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에로틱 시네마>호러·에로 절묘한 접목… ‘전통적 性역할’뒤집는 파격까지

  • 문화일보
  • 입력 2019-03-2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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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작품 ‘묘녀’

홍파 감독의 ‘묘녀’(1974·사진)는 한국의 토속신앙에 공포 장르와 에로티시즘을 접목한 작품으로 김문수의 중편소설 ‘증묘(蒸猫)’를 영화화한 것이다. 홍파 감독은 이장호, 김호선, 하길종, 이원세 등과 함께 뉴웨이브 영화운동 ‘영상시대’(1975)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의 두 번째 연출작인 ‘묘녀’는 증묘 의식(산 고양이를 삶아 그의 원혼을 이용해 증오의 대상을 죽이는 의식)으로 일어나는 미스터리 연쇄살인을 다룬다.

이 영화는 시체 몇 구, 검은 고양이를 안고 있는 고 여사(선우용녀), 고 여사와 훈(정훈)의 정사 장면, 무당의 굿을 지켜보는 훈의 어린 시절 모습 등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흑백의 스틸 사진들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사진 위로는 금속으로 된 체인이 가축의 목을 감듯 사진 속 인물들을 감고 있는데 이는 등장 인물들이 무언가 불가피한 것에 얽혀 있음을 상징하려는 은유일 것이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 고 여사는 과거에 살던 한 시골 마을에서 결혼 첫날밤에 원인불명의 사고로 남편을 잃는다. 그는 남편이 죽은 이유가 자신을 남몰래 흠모했던 훈이 아버지가 증묘 의식을 치러서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 여사는 같은 방법으로 고양이의 원혼을 이용해 훈이 아버지를 죽이고 난 후, 고아가 된 훈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정착한다.

성인이 된 훈은 고 여사의 동거인이자 애인으로 살아간다. 그는 늘 탈출을 꿈꾸지만 고 여사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가 욕망을 품거나, 그를 욕망하는 모든 여성은 고 여사의 저주에 의해 잔혹히 살해되기 때문이다. 결국 고 여사는 남편을 살해한 자를 죽이고 그의 아들 훈을 철저히 소유함으로써 2대에 걸친 복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영화는 여성의 성적 욕망을 파격적인 수위로 묘사한다. 이는 물론 자신의 성욕을 충족하기 위해 훈을 소유하고 독점하려는 고 여사를 통해 가장 뚜렷이 보여진다. 고 여사는 훈이 귀가하면 그의 몸을 씻기고, 새 잠옷을 입혀 침대에 눕힌 뒤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그를 간신히 흥분시켜 원하는 것을 갖고야 만다.

아울러 여성의 성적 욕망은 고 여사뿐만 아닌 단골 다방 여급, 이발소 직원, 출판사 동료 등 훈의 주변 여성 캐릭터들에게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양상이다. 이들은 단순히 말을 건네거나 미소를 보내는 정도의 소극적인 유혹이 아닌 훈의 민감한 부분을 만지거나 그의 손을 잡고 여관으로 끌고 가는 등 기존의 성 역할을 완전히 전복하는 형태의 유혹을 감행한다. 상대적으로 훈은 의기소침하고 욕망을 두려워하는 캐릭터, 즉 희생양에 머물고 있다. 훈은 그를 사모하는 이발소 직원이 자신의 집으로 무작정 찾아올 때도, 출판사 동료가 그를 여관으로 끌고 갈 때도 회피하거나 침묵으로 일관, 혹은 수동적으로 반응만 하는 정도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효정 영화평론가

결국 고 여사가 아닌 다른 여자(출판사 동료)의 유혹에 넘어가 하룻밤을 보낸 훈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에 치여 죽고 만다. 영화는 형사들에게 둘러싸인 고 여사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저를 동물 학대로 체포할 건가요?”라고 묻는 장면으로 사실상 증묘 의식을 통해 훈을 죽였다는 암시를 남기고 결말을 맺는다.

역시 기괴한 시대에는 기괴한 영화들이 태어난다. 영화를 통제하는 군사정부의 탄압이 점점 더 심해지는 가운데 ‘영상시대’ 운동을 통해 문화통제와 전면 대치를 선언한 감독의 영화가 공포영화라는 것은 의아해 보이지만 어쩌면 필연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묘녀’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구전 공포담을 바탕으로 하나 그 저변에 욕망의 통제에 대한 지극히 현실적인 비판을 채운다. 훈이 고 여사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의 죽음 때문이 아닌 그가 욕망했던, 혹은 그를 욕망했던 타인들의 죽음에 있다. 다시 말해서 고 여사의 절대적인 권력은 훈의 목숨을 통제하는 데서가 아닌 욕망을 통제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유신정권 이후 각계에서 강화됐던 사회문화적 통제는 궁극적으로 대중의 욕망을 통제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만행이었다. 통제의 정점에서 만들어진 ‘묘녀’에는 그러한 공포의 기류가, ‘욕망’을 향한 욕망이 가득하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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