”…여전한 대학내 ‘군기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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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합(PG)
서울의 한 4년제 대학 새내기인 A씨는 이달 초 선배로부터 주의 사항을 통보받았다. ‘전공수업 시작 전에 일찍 와서 준비해 놓기’, ‘선배와 마주치면 90도로 인사하기’, ‘신입생 환영회나 수련회(MT) 등 학과 모임에서 장기 자랑 준비하기’, ‘학과 행사 불참 시 사유서 제출’ 등이다. A씨가 최근 대학 익명 커뮤니티 ‘대나무숲’에 “선후배 간 악습에 대해 사회적으로 공론화된 지 오래지만 아직도 근절되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과 함께 토로한 내용이다.

선후배 간 ‘군기 잡기’는 대학교 개강 철이면 매년 꾸준히 제기되는 문제다. 교육부가 지난달 음주 강요나 가혹 행위 등 인권 침해를 없애도록 사전 교육을 강화하라고 당부하는 ‘대학 신입생 OT(오리엔테이션) 운영지침’을 각 대학에 내려보냈지만, 피해 호소는 끊이지 않고 있다.

경기도의 한 4년제 대학교에 입학한 B씨도 최근 학과 선배로부터 “새내기는 엠티에서 보여줄 장기 자랑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불참했을 경우 이번 학기 성적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협박 아닌 협박도 들었다”며 “이런 일을 당해도 딱히 피해를 호소할 곳이 없어 참는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서울의 한 대학교에 다니는 C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최근 선배로부터 “신입생 환영회를 여니 ×× 학번 이하는 모두 필참하기 바랍니다. 신입생 전원은 장기 자랑을 준비해 오세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은 것이다.

그는 “소위 말하는 ‘×군기’가 많이 사라지는 추세인데 아직도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친목 도모가 목적이라면 다른 방법도 많을 텐데 누구를 위해서 이런 행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11일에는 경기도의 한 4년제 대학교 일부 학과가 수련회에 참석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불참비를 부과하고 결석 처리를 하겠다고 나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일을 겪는 대학생들이 상당수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한 구직사이트가 지난해 3월 대학생 1천여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57.6%가 “대학교 입학 후 선배로부터 인사나 음주 강요, 복장 제한, 얼차려 등의 갑질을 당했다”고 답했다.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답한 비율은 18.3%에 불과했다.

또한 ‘선배 갑질’을 경험한 이들 중 19.7%는 휴학을 고려하는 등 학내 갑질이 학과 생활이나 학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고, 18.2%는 때때로 우울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대학 군기 문화는 어떤 이유에서든 사라져야 한다고”고 답변한 이는 80%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새 학기마다 캠퍼스에서 되풀이되는 ‘군기잡기’ 문화를 근절하려면 피해를 봤을 때 털어놓을 수 있는 상담 창구를 개설하고 적극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선후배 간에 벌어지는 군기 잡기 등 가혹 행위도 엄연한 폭력에 해당하므로 처벌받을 수 있다”면서 “다만 이런 문제에 대해 ‘나도 거쳐 온 통과 의례’라고 여기는 인식이 대학 사회에 여전하기 때문에 근절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신입생 환영회에서 발생하는 신고식 등의 가혹 행위가 하나의 문화라고 여기는 관행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며 “학교 측의 계도와 함께 학생들의 자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마다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마음 놓고 털어놓을 수 있는 인권센터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여전히 학내 인권센터나 상담소 등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며 “학교측이 신입생 환영회나 개강 총회에서 상담 창구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등 충분한 홍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서는 대학내 선후배 간 갑질 문화를 개선하려는 자정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서울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는 새학기를 맞아 신입생 환영회 등에서 장기 자랑을 강요하지 말자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8일 현재 총 21개 단과대학과 학부가 ‘장기자랑 강요 프리(free) 릴레이 선언’에 참여했다.

광주에 있는 호남대학교는 2016년부터 음주 강요나 군기 잡기 등 부작용을 낳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폐지했다. 지난달에는 선배들이 신입생에게 직접 짜장면을 만들어 대접하는 환영 행사를 열기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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