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수묵화 高手 김호득

  • 문화일보
  • 입력 2019-03-28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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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위원

“음과 양, 시간과 공간, 찰나와 영원 사이의 미묘한 경계 교착 점을 그리고 싶다. 평면의 먹그림에서도 그런 지점을 확보해, 계속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 설치작품도 입체라고 하기엔 질량감이 없고, 평면이라고 하기엔 그 확장성이 크고, 공간성을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텅 빈 느낌이며, 정지된 느낌이면서도 미묘하게 흐르는 시간을 심상으로 느낄 수 있는,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나만의 독특한 지점을 추구한다.” 김호득(69) 화백이 한 말이다. ‘경계인’을 자처하는 김 화백은 굵은 선(線) 두 개를 마주 보게 횡으로 그어, 먹물이 튀게도 한 자신의 2018년 작품 ‘흐름’을 두고는 이렇게 설명했다. “두 선은 자연에서 출발했다. 선의 묘한 각도와 두 선의 관계는 공중에 휙 지나가는 바람의 흔적을 형상화했다. 물이라고 봐도, 산기슭이라고 봐도 좋다.”

‘동양화의 이단아’ ‘수묵화(水墨畵)의 새 가능성을 실험·제시해온 거장’ 등으로도 일컬어지는 그는 물 그림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물의 기운’을 그린다. 맑은 물이 아니라, 황토물에서 영감을 받아 물의 표정을 그렸다. 물·돌·물살의 관계를 생각하며, 물이 내달리고 튀는 모습을 나타냈다.” 서울대 미술대 회화과에 입학해 유화를 그리다가 3학년 때 동양화 전공으로 바꿔 졸업한 그가 비교적 늦은 나이에 1986년 서울 관훈미술관에서 가진 첫 개인전부터 한국 화단에 충격이었다. 화선지나 비단 대신에 투박한 광목을 화폭으로 삼은 것에서부터 형식과 내용 모두 장르의 경계를 허물었다. 이후 발표해온 연작 ‘폭포’ ‘계곡’ ‘흔들림’ ‘문득’ ‘겹’ 등도 마찬가지다. 먹물을 풀어 채운 대형 수조(水槽)의 암흑 속에 흔들리는 수면 위로 한 줄기 빛을 비추게 한 ‘흔들림 - 문득, 공간을 느낀다’ 등 설치 작품도, 재즈 음악을 들으며 그 리듬에 따라 손가락으로 그린 ‘산 - 아득’ 등 지두화(指頭畵)도 그렇다.

25년 재직한 영남대 교수직에서 2015년 은퇴한 이듬해에 경기 여주로 작업실을 옮긴 김 화백은 2017년부터 1년마다 개인전을 열어왔다. 그 3번째가 서울 종로구 삼청로의 갤러리 학고재에서 지난 6일 개막, 오는 4월 7일까지 이어진다. 수묵화·드로잉·설치 등 근작 20여 점을 통해 “시간이 갈수록 고수(高手)는 힘을 빼고, 솜씨를 죽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그의 심오한 예술에 흠뻑 젖어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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