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경의 요즘 클래식>섬세하고 지적인 피아노 선율…격정적 오케스트라와 ‘시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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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음 & 조너선 노트

꿈꾸는 사람은 모두 행복할까? 지난 7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손열음(사진 왼쪽) 협연, 조너선 노트(가운데) 지휘,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손열음이 협연한 슈만 피아노 협주곡 A단조는 너무나 아름다운 꿈이 손에 잡히지 않아 괴롭고 아픈 노래처럼 펼쳐졌다. 노트가 이끄는 로망드 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6번 ‘비극적’은 삶을 뒤덮는 어두운 악몽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포기한 이의 절규가 녹아 있었다. 두 시간 남짓 펼쳐진 이날의 공연은 1000명이 넘는 관객을 환상적인 꿈의 풍경으로 데려갔다.

지난 3월 제네바에서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지휘 수재나 멜키)을 연주했던 손열음은 등이 깊게 파인 옅은 색의 드레스를 입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등장했다. 맑은 음색과 유려한 흐름을 보이면서도 밀도 높은 소리로 시종 긴장감을 부여했다. 찬란한 사랑의 노래를 들려주면서도 그 안에 담긴 다듬어지지 않은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냉정한 듯 지적인 해석, 자유롭고 드라마틱한 몰입에 양발을 하나씩 딛고 선 그의 연주는 늘 의욕이 넘친다. 손열음이 많은 이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가 이러한 긍정적 에너지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다소 뜬금없지만 손열음의 연주가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스크린 속 배우 김태리를 닮아 있을 듯하다. 솔직하고 당당한 매력, 여성스러운 분위기, 단단한 내공으로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내놓는 영리한 청년 같은 음악이다. 앙코르곡은 슈만 로망스 Op.94-2로,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의 악장 스베틀린 루세브(오른쪽)와 함께 연주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악장 출신으로 사랑받던 루세브를 그리워하는 한국 팬들을 배려한 선곡이었다.

슈만의 협주곡에서 매끄럽게 하나의 질감을 이루기보다는 의욕적으로 생동감 넘치는 음상을 빚어내던 로망드 오케스트라는 ‘비극적’의 도입부부터 강력한 사운드로 청중의 귓가를 사로잡았다. 노트가 밤베르크 심포니와 녹음해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호평을 받은 2013년 음반(BR-Klassik)에 비해 다소 들떠있는 듯했지만 무대 장악력만큼은 확실했다. 노트의 강점 중 하나는 말러 작품의 구조적 아름다움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데 있다. 전체 구조를 면밀히 이해한 채로 그 틀 안에서 단 한 발도 벗어나지 않은 채 완벽하게 자유로운 연주를 주도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말러의 포효가 노트의 뛰어난 연출로 드라마틱하게 펼쳐졌다.

1악장의 대비되는 두 개의 테마는 노트의 지휘 아래 완전히 다른 표정으로 그려졌다. 느린 악장에서는 고요한 전경을 그저 펼쳐 보이는 게 아닌, 이내 모든 걸 뒤덮어버릴 강력한 비극에 대한 두려움을 꾹꾹 눌러 담아 전달했다. 그리고 비로소 4악장. 저음부의 악기들까지 음량을 최대치로 끌어 올리고, 플루트와 호른 같은 섬세한 악기에도 연주자들은 있는 힘껏 숨을 불어 넣었다. 나무 해머를 두 번이나 내리치는 가히 절규에 가까운 연주에도 노트는 더 크고 절박한 소리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듯 격정적으로 지휘했다. 100명이 넘는 단원 전부가 존재감을 과시하는 동안 객석에서 느껴지는 짜릿함과 두려움, 그리고 허탈함까지 모두 말러에 대한 노트의 통찰력이 빚어낸 결과물이었다. 너무하다 싶을 만큼 울먹이게 되는 비극적 여운은 말러도, 노트도 의도한 바 그대로리라.

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 롯데콘서트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