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CT & Science >사건자료 1차 분석 뚝딱 …‘AI와 협업하는 法’ 배우는 변호사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법무법인 율촌의 ‘eYulchon’ 플랫폼 개발팀이 지난 4일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리걸 서비스 앱 개선방안을 놓고 회의를 하고 있다. 율촌 제공

■ 인공지능 최전선(AI Frontier) - ④ ‘리걸테크’ 선진국 발돋움 하는 한국

법무법인 율촌,자체시스템 개발
김영란法 시행초기 자문 쇄도에
370만가지 경우 진단 앱 만들어

대륙아주,AI엔진‘유렉스’도입
업무지원 만족도 아직 엇갈려
“더 친해지도록 변호사들 교육”

檢, 디지털포렌식에 AI 접목 중
암호화폐 등 신종범죄 대처 활용
국가 클라우드센터로 키울 계획

한국의 법률 인공지능(AI) 최전선은 어디쯤 와 있을까. 기술과 제도, 인식 모두 리걸테크(Legal Tech) 선진국으로 불리긴 어렵다는 게 중간 결론이다. 기술은 법률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수준을 넘지 못했다. 단순 전산화를 넘어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즉 빅데이터와 AI의 지능화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AI 전문가, 그것도 법률까지 아는 하이브리드 지식인은 거의 없다. 제도 역시 늑장 걸음이다. AI 벤처와 변호사의 동업을 허용하는 변호사법 개정안(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에서 여전히 논의단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진흙 속에서도 작은 연꽃들은 피어나고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연구소 통제실 모습.

◇변호사들에게 AI와 함께 일하는 법 가르치는 로펌 = 김앤장, 태평양, 광장 등 대형 법무법인 톱 3보다 도약을 꿈꾸는 10위권 내 로펌이 AI 협업에 더 적극적이다. 크게 내부 팀과 외주의 두 갈래 방향이 있다. 어느 쪽이든 베타판을 현장 변호사들이 사용하며 개량해야 하기에 끊임없는 소통은 필수다. 법무법인 율촌은 지난 2014년 ‘eYulchon’을 자체 개발해 운용 중이다. 소속 변호사 업무 보조보다 의뢰인 지향을 내건 점이 특징이다. “고객의 업무 흐름 속으로 스며 들어간 플랫폼 비즈니스”가 목표다. 청탁금지법 가이드 앱과 약사법·공정경쟁규약·전자결재를 융합한 컴플라이언스(compliance·준법) 앱이 대표적이다. 일명 김영란법이 처음 발효되자 율촌의 고객사는 접대 한도나 위반 여부에 대해 쉴새 없이 법적 의견을 구했다. eYulchon은 아예 370만 가지 경우를 상정한 자가진단 앱을 무료 제작·배포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스마트폰 앱에 만날 공직자의 소속기관을 입력하면 추가 문답으로 법 저촉 여부, 식사·선물이나 강의비 한도를 알려준다. 컴플라이언스 앱 역시 제약사 고객 맞춤형으로 약사법·의료기기법 위반 가능성을 기안단계부터 자가진단하고, 의무화된 지출보고 및 작성도 자동 생성해준다. 예컨대, 개별 제품설명회는 월 4회를 초과해 동일 의료인에 경제적 이익을 제공할 수 없다는 법령·규약·내규에 어긋나지 않도록 고객 스스로 앱에 물어가며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 율촌과 eYulchon은 지난해 홍콩에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선정 혁신상을 받기도 했다.

법무법인 대륙아주는 작년 초 국내 AI벤처 인텔리콘과 협약을 체결하고 법률 시각화 내비게이션 및 법령·판례 동시검색 AI 엔진 ‘유렉스’를 전격 도입했다. 1년이 흐른 현재의 반응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와 “더 써봐야 안다”로 갈린다. 기존 수작업에 익숙한 관성 때문인지, 업무 지원 정밀도의 미달 때문인지 판정은 아직 유보 상태다. 대륙아주 리걸 프런티어팀장인 김형우 파트너 변호사는 “처음 접한 사건을 준비할 때 5∼6인분 밥상을 턱 차려주는 효과는 있는 것 같다”며 “편견 없이 더 친해질 수 있도록 다른 변호사들을 계속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계·법률에 이어 최근 컴퓨터공학까지 공부 중인 김 변호사는 “어떤 기술이냐보다 구체적으로 무슨 업무를 얼마나 도와줄 수 있나에 집중한다”며 “텍스트 마이닝, 자연어 처리 같은 AI 기술이 아니라도 광학적 문자판독(OCR)만 시계열로 잘 정리하면 형사사건에서 검찰 증거기록의 모순성을 드러내는 유력한 무기가 된다”고 강조했다.

◇AI 검사와 수사관은 조심, 또 조심 = AI 검사는 가장 예민한 분야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기법을 정형화하는 기술 구현도 어렵고, 인권침해 우려도 강하다. 검·경의 과학 수사가 다음 단계인 지능화로 진입하려 하지만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는 이유다. 경찰의 과학수사는 아직 지문, 족윤적, CCTV 영상 분석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검찰 디지털포렌식센터는 빅데이터 기반의 증거 분석 시스템에 AI 접목을 시도하는 중이다. 박현준 대검 디지털수사과장은 “대기업을 수사하면 테라바이트(TB)급 대용량 증거자료를 압수한다. 조희팔 사건 정도만 돼도 압수 파일 400만 개, 계좌도 2000만 건에 달한다”며 “PC, 스마트폰, AI 스피커 등에서 수집된 이메일, 통화기록, 회계 및 전자결재 같은 다양한 종류의 빅데이터를 사람이 모두 검토한다는 건 불가능”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현재 통합디지털증거분석시스템을 통해 시간·장소·인물별로 자료배치를 시각화하고, 수십 개 금융기관에서 받은 다른 서식의 계좌 내역을 통합하는 등 데이터의 효율적 처리에 최대한 힘쓰고 있다. 하지만 이제 AI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한계에 직면했다. 이인수 대검 디지털포렌식연구소장은 “이미지와 음성을 인식·분석하는 시각·청각 지능은 물론, 범죄의 패턴을 추출하는 인지 지능의 판단능력까지 뒷받침돼야 암호화폐 사기 같은 신종범죄에 대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경찰·해경과 금융감독원 등 18개 특별사법경찰, 공정거래위원회 등 7개 조사감독기관의 디지털 증거 데이터를 한곳에 모아 AI로 통합 분석하는 국가 디지털포렌식 지원 클라우드 센터를 추진 중이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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