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떼법’에 묵살된 소비자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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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경 전국부 차장

지난달 중순 평일 저녁의 일이다.

서울교대 부근에서 지인들과 만나 저녁 모임을 한 뒤 오후 10시 30분쯤 헤어졌다. 지하철을 이용하기에는 좀 많이 걸어야 해서 스마트폰 카카오택시 앱을 통해 택시를 불렀다. 쌀쌀한 날씨 속에 30분 정도 기다렸는데도 차가 오지 않았다. 결국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부르면 오지도 않을 거면서 차량호출 서비스는 왜 있는 건가. 그 시간대에 택시 수요가 많으니 택시 기사 입장에선 장거리 호출에 응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내 소비자 권리는 간단히 무시당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처럼 차량 호출 서비스가 활성화됐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사실 해외에 비해 국내 택시 서비스가 나쁜 편은 아니다. 택시 수요가 급증하는 일부 시간대를 제외하곤 택시를 이용하는 데 크게 불편함을 느끼진 않는다. 물론 무작위로 담배 냄새에 찌든 택시를 만날 때도 있고 거친 언사를 서슴지 않는 기사를 만날 때도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우버, 리프트, 그랩, 디디추싱(滴滴出行) 등이 보편화됐다면 훨씬 편하고 저렴한 운송 서비스(택시 포함)를 향유했을 듯싶다. 왜 우리나라에선 차량 호출 서비스가 발붙일 수조차 없었을까.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은 “다른 나라에서도 차량 호출 서비스에 대한 저항이 심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대거 힘을 실어 주면서 현재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차량 호출 서비스가 정착하지 못한 원인은 △비교적 괜찮은 택시 서비스 △택시업계의 강한 저항과 정부의 수수방관 △차량 호출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지지 부족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서비스에 대한 적당한 만족과 목소리 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결합되면서 소비자 권리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만일 소비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위해 나섰다면 교대 부근 내 소비자 권리 30분은 덜 훼손됐을 것이다.

최근 재계를 강타하고 있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도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부도덕한 오너라고 규정짓고 그의 대한항공 대표 재선임을 막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많은 사람이 국민연금의 조치에 대해 찬성한다. 연금 사회주의에 대한 우려감이 있지만, TV 뉴스나 인터넷을 통해 접한 조 회장 일가의 충격적인 막말이 여전히 귓가를 맴돌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 관점에서 볼 필요도 있다. 내가 매월 납부하고 사회생활에서 은퇴한 뒤 안정적으로 지급받아야 할 국민연금이 대기업 오너 때리기에만 사용된다면 이를 말없이 받아들여야 할까. 난 반대다. 정권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대기업 오너 때리기를 한다고 해도 마뜩잖은 판에 내 노후자금까지 활용한다고. 내가 국민연금에 바라는 것은 안정적이고 수익성 높은 자산 운용을 통해 최대한 지속가능한 서비스를 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우선 내가 안정적으로 국민연금을 받고 내 아들에게는 부담이 덜 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최근 행태를 보면 왠지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국민연금이 정치적으로 움직이면 바로 거덜 날 수 있다는 이인실 서강대 교수의 말이 마음에 걸린다.

yo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