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카페>죽음을 거스르고 싶었던 그녀, 자신 닮은 ‘괴물’을 창조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극 중 메리 셸리(엘 패닝)가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무덤 앞에서 습작을 하고 있다.

■ 윤성은의 스크린 인물학 - ⑨ ‘메리 셸리 :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속 메리 셸리

메리 자신 낳고 어머니 숨거둬
사상가 아버지-새어머니 사이
행복하지만은 않은 유년 보내
여성의 주체성 강조하기 위해
가부장적인 아버지로 설정도

17세 이후 유부남과 8년 유랑
그와 가진 다섯아이중 4명 잃어
어머니 죽게했다는 자책감에
아이 못지켰다는 죄의식까지

낭만주의 시인들과 어울리며
미학적인 유령 이야기 만들어
수많은 SF소설·영화의 근간

지난 200년 동안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의 발전이 인간에게 가져올 수 있는 비극, 혹은 괴담을 이야기할 때 끊임없이 회자되는 이름이었다. 그것이 종종 과학자의 이름이 아니라 괴물의 이름으로 오인돼 왔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롭다.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해 놓고도 그 추한 모습에 도망쳐버렸던 과학자가 괴물인가, 창조주에게 버림받고 인간에게 핍박당하다가 악의 화신이 돼 버린 피조물이 괴물인가. 독자들은 어느 쪽에 더 감정을 이입해 왔으며, 과연 어느 쪽이 책의 제목이어야 하는가.

과학 윤리, 인간의 정체성 등 인류가 기술 발전에 매진하는 한 끝나지 않을 논쟁점을 던진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프랑켄슈타인’)는 1818년에 발표된 메리 셸리의 소설이다. 메리는 집필 당시 10대였지만 일찍이 세상만사의 고통과 슬픔을 두루 겪었던 인물로, 그런 그의 경험들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괴물의 심리에 잘 녹아들어 있다.

‘메리 셸리 : 프랑켄슈타인의 탄생’(‘메리 셸리’)은 메리가 자신의 첫 소설인 ‘프랑켄슈타인’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견뎌야 했던 질곡의 시간들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연출한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하이파 알 만수르 감독은 ‘우먼 위드아웃 섀도우즈’(2005), ‘와즈다’(2012) 등 사우디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자유에 관한 작품을 선보여 왔던 감독으로, 다른 문화권을 배경으로 한 ‘메리 셸리’에서 또한 활동이 제한돼 있던 시대를 살았던 지성인으로서 여성의 고뇌와 성장을 강조한다. 영국의 급진적 정치 사상가인 윌리엄 고드윈과 최초의 페미니즘 저작을 내놓았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사이에서 태어난 ‘메리’(엘 패닝)는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을 타고난 인물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메리를 출산한 후 바로 숨을 거뒀고, 메리는 새어머니, 이복동생들 사이에서 행복하지만은 않은 유년시절을 보낸다. 그녀의 가장 큰 즐거움은 아버지의 서재에서 고서를 탐독하고, 어깨너머로 당대 사상가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이었다.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것처럼 어머니의 무덤에서 습작했던 것도 메리의 실제 취미였다. 초반부에 윌리엄 고드윈이 무뚝뚝하고 권위적인 캐릭터로 묘사된 것은 다소 아쉬운데, 메리는 새어머니가 질투할 만큼 아버지와 유대감이 강했으며, 윌리엄도 메리에게 교육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윌리엄을 평범한 가부장적 아버지로 그린 것은 당시 여성들을 옭아매고 있던 성 역할과 억압의 문제를 표출하고, 메리가 가정과 분리되는 과정에서 주체성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러한 객관성의 균열은 메리의 남편이었던 시인 ‘퍼시 비시 셸리’(더글러스 부스), 그들과 가까이 교류하며 지냈던 ‘조지 고든 바이런’(톰 스터리지)에 대한 감독의 시각에서도 얼마간 드러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메리는 유부남인 퍼시(더글러스 부스)와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기로 결심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시인 바이런(톰 스터리지·가운데)이 유령 이야기를 각자 한 편씩 쓰자고 제안하는 장면.

메리는 열다섯 살 때 아버지의 제자였던 퍼시를 처음 만나는데, 2년 후에는 유부남이었던 그와 프랑스로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메리 작품들의 초석이 된 8년간의 지난한 유랑 생활은 그렇게 시작된다. 영화에서 그녀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관습과 제도에 대한 저항 정신을 실천할 뿐이라는 말로 자신의 결정을 피력하고, 타인의 시선을 무시한 채 행복한 한때를 보낸다. 그러나 그녀를 자유롭게 했던 사상은 후에 퍼시의 바람기를 막을 수 없는 빌미가 돼 그녀를 괴로움에 빠뜨리기도 한다. 메리의 고난은 친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근원적 고독에서부터 퍼시와의 동행으로 인한 가난, 사회적 경멸의 문제로 전이되고, 아이를 잃는 처절한 슬픔으로까지 이어진다. 영화에는 생략돼 있으나 메리는 퍼시와 가졌던 다섯 아이 중 네 명을 사산하거나 아주 어릴 때 세상을 떠나보내고 한 명의 아들만 살아남는 고통을 겪었던 인물이다.

딸로서 어머니를 죽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을 갖고 있었던 메리는 열여덟 살 이후 어머니로서도 아이들을 건사하지 못했다는 죄의식까지 짊어져야 했다. 그러므로 ‘프랑켄슈타인’에서 박사가 무생물에, 정확히는 생명을 잃어버린 육신의 조각들에 생기를 불어넣는 행위는 ‘죽음을 거스를 수 있다면’이라는 메리의 지극한 바람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메리 셸리’는 첫딸 클라라의 죽음으로 인해 메리가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고 퍼시와의 관계도 벌어진 절망적인 상황을 보여준 후, 드디어 ‘프랑켄슈타인’이 잉태된 제네바 근교로 관객들을 인도한다.

메리가 바이런, 퍼시, 이복동생인 클레어, 그리고 바이런의 주치의였던 폴리도리와 가졌던 시간들에 대한 영화의 묘사는 감각적이면서 어둡고, 몽환적이다. 퍼시와 꾸준히 문학적인 교류를 했으며, 그를 무척이나 아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바이런은 이 영화에서 무례하고 기행을 즐기며, 술과 유희를 좋아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퍼시도 선배를 따라 원초적인 나날을 보내는 동안, 여전히 슬픔에 빠져 있었던 메리는 이 위대한 낭만파 시인들을 차분하게 바라본다. 이들에게서는 수많은 문학가와 음악가에게 영향을 준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의 작가도, ‘에이리언: 커버넌트’(리들리 스콧·2017)에 등장한 ‘오지만디아스’의 작가의 모습도 발견하기 어렵다. ‘메리 셸리’의 남성 캐릭터들은 그들의 재능보다 방탕하고, 무책임하며 이기적인 면모가 강조돼 있는데, 폴리도리만은 예외다. 그 이유는 폴리도리가 후에 ‘뱀파이어’라는 작품을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하지 못하고 비극적인 선택을 한다는 사실, 어떤 면에서 당대의 여성들과 비슷한 운명을 공유했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어쨌든 바로 이 뜨거웠던 여름에, 바이런은 각자 유령 이야기를 써서 최고의 작품을 뽑자는 제안을 하게 되고, 메리는 ‘프랑켄슈타인’의 플롯을 떠올린다.

전술한 것처럼, ‘프랑켄슈타인’은 현대의 창조주로 군림한 과학 기술이 야기할 수 있는 참극에 대한 경고로 디스토피아를 예견하는 수많은 SF 소설과 영화의 근간이 돼 왔다. 그러나 시대를 넘어서는 주제의식은 차치하더라도 이 소설은 충분히 미학적이다. 우선, 낭만주의 시의 영향을 받아 자연에 대한 묘사, 감정에 대한 표현이 풍부하고 정밀한 수사로 꾸며져 있으며, 한 문장 한 문장이 음미할 가치가 있을 만큼 아름답다. 인물들은 명확한 자기 주관에 따라 행동하는데, 인과관계가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강하다. 또한, 내레이터가 항해 중 우연히 만난 이방인, 즉 프랑켄슈타인에게 들은 이야기를 자신의 누이에게 서신으로 전달하는 구성은 박사에게서 한 발짝 거리를 두고 괴물의 심정까지 고려하게 만드는 데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독자들은 둘 중 누구 편에 서야 할지 갈등하게 된다. 수년간의 연구 끝에 탄생시킨 생명체가 너무도 역겨워 끝까지 외면하고 무시할 수밖에 없었던 박사는 그 대가로 가족과 친구, 아내까지 차례로 잃고 만다. 반면, 괴물은 박사에게 버림받은 후에도 나름대로 선행을 하며 인간 사회에 편입되고자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복수의 길로 들어선다. 둘 중 누구도 윤리적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면서 동시에 동정심을 유발시킨다. 인간이 아닌 살인마이자 괴물에게도 납득할 만한 동기를 제공했다는 것이 ‘프랑켄슈타인’의 특징이자 우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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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셸리의 삶과 소설의 기조를 병치시켜 보면, 그녀가 작가, 즉 창조주임에도 불구하고 상당 부분 괴물의 입장에 이입하면서 글을 써내려갔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급진적인 사상가들의 딸로 태어나 그 신념을 실천하며 살고자 했지만 정작 존경하는 아버지와도 멀어진 채 세상으로부터 비난당하고 개인적인 불운까지 덮쳤던 그녀였으니, 괴물만큼이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었던 출생을 원망했을 법도 하다. 또한, 인간과 어울리지 못하는 괴물의 슬픔, 자신과 똑같은 종족을 만들어 달라는 그의 요구는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안에서 재능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던 19세기 여성들의 비애와도 무관하지 않다. ‘메리 셸리’에서는 메리가 괴물을 완벽하고 긍정적인 창조물로 그리는 것이 어떠냐는 퍼시의 충고를 거부하는 장면, 클레어가 괴물의 상처와 분노에 공감하는 장면 등을 통해 괴물이 메리에게 갖는 의미를 강조한다.

‘프랑켄슈타인’은 20세기 이후에도 대중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만큼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졌으나, 우리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약 90년 전에 만들어진 제임스 웨일의 작품(‘프랑켄슈타인’·1931)일 것이다. 천진한 표정의 괴물이 물가에서 소녀와 놀아주다가 사고로 소녀를 죽이게 되는 강렬한 장면은 이후 여러 영화에 삽입되며 다양한 의미를 재생산해냈다.

보리스 칼로프가 분한 괴물은 분명 메리 셸리가 원작에서 묘사한 괴물보다 훨씬 깔끔하고 인간과 유사하다. 또한, 그 괴물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학을 통해 언어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능란하게 표출하는 메리의 괴물과 큰 차이가 있다. 범죄에 대해 변론하지도, 짝을 요구하지도 못하는 괴물은 원작의 캐릭터는 물론이요, 어쩌면 주제와도 한참 멀어져 있는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괴물이 마을 사람들에게 쫓겨 풍차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장면에서의 파토스는 주목할 만하다. 무덤에서 시체를 파내면서 시작된 프랑켄슈타인의 광기 어린 실험은 마을 사람들의 무자비한 사냥으로 마무리된다. 괴물은 여기서 희생양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메리 셸리’는 메리의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서술하면서 그녀가 창조해낸 마술적 세계와 캐릭터들을 보다 다각도에서 조망하도록 도와주는 작품이다. 이것은 한 작가의 생애를 반추하는 작업 이상으로 유의미하다. 동시대 테크놀로지에 잠재된 불안과 공포가 사라지지 않는 한, 메리 셸리의 이야기도 계속 전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문예지‘쿨투라’ 편집위원·‘윤성은의 스크린뮤직’ 팟캐스트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