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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철환의 음악동네 게재 일자 : 2019년 04월 11일(木)
‘운명의 길’ 서로의 벗이 되어… 함께 걸어온 음악인생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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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춘·박은옥 부부

20세기 말 예능국 사무실에 고성이 울렸다. “야, 네가 정태춘이냐?” 속뜻이 ‘네가 그렇게 노래 잘해?’는 아니었다. 이로움(재미)보다 의로움(의미)을 앞세우려는 ‘의식화된’ PD가 국장에게 받았던 질문이다. 넌 왜 그렇게 삐딱하냐고 물을 때 내가 아니라 세상이 비뚤어진 거라고 답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의로운 길은 외로운 길이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강물엔 유람선’(정수라 ‘아, 대한민국’ 중)도 떠 있지만 ‘새악시 하나 얻지 못해/농약을 마시는 참담한 농촌의 총각들’(정태춘 ‘아, 대한민국’ 중)도 같은 나라에 있었다. 윤동주는 ‘쉽게 씌어진 시’에서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고 자책했는데 정태춘도 이러지 않았을까. ‘세상은 살기 어렵다는데/노래가 이렇게 쉽게 불려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

데뷔 40년을 맞은 정태춘(사진 오른쪽)·박은옥(왼쪽) 특집 KBS ‘열린 음악회’(7일)는 ‘시인의 마을’로 막을 올렸다. 부부의 ‘수상한’ 행적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노랫말 속에 있다. ‘누가 내 운명의 길동무 돼 주리오/어린 시인의 벗 돼 주리오’. 그리고 한 장의 손수건이 등장한다. ‘누가 내게 손수건 한 장 던져 주리오/내 작은 가슴에 얹어 주리오’. 영화의 한 장면이 오버랩 된다. “자네 손수건의 진짜 용도가 뭔 줄 아나?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거라네.” 로버트 드니로 주연 영화 ‘인턴’의 명대사다. 이런 말도 나온다. “뮤지션한테 은퇴란 없대요. 음악이 사라지면 멈출 뿐이죠. 내 안엔 아직 음악이 남아 있어요.” 부부 역시 멈추지 않았다.

▲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시작은 ‘한 송이 꿈’이었다. ‘안녕이란 말 대신/사랑한다고 했지’로 시작하는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의 히트곡 ‘한 송이 꿈’을 작사·작곡한 사람이 정태춘이다. 데뷔곡 ‘촛불’도 연가다. ‘사랑은 불빛 아래 흔들리며/내 마음 사로잡는데/차갑게 식지 않는 미련은/촛불처럼 타오르네’. 나직이 속삭이던 그가 어느 날 ‘다시는/다시는/시청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92년 장마, 종로에서’)고 언성을 높인다. 이것은 변신인가, 배신인가. 지금 그는 노래와 선문답한다. “마음이 부르지 목이 부르니” 아내가 회상한다. “초기 노래는 개인 일기였고 1980년대 후반부터는 사회 일기였다”. 사전검열과 맞서 싸우며 마침내 1996년 음반 사전심의제도가 없어져 가수들이 표현의 자유를 넓힌 걸 보람으로 느낀다.

음악회가 불편했던 사람도 있었을 거다. 무대엔 시인의 마을에 걸렸던 ‘높은 곳에 우뚝 걸린 깃발’도 펄럭였고 광주의 참혹한 상처(‘5·18’)도 보였다. ‘열린’ 음악회가 자칫 ‘갈린’ 음악회가 될 수도 있었는데 그 위기를 막아준 이가 바로 전인권이다. ‘어두운 곳 밝은 곳도/앞서다가 뒤서다가’(‘돌고 돌고 돌고’ 중). 돌아온 그는 정태춘과 동갑내기다. 거친 음색으로 친구의 ‘떠나가는 배’를 불렀다.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 떠난 배는 ‘물결 너머로 어둠 속으로’ 떠나간다. 찾은 곳은 어디인가. ‘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저 평화의 땅’, 하지만 ‘남기고 가져갈 것 없는 저 무욕의 땅’이다.

음악동네에도 토지대장이 있고 사는 곳의 용적률, 건폐율에 신경 쓰는 자들이 있다. 이들 부부에겐 40년에 걸쳐 음악동네의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 공이 있다. 이제 부부의 길은 시인의 언덕에서 광화문광장까지로 이어진다. 음악회의 마지막 노래는 그 여자(박은옥) 작사, 그 남자(정태춘) 작곡인 ‘사랑하는 이에게’다. 부부에게 ‘그대 고운 목소리에/내 마음 흔들리고’는 ‘시대 곧은 목소리에/우리 마음 흔들리고’였을지 모른다. 40년 사랑을 지켰으니 노래의 힘은 얼마나 위대한가. 윤동주가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렸듯이 좋은 노래로 세상의 어둠이 조금씩 옅어지면 좋겠다.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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