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nsumer >면세화장품 대량구입뒤 싼값에 되파는 ‘다이궁’… 소매상 ‘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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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유통 폐해에 단속청원 봇물

면세점 매출 ‘큰손’ 다이궁
박스갈이로 2∼5% 이윤챙겨
유통업자, SNS 등서 재판매

유학생은‘현장인도제’악용
면세품 산뒤 출국 않고 유통

업계 “포장에 면세 표시해야”
관세청“이달중 대응책 발표”

지난해 9월 경남 함양에서 열린 지역축제 ‘함양산삼축제’ 현장. 부산에서 화장품 대리점을 운영하는 박모(43) 씨는 아이들과 함께 축제장을 찾았다가 축제장에서 한 화장품 가판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의 매장에서도 팔고 있는 화장품을 시중가의 절반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수십 개가 쌓여 있는 폼클렌징 제품 앞에는 ‘DUTY FREE’(면세품)라는 문구와 함께 정상가의 절반에 불과한 가격표가 놓여 있었다. 2만 원가량 되는 마스크팩은 1만 원에 판매한다고 쓰여 있었다. 박 씨는 “직접 화장품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어 잘 아는데, 면세 화장품은 그런 곳에서 대량으로 판매될 수 없는 제품”이라며 “한두 개도 아니고, 그 정도 수량이면 거의 조직적인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한 포털 사이트 블로그에 면세 화장품을 중국에서 판매할 사람을 찾는다는 구인 공고가 올라왔다. 면세 화장품을 포함해 가방과 잡화 등을 면세 가격보다 저렴하게 중국에서 판매할 사람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곧바로 “지금 중국에서 면세품 팔다가 적발되면 징역 10년 이상도 선고받는다. 조심하는 게 좋다”는 댓글이 달렸다.

지난해 12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면세 화장품 불법 유통을 단속해 달라는 청원이 올랐다. 외국 관광객들에게 판매된 면세 화장품이 불법으로 국내에 대량 반입돼 유통되고 있다며, 면세품을 국내에 재유통시키는 것은 탈세 행위일 뿐 아니라 덤핑 가격으로 시장을 유린해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3000명 넘는 네티즌이 동의를 표했다.

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면세점 등 제한된 곳에서 거래돼야 할 면세 화장품들이 불법으로 유통되면서 화장품 자영업자들뿐 아니라 유통시장 질서를 흐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19일, 화장품 가맹점주들의 모임인 전국 화장품 가맹점 연합회는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면세점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면세 화장품의 국내 불법 유통이 심각해 화장품 가맹점들이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연합회는 “다량의 면세 화장품이 박스만 바뀐 채 국내로 대량 유입되면서 화장품 가맹점들의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며 “불법 유통 면세 화장품 판별과 유통 방지를 위해 ‘군납면세품’ 표기처럼 화장품 용기와 포장 상자에 ‘면세품’ 표시를 해 구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장품 업계에서는 면세 화장품의 시중 불법 유통 주범으로 중국 보따리상을 지칭하는 ‘다이궁’(代工)을 지목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 이후 국내 면세점 시장의 큰손으로 자리매김한 다이궁들이 대량 구매한 면세 화장품들을 중국으로 가져가지 않고 국내에서 불법유통시킨다는 것이다. 다이궁은 국내 면세점 매출의 70%가량을 점유하는 것으로 추정될 만큼 국내 면세점 시장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사드 사태 이후 중국인 관광객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이들이 메우고 있는 것이다.

전혁구 전국화장품가맹점연합회 공동회장은 “면세점 월 매출의 70% 이상을 화장품이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하는데, 이들 대부분을 다이궁들이 매입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들이 구매한 면세 화장품을 중국으로 가져가지 않고, 국내 유통업자들에게 2∼5% 정도 마진을 남기고 넘기고 유통업자들은 이를 SNS 등을 통해 정상가보다 싸게 판매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면세 화장품이 시중에 불법 유통되는 이유 중에 ‘면세품 현장인도제도’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화장품 가맹점주들은 판단하고 있다. 정부는 관광산업 발전과 쇼핑 편의 및 국산 제품 판매 촉진을 위해 외국인 관광객이 시내 면세점에서 국산 면세품을 구매하면 출국장이 아니라 면세점 현장에서 바로 물품을 건네받을 수 있도록 하는 ‘현장 인도제’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 거주 외국인 유학생이나 다이궁들이 이를 악용해 현장에서 대량으로 물품을 구매한 뒤 출국 예약을 취소하고 면세 물품을 국내에 유통시킨다는 것이다. 관세청도 이 같은 폐해를 인식하고 지난해 9월부터 항공권 예약을 자주 취소하거나, 장기간 출국하지 않고 시내면세점에서 면세품을 빈번하게 구매하는 외국인에 대해서는 면세품 현장 인도를 제한하고 있다.

관세청은 나아가 면세품 현장 인도 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면세 물품에 면세품 표시를 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관세청 관계자는 “관세 물품의 불법 유통에 대한 관리 방안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며 “현장 인도 제도를 포함한 다각도의 방안들을 현재 최종 조율하고 있는 단계로, 이달 중순 전에는 방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화장품 매장을 운영하는 하광용 씨는 “지난해 SNS상에서 제품을 정상가보다 싸게 파는 10개 매장을 색출해 화장품 본사에 징계조치를 요구한 적이 있었다”며 “화장품 본사가 매출 증대를 위해 이런 불법 유통에 개입하고 있거나, 혹은 눈감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임대환 기자 hwan9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