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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9년 03월 25일(月)
가족이란… 두 노배우가 전하는 투박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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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재의 ‘로망’
“무식한 할망구” 입에 달고 살다
본인도 치매 앓고 아내와 소통
앞만 보고 달렸던 가장의 후회
황혼 부부 사랑 스크린에 담아

- 이스트우드의 ‘라스트 미션’
87세 마약배달원 실화로 제작
가족냉대로 얼떨결에 범행가담
“돈으로 다 사도 시간은 못산다”
지난 세월 속 가족 의미 재확인


두 노배우의 명연기가 깊은 울림을 전하며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준다.

80대 중반의 나이에도 왕성한 연기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 원로 배우 이순재(84)와 미국의 거장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89)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지만 정작 가족에게는 상처만 남긴 가장의 뒤늦은 ‘후회’와 ‘반성’을 절절하게 풀어냈다.

이순재는 오는 4월 3일 개봉하는 영화 ‘로망’(감독 이창근)에서 반평생 개인택시를 몰며 아내와 아들을 부양해온 75세의 조남봉을 연기했다. 이 영화는 부부 동반 치매를 다뤘다.

가부장적인 남봉의 까칠한 성격을 견뎌내며 그를 떠받들고 살던 71세의 아내 이매자(정영숙)가 치매에 걸린 후 남봉에게도 치매가 찾아온다. 그동안 치매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많이 나왔지만 부부가 동시에 치매에 걸리는 상황은 이 영화가 처음이다.

부부 중 한 명이 치매에 걸린 배우자는 그렇지 않은 배우자에 비해 치매에 걸릴 확률이 6배 높다는 미국 유티주립대 노인의학연구팀의 논문이 나와 있어 영화가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무식한 할망구”를 입에 달고 다니던 남봉은 자신도 치매에 걸린 걸 안 후 요양병원에 있던 매자를 집으로 데려와 따뜻하게 소통하며 마지막을 준비한다. 이순재는 연극 ‘사랑해요 당신’에서도 부부연기를 펼쳤던 정영숙과 호흡을 맞춰 “올 것이 왔다 싶으니까 아무렇지도 않다”며 아내와 함께 치매에 걸린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애틋하게 보여준다.

번갈아 온전한 정신을 찾는 남봉과 매자가 “이매자 여사, 정신 놓지 마. 당신 없으면 나는 못살아” “당신이나 정신 줄 놓지 말아요” 등 스케치북에 투박하게 쓴 글로 속마음을 전하는 장면을 보며 꾹꾹 눌러뒀던 눈물이 쏟아진다.


지난 14일 개봉한 영화 ‘라스트 미션’은 이스트우드가 ‘그랜 토리노’(2009) 이후 10년 만에 연출과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얼 스톤은 가족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백합농장에 빠져 살던 인물로, 인터넷 등장 이후 판매가 부진해 농장이 문을 닫자 가족에게 돌아갔지만 냉대를 받고 얼떨결에 마약 운반책이 된다. 어렵지 않은 일을 하고 번 돈으로 손녀의 결혼식 비용을 대자 흐뭇해진 얼은 가족을 챙기기 위해 본격적으로 마약 운반에 나선다.

이 영화는 2011년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300만 달러어치 코카인을 수송하다가 체포돼 3년형을 선고받은 87세 마약 배달원 레오 샤프의 실화를 토대로 만들었다.

얼이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맛집을 찾아다니고, 길에서 만난 사람을 돕는 등 즐겁게 마약을 나르는 모습으로 웃음을 전하는 영화는 조심스럽게 가족에게 다가가는 얼의 후회를 통해 진지한 교훈을 남긴다.

이순재와 이스트우드의 자연스러우면서도 묵직한 연기가 영화의 톤을 잡아주며 다양한 재미도 선사한다. 두 배우는 별다른 설명 없이 운전대를 잡은 주름진 손만으로 남봉과 얼의 지나온 삶을 설명한다. 노년이 됐지만 힘있게 운전대를 움켜쥔 그들의 손에서 가장의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진다. 그들은 그 손으로 아내의 손을 꼭 잡으며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사랑을 전한다.

또 남봉과 얼의 대사에도 삶의 흔적이 묻어 있다. 쓰러진 매자를 간병하던 남봉의 넋두리가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뒤에선 빵빵거리고 앞도 잘 안 보이고, 에라 모르겠다 한길로만 달렸는데 울통불퉁 그런 비포장길도 없는 거라. 그래서 빨리 포장된 도로로 나서야겠는데 암만 둘러봐도 돌덩어리뿐이고…. 그래도 그렇게 꾸준히 달리면 세월이 보상해주겠지 했는데 그놈의 세월마저도 오리발을 내미네.”

카센터를 운영하는 남봉의 오랜 친구가 남봉의 택시를 수리한 후 “네놈이나 그놈이나 조금이라도 굴러갈 때 잘해. 폐차할 때 되면 자식이고 마누라고 없어”라고 하는 말도 마음에 와 닿는다.

“가족과 함께라면 다른 것은 필요 없다” “돈으로 다른 것은 다 살 수 있어도 시간은 못 산다” 등 얼의 대사는 걸걸한 이스트우드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며 마음에 꽂힌다.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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