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文은 자기 말하고, 트럼프는 흘려듣는 ‘겉도는 회담’ 그칠 우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를 위해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들어가면서 잠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美는 빅딜·로드맵 강조하는데
韓은 핵동결후 관계개선 주장
양국 ‘동상이몽 충돌’ 가능성

‘동맹’ 한목소리때 중재도 가능
‘비핵화까지 제재’는 유엔 원칙
美 ‘스몰딜’ 결코 합의 안할 것

종전선언, 핵동결후에나 가능
너무 일찍 주는건 ‘안보자해’
‘포괄적로드맵’부터 받아내야

제성호(61)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언론 기고와 세미나·토론회 발표 등을 통해 왕성하게 정부의 남북협상, 북한 핵 문제 접근 방식 등을 비판해왔다. 국제법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로스쿨에서 국제법과 국제인권법, 북한법, 분단국 법률문제, 통일법 등을 강의하고 있다. 서울대 법대에서 학사·석사·박사학위를 받은 뒤 10년 동안(1991~2000년) 통일연구원에서 연구위원으로 근무했고, 법무부 남북법령연구특별분과위원회 위원, 통일부·외교통상부·국방부 정책자문위원, 외교통상부 인권대사 등을 지낸 약력은 남북관계와 평화체제, 북한 인권 분야에서의 그의 내공이 간단치 않음을 보여준다. 지난 1일 제 교수의 자택 인근에 있는 서울 용산구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나 2시간 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2월 28일 결렬됐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후속 움직임부터 대화를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한·미 정상회담이 오는 11일 미국에서 열린다. 그 뒤 문 대통령은 북한과 접촉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르면 김정은과의 정상회담 1주년인 이달 27일 판문점에서 다시 만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문 대통령이 결렬된 미·북 협상을 재개하려 노력할 것으로 보이는데, 성과가 있을까.

“한·미 간에 긴밀한 공조가 안 되고, 미국과 한국 간 입장에도 차이가 있다. 미국은 빅딜과 로드맵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핵을 동결 내지 관리하는 것에 만족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를 국면전환으로 삼아 남북관계에 속도를 내려고 한다. 그런 한·미 간의 입장 차가 최근에 드러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부분에서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 본다. 결국, 한·미 간에 신뢰가 마련되지 않으면, 동상이몽의 충돌이 있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국 정부는 영변 핵시설 폐기, 장거리 미사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장의 해체 등과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개설 등을 맞바꾸는 스몰딜도 괜찮다고 보는 것 같은데 미국은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은 대량파괴무기, 우라늄 핵시설, 핵신고와 (비핵화) 로드맵 이런 것들이 포함돼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한·미 간에 상당한 편차가 있는 것 같다.

“한·미는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한·미 간에 갈등이 있으면 북한은 오히려 이를 이용하는 상투적인 수법을 쓸 것이고 북한으로서는 지금 미국하고 해봐야 비전이 없다고 생각하면 내년 미국 대선 뒤를 노릴 것이다. 과거에 북한과의 협상 때 핵시설 폐쇄, 동결에 약간의 합의 이행이 있었고, 영변 냉각탑 폭파 쇼도 있었다. 하지만 진실의 순간, 검증 단계에서 북한이 항상 거짓말을 하면서 모든 게 무너졌다. 합의는 어떻게든 하더라도, 마지막 검증의 순간에서 항상 뒤집는 모습을 많이 보여왔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불신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영변 핵 폐기 카드에 만족하지 않은 것이다. 스몰딜에 만족하면 부지하세월로 비핵화를 해결하지 못하는 과거 전철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미국은 과거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지금 확고한 것 같다.”

―문 대통령이 움직일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인가.

“우리 측에서는 중간 단계 딜을 만들어가서 미국 양보와 북한 양보를 절충하려 할 것이다. 그 안에 내용 구성은 고민해봐야겠지만 종전선언, 북·미 연락사무소 개설도 들어갈 것으로 본다. 하지만 미국이 제재 해제를 받아들지는 않을 것 같다. 영변 핵시설 폐기와 핵 신고를 잘 엮어서 북·미가 회담장에 다시 나오도록 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본다. 문제는 중재자를 하려면 한·미 간 신뢰가 있고 공동보조를 계속 취했어야 했다. 우리와 미국은 동맹이다. 북핵 위협 앞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야 동맹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북핵 위협에서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다. 신뢰가 확고하지 않으면 미국에 가서도 문 대통령은 자기 말만 하고 미국은 ‘알겠다’고만 하는, 겉도는 협상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진짜 중재자가 되기 위한 조건, 신뢰에 대해 자기 점검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북한에 너무 기울어져서는 안 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눈높이와 미국의 눈높이에는 차이가 있다.”

전문가답게 자료도 보지 않고 팩트와 해석을 줄줄 꿴다. 그래서 답변 중에 조금씩 제동을 걸며 일부러 반대쪽에 서서 질문을 던져봤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신뢰가 없는 상황인데 곧바로 빅딜로 갈 수 있나. 단계적 접근이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는데.

“그게 요즘 말하는 스몰딜에서 플러스 알파 정도를 추가해서 이른바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충분히 괜찮은 거래)이라는 것인데 그게 결국 북한의 전략에 말려드는 것이다. 현재의 핵을 관리, 동결하는 데 그칠 수 있다. 핵물질은 그대로 두고 핵무기 추가 생산은 중단·동결하는 것에 그치는 것, 과거나 현재의 핵무기·핵실험은 묻지 않겠다는 것, 그런 합의를 해놓고 단계별로 하자고 하는 얘기도 있는데, 북한과 협상할 때는 시한이 없이 접근해야 한다. 무진장 협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금만 진전시켜놓고 뭐가 있었다고 광고하면서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을 다시 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그런 (동결) 단계는 사실 과거에도 많이 했었고,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를 막지 못했는데 과거의 전철을 되풀이할 것이냐는 비판이 나올 것이 뻔하다. 트럼프는 그런 생각도 했겠지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은 그런 식으로 접근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여러 가지 정치적 결과로 결국 노딜이 나온 것이다. 미국 고위 당국자들은 볼턴이 북한 협상 전략을 아주 잘 꿰뚫고 있다고 하더라. 잘못된 합의를 하느니 안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유엔 제재가 진행되고 있고, 한·미 간 동맹이 강조돼야 하는 상황이다.”

―미·북 간 교착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한국이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문재인 정부 생각인 것 같은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결의가 2017년까지 10번 이뤄졌다. 북한에 대해서 핵무기, 대량파괴무기, 탄도미사일을 다 포기하라는 것이고, 사실상 북한을 불량국가·위험국가로 보는 것이다. 일반국가에서는 자위적 수단으로 인정되는 탄도미사일도 북한은 쓰지 못하게 제재했다. 영구적으로 유엔에서 안보리가 통제권을 갖고 궁극적으로 북핵을 해체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북한이 체제개방이 된다고 해도 안보리 결의를 수용해야 한다. 통일을 한국 중심으로 해도 우리는 북한의 핵무기를 못 쓰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의사일 뿐 아니라 유엔 안보리의 입장이다. 만약 최악의 경우 앞으로 북한 위주 통일이 된다고 해도 개혁·개방과 북한이 국제통화기금(IMF) 가입 등을 하기 위해서는 안보리가 말하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영원히 제재하겠다는 거다. 미국이 대리해서 북한과 협상할 뿐이지 이는 전체 유엔의 입장이다. 그런데도 한국이 북한을 감싸고도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국제 규범이나 유엔의 메커니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편협한 사고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유엔 제재하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뭘 설득하려 하지 말고 이를 상수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단계에서 과도한 대미 요구는 한·미 간 갈등만 불러오지, 비핵화에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우리 정부가 스스로 목표를 낮추고, 미국과 목소리를 함께 내야 한다. 미국 입장은 확고한데 엇박자를 내봤자 비핵화에 도움이 하나도 안 될 것으로 본다.”

―우리 정부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포괄적인 비핵화 로드맵이 나오고 난 뒤 이행을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고 본다. 9·19 공동성명(제4차 6자 회담 중이던 2005년 9월 19일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국제원자력기구(IAEA)로 복귀한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또 한반도 평화협정, 단계적 비핵화,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공격 약속, 북·미 간의 신뢰구축 등을 골자로 하는 선언이다)처럼 하는 것이 차라리 쉬울 수 있다. 거기 보면 비핵화 로드맵도 있고 단계를 따라가면 종전선언까지 자연스럽게 가게 돼 있다. 9·19 선언 중 핵 동결, 핵 불능화, 핵 폐기라는 3단계가 있는데. 지금 돌아가는 것을 보면 핵 동결조차 안 됐다. 핵 동결도 안 된 상황에서 종전선언을 이야기한다. 지금 정부는 9·19 공동성명체제에 비해서도 한참 더 나아갔다. 핵 동결에 이어 핵 불능화, 당시에 마지막 핵 폐기의 입구로서 종전선언, 핵 폐기의 마지막 단계로서 평화협정 이야기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왔었는데 지금은 핵 동결조차 안 된 상황에서 핵 폐기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어폐가 있다. 북한의 살라미 전술 등 협상 패턴을 봤을 때 종전선언을 너무 일찍 내주는 것은 안보 자해라고 봐도 좋다. 종전선언이라는 것은 상당히 신중을 기해야 한다.”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진다는 말인가.

“그런 여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일부 비정부기구(NGO) 등이 그런 얘기를 할 것이다. ‘전쟁이 끝났는데 왜 미군이 있냐’는 여론을 일으킬 수 있다. 우선은 합동군사훈련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우리가 그동안 했던 통상적 군사훈련 이런 것을 북한에서는 북침 훈련으로 보고, 군사협정 위반이라고 시비를 걸었다. 그래서 이제 작전계획, 참수작전 이런 말은 못하게 됐다. 다 북한을 위협하는 것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상적인 군사훈련은 안보 주권으로서, 실시돼야 한다. 종전선언은 북한에 대해 쓸 수 있는 카드 하나를 스스로 버리는 자충수가 될 것이다. 나는 종전선언을 핵 폐기의 입구로서, 핵 동결과 불능화 다음 단계인 핵 폐기의 입구에서 사용하는 것은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 핵 동결 합의조차 제대로 못 한 지금 이런 조치를 하겠다는 것은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를 스스로 버리는 것이라 본다. 지금은 평화를 촉진해야 하는데 오히려 평화협정에 가기도 전에 우리의 중요한 안보적 수단을 잘못 사용하면 안 된다.”


지난해 10월 23일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34일 전 김정은과 합의한 ‘평양공동선언’과 그 부속합의서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합의서’를 비준해 야권의 비판을 받았다. 정치선언에 불과한 남북정상회담합의서(판문점선언)는 국회 비준 동의를 요구하더니 이행조치가 담겨 있어 국가 간 조약으로 볼 수 있는 군사합의서는 국회 동의 없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비준했다는 것. 지난해 4월 27일 있었던 판문점선언 후 5개월 뒤인 9월 19일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 평양에서 만나 평양공동선언을 채택했다. 그 부속합의서인 군사분야합의서는 ‘판문점선언’에 담긴 비무장지대(DMZ)의 비무장화, 서해 평화수역 조성, 군사당국자회담 정례화 등을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후속 조치가 명시됐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가 오는 11일 있을 한·미 정상회담과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당시 교수님께서 남북 군사분야합의서에 대해 ‘주권 제약의 입법 사항이 있기 때문에 국회 비준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하셨다.

“군에 있는 정책통들이나 국회 국방위 소속 의원들도 그렇고, 군사분야합의서가 대한민국의 주권을 심히 제약하고 있다는 인식이 부족하다. 과거 남북정상회담이나 남북관계를 위해 우리가 군사훈련을 중단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일시적 정책적 수단으로서는 그런 것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합의서를 통해 군사 분야를 포기하면 주권이 제약되는 것이다. 군사정보를 수집한다거나 공중에서의 정찰, 어떤 지역에 대해서 무기를 배치하는 것을 중단하게 돼 있는 것이 군사분야합의서다. 이는 우리의 주권에 대한 문제다. 주권 문제라 정부 혼자 합의하면 안 된다. 헌법 60조 1항에 따라 국회 동의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평화수역도 제시됐다. 북방한계선(NLL) 중심으로 하겠다는 것은 우리 국방부 설명일 뿐이고 실제로는 어찌 될지 모른다. 국방부 설명대로 하더라도 NLL 일부 수역이 합의 구역에 들어가 남북한 해양경찰 병력에 의한 공동순찰대가 협의 처리하게 돼 있다. 과거에는 NLL 이남의 수역은 한국이 단독, 배타적으로 주권을 행사했다. 영해 및 접속수역이라는 대한민국 법이 적용됐다. 그러나 앞으론 위반하는 북한이나 외국 선박에 대해 대한민국이 행사할 수 있는 정선, 검색, 나포권이 제약되는 것이다. 거기서 범죄행위가 일어나면 우리가 제한할 수 있는 국가형벌권도 이로 인해 제약된다. 추가적인 주권이 제약되는 것에 대한 문제는 정부가 단독으로 행사할 수 없고 반드시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 없이 비준한 것은 무효라는 말인가.

“법적으로 봤을 때 문제는 분명히 있다. 위헌적 요소가 있다. 합의의 내용과 성질상 국회 사전 동의가 필요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국회 비준 동의를 요구한 판문점선언이 오히려 정치선언에 불과해 국회 동의가 필요 없다는 것인가.

“그렇다. 적절치 않다고 본다. 당시 남북한의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 다방면의 남북관계에 있어서 협력하기로 하는 정치적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한 정치적 신사협정이 판문점선언이다. 이 정부에서는 1차 정상회담으로 나온 게 2018년 4·27 판문점선언이고, 그해 9·19 평양정상회담에서 나온 군사분야합의서가 3차 회담에서 나온 것인데, 이건 정치선언을 넘어 군사분야 이행조치가 명시된 것이다. 이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따라가면 결국 남북관계에서 법치와 역행하게 된다.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합의서’라는 말을 앞에 붙이고, 국회 동의를 안 받아도 된다며 문 대통령이 비준했다. 그리고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 동의를 추진한 건, 일단 국회의 동의를 받아놓으면 나머지 서해 등 주권과 군사안보에 관련된 것들을 다 판문점선언을 위한 것이라며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큰 것인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 동의가 이뤄지면 다른 세부적 선언은 자동으로 실시하겠다는 것이 이 정부의 생각인 것 같은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도 그렇게는 안 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북한이 주장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갈 수도 있다.”

―정부가 연방제 통일을 원한다고 보나.

“연방제라는 말은 안 쓸 것 같다. 위헌적 요소가 있으니까. 다만 우리와 북한이 서로 해석이 다른 합의를 맺을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전직 통일부 차관이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임기 내 남북연합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기본적으로 그때와 유사한 피를 가진 현 정부에서도 비슷할 수 있다고 본다. 남북연합 설치가 목표로 보이는데, 남북연합이 낮은 단계의 연방이다. 물론 높은 단계의 연방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지만, 이는 우리나라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 사실 헌법 66조 2항에 아주 중요한 조항이 있다. 대통령의 책무에 관한 규정인데,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고 돼 있다.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 주권을 지켜야 하는데, 연방제라는 것은 자기 주권을 포기하고 구성국가로서 상위 연방을 두는 것이 된다. 연방만이 주권을 가진다. 외교권, 군사권, 도량형 통일, 통화 발행권, 무역과 관세 자유권이라는 다섯 개 분야는 연방만이 할 수 있다. 밑의 구성국은 이런 주권을 다 포기하고 지방사무, 교육 등에서의 권한만 행사한다. 연방이 되면 대한민국이 주권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을 포기하면 국가의 계속성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위헌이다. 이 연방제라는 것이 헌법에도 위반된다. 헌법에 영토조항이 있다. 남한이 한반도의 합법정부이고 북한은 반국가단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연방을 구성하게 되면 이는 구성국 정부로 자신의 주권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구성국으로 스스로를 격하하고 북한이라는 반국가단체와 동격으로 가자는 것이 된다. 역대 그 어떤 정부도 포기하지 않았던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는 정통성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

―자유민주주의적 통일이 아니면 다 위헌이라는 거네.

“그렇다. 지난 70년 동안 (정권의 성격이) 보수, 진보를 넘나들면서 우리가 추구해왔던 바람직한 정책을 많이 잃은 것 같다. 헌법 4조에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따른 통일을 한다고 규정했는데 이는 통일의 수단인 동시에 내용을 명시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방식의 통일을 생각한다면 이는 위헌이라고 본다. 역사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연방을 형성한 사례는 없다. 모든 연방제는 동질적 상태에서 구성됐다. 적대적인 이념, 상극적인 이념으로 연방이 구성된 사례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그런데도 연방제를 얘기하는 것은 아주 전략적인 위장평화 공세에 지나지 않는다. 연방제 안에서는 구성국가 간 권한 배분이 필요한데 결국 이런 권한을 적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어떻게 권한을 배분하는 것에 합의할 수 있겠나. 대한민국은 시장경제와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는데, 북한은 토지도 국유제이고, 우리는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지만 북한은 유일사상이다. 이런데 어떻게 연방제가 될 수 있겠나.”

―연방제는 안 되겠지만, 국가연합은 가능할 수도 있지 않나.

“남북연합이라는 형태는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남북연합을 만든다고 해도 우리가 그를 통해 해야 할 것은 북한을 자유민주주의로 이끌어 나오게 하는 것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 즉 북한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통일이라는 모자를 씌우면 또 다른 갈등, 내전 요소, 분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는 지금 단계에서는 남북연합을 구성하기 위한 조건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 정부가 그런 노력을 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점도 있다. 지금은 남북연합 구성의 기초랄까 여건이 극도로 미비하다고 본다. 따라서 그 성립을 위한 기반조성을 위해 노력하는 게 맞는다. 북한 핵 폐기를 통한 한반도 평화 증진, 북한의 개혁·개방 유도, 북한 인권개선 및 민주화,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의 근본적 변화 등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이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남북연합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 단계에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체제의 실질적 변화에 초점을 맞춰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또 중장기적으로 남북연합을 형성할 경우에도 대한민국의 주권과 독립 유지, 국가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 정체성 수호, 법치주의와 국민 기본권 보장 등 헌법적 가치에 부합되게 이뤄져야 한다. 즉 북한식 연방제통일방안을 수용하거나 영합하는 것이 돼선 안 될 것이다.”

―무리하게 통일을 추진하기보다 차라리 분단 상태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동의한다. 북한 핵무기가 고도화되기 전, 북한이 핵무장 선언을 하기 전까지, 즉 과거 1990년대까지 우리가 정책적으로 뭐라고 했냐면 한반도에 평화를 뿌리내리고 다방면으로 북한의 체제 전환을 유도하자고 했었다. 그런데 이제 핵 문제가 터져서 모든 것을 덮어버렸지 않나. 북한과 교류, 협력을 하려 해도 유엔 제재까지 있는 상황이다. 유엔 제재의 상수 안에서도 우리가 아무 일도 안 할 수는 없으니까 통일을 위한 걸음은 내디뎌야 한다. 다만 퍼주기 식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유엔결의를 위반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북한 인권을 얘기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그럼 전쟁하자는 거냐’라고 하는데 인권을 얘기해서 전쟁이 난 적도 없고, 이건 너무 저자세다.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평화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인권 문제도 함께 다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권 문제 해결이 안 되는 평화는 가짜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상회담에서 ‘당연히 인권 문제가 의제가 돼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우리가 북한 수용소를 당장 해체하라는 것도 아니고 납북자 문제, 국군 포로 문제는 말을 하자는 것이다. 왜 거론조차 못 하나. 대통령이 전향적으로 김정은의 결단을 촉구하는 발언은 할 수 있지 않나. 그럼 보수세력도 환영할 텐데 대통령은 인색해서 일반 기자회견에서건 한·미 정상회담에서건 북한 인권에 대해 단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다.”

인터뷰 = 김세동 사회부 부장 sdg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