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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 푸른 별에서 너와 나는 게재 일자 : 2019년 04월 10일(水)
성님네 형수가 들이닥친 담날, 오산댁은 뒷정리도 못하고 내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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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 김의규 화백

구자명·김의규 부부 작가의 미니픽션 - (21) 시방부텀 봄이여

좀 내비두지 않고 왜 쑤석거려
읍내는 왜 델고가 술 쳐마시나
여편네는 내가 원흉인 줄 알어

오산댁이 강반장 믿고 의지해
현장따라 댕기며 밥해줬는데…
그 따우 찌질한 짓거리를 해?
이런 시러베 자슥들을 봤나!

오해 풀려 오산댁 다시 온다니
우리 발목 잡던 겨울귀신 가고
훠이~훠이~ 시방부터 봄이여~


“염병, 춘삼월 된 지가 한참이구먼 으째 이리 썰렁한 겨?”

곽 목수는 잔뜩 움츠려 팔짱을 낀 채 함바집 안으로 들어섰다. 말이 함바지, 그걸 꾸려가던 사람이 떠난 지 일 년도 더 된 컨테이너 농막이다. 인근의 농업대학 연구소 공사가 끝난 후 방치돼 있는 것을 공사 동료들이 사랑방처럼 쓰고 있었다. 오늘 그 공사 때 십장을 맡았던 강 씨가 한 팀으로 일했던 다섯 사람에게 기별을 해왔다. 읍내 오일장에서 고등어 몇 손을 샀으니 오랜만에 한잔하자는 거였다. 강 씨는 함바집 아낙이 버리고 간 업소용 고추장 깡통으로 만든 화로를 지피고 있었고, 그 맞은편에선 ‘데모도’ 손 씨가 생선을 신문지에 펼쳐놓고 소금을 뿌리다가 특유의 삐딱한 미소를 지었다.

“금일 장 괴기가 물이 좋은갑네. 간이 착착 배는 것 좀 봐유. 흐흐.”

삼겹살을 그렇게 좋아하던 강 씨였으나 지난해 심장에 무슨 시술인가를 받고 난 후로 육고기를 끊고 주로 생선을 안주 삼았다.

“어여 와. 춥제? 일루 와서 불 좀 쬐게나.”

말을 제법 살갑게 하는데도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 공사 때 현장소장과 강 씨 사이에서 중재자를 자처했던 곽 목수가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운을 뗐다.

“강 반장 무슨 일 있수? 으째 얼굴이 서리 맞은 고구마마냥 꺼실하구먼.”

강 씨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제 옆에다 통나무 깔개 하나를 밀어 놓으며 자리를 권했다. 곽 목수는 시오리 떨어진 다른 면에 사는 미장공 박 씨와 도장공 양 씨가 늦는 것은 이해됐으나 농막 바로 앞마을에 사는 조적공 김 씨가 아직 오지 않는 게 의아했다. 나이는 곽 목수나 강 반장과 비슷한 연배로 나머지 세 사람보다 연장자였지만 늘 제일 앞서 와 있곤 했는데 별일이다 싶었다.

“김형은?”

묻기 바쁘게 손 씨가 뜨악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안 오는 게 나아유, 그 영감. 반장님 속만 뒤집잖유.”

이건 또 무슨 소리? 싶었으나 곽 목수는 강 씨가 직접 입을 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강 씨는 비닐봉지에서 소주와 컵, 젓가락 따위를 꺼내놓느라 부스럭대며 쉽사리 속을 털어 놀 낌새가 아니다.

“뭐 그치들은 어차피 좀 늦을 테니 우리 먼저 시작헙시다. 괴기도 꿉고….”

손 씨가 그새 적당히 달아오른 불판에 생선을 올리자 짭짤 비릿한 냄새가 창고 수준으로 퇴락한 썰렁한 공간을 금세 여염집 부엌처럼 아늑하게 만들었다. 곽 목수는 침을 꼴깍 삼키며 서둘러 소주병 하나를 땄다.

“자, 뭔 일인지 몰라도 얼른 한잔 털어 넣고 얘기해봅세. 괴기가 살집도 실하고 기름이 자르르한 게 제법 맛나 뵈네…. 동상이 질 내논 미스 홍 허벅지 같구먼. 흐흐.”

고등어를 뒤집던 손 씨가 대뜸 받아쳤다.

“뭐여? 그짝 손 솔찮케 탄 오산댁 궁둥짝 같진 않구유? 그 아줌씨가 여그 뒷정리도 옳게 못하고 내뺀 게 성님네 형수가 들이닥친 담날 아녔남….”

시답잖은 농지거리 몇 마디 오가는 사이 낮술이 두어 순배 돌자 중늙은이 세 사내는 안색이 흑백에서 컬러 필름, 목소리는 돌비 사운드로 바뀌며 술판은 제대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말을 아끼고 있던 강 씨가 큼큼 헛기침을 하더니 버럭 내질렀다.

“그러게 왜들 그 누일 좀 내비두지 않고 자꾸 쑤석거렸어! 김가만 해도 그렇지, 지난달 오산댁이 지 여편네 점방 옆이다 실내포차 내겠다고 다시 왔을 때 얌전히 좀 있었시믄 동네 여자들이 그렇게까지 쌍심지 돋궈 반대했겄어? 읍내는 왜 델고 나가 오밤중까지 붙잡아놓고 쳐마셔대길 쳐마셔대! 막판에 멋도 모르고 불려온 나를 알리바이 삼고 빠져나가니 우리 여편네는 내가 원흉인 줄 알지, 하! 그러고도 여태 미안타 소리 한번 없이 슬슬 피하기나 허고….”

그제야 사태의 전말을 대충 꿰게 된 곽 목수가 혀를 차며 강 씨의 술잔을 채웠다. 김 씨와 친한 박 씨나 양 씨도 필시 이 일로 인해 마음이 편치 않아 미적거리고 있거나 오지 않을 심산인 듯했다. 자신을 포함한 그 현장팀은 근동에서 단합이 잘되기로 호가 난 팀이 아니던가. 그들 여섯은 오랜 세월 쌓아온 끈끈한 연대로 노조가 따로 필요 없는 결속력을 지녔기에 어떤 고용인도 얕보지 못했다. 십수 년 만에 아주 사소한 일로 그 결속이 깨질지도 모르겠단 위기감을 강 반장도 느꼈기에 오늘 회동을 소집한 게 아니겠는가. 곽 목수는 목소리를 한 톤 더 높여 내질렀다. 강 씨의 성질을 익히 잘 아는 그이기에 이럴 때 어찌 나가야 할지를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시러베자슥을 봤나! 그 따우 찌질한 짓거릴 하다니…. 내 그 자슥을 당장 찾아가 따져야겠네. 오산댁이 강 반장을 친오래비처럼 믿고 의지해 현장마다 따라 댕기며 갖은 고생 마다 않고 우리 밥을 해준 건데 얼마나 억울했겠나!”

그러면서 곧 뛰쳐나갈 기세로 벌떡 일어서는데 함바 문이 홱 열리며 꽃샘바람이 한 허리 성큼 쓸려 들어왔다. 박 씨와 양 씨에 이어 김 씨가 쭈삣거리는 걸음으로 들어섰다. 그들 사이에서 백칠쟁이라 불리는 양 씨가 허옇게 조백한 머리를 숙여 강 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장님, 지들이 많이 늦었쥬. 이 성님 집에 들러 같이 오니라 그랬슈. 형수가 오해를 풀고 오산댁 가게 들오는 거 돕기로 혔다네유.”

구부정히 서 있던 김 씨가 마침내 결심한 듯 몸을 곧추세우며 강 씨와 눈을 마주했다.

“그려. 내가 여편네를 설득했어. 그게 우덜한테 두루 좋을 일이라고. 읍내 안 나가 댕기고 동네서들 마시면 아닌 말루다, 뭐 사고 날 일 있겄어?”

키가 큰 미장이 박 씨가 소주병 하나를 집어 들더니 긴 팔을 휘둘러 술을 여기저기 뿌려대며 선포했다.

“에잇, 우리 발목 잡던 겨울 귀신 다 나가그라. 훠이~ 훠이~ 시방부텀 봄이여, 봄!”

아랫말 매실밭을 가로질러 왔는지 박 씨 점퍼에 붙어온 매화 이파리들이 그가 움직일 적마다 휘날려 사내들 이마 위에, 술잔 속에, 고등어 위에 소금꽃처럼 피어났다.



구자명 소설가

한국미니픽션작가회

창립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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