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괴물기업 아람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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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석유로 먹고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지금 국정 기조는 ‘탈(脫)석유’다.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2016년 ‘석유 중독 탈피’를 선언하며 국가개조 청사진 ‘비전 2030’을 내놓았다. 국내총생산(GDP)에서 광공업·금융·물류 등 비(非)석유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을 16%에서 2030년 50%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오일 파워의 유효 시한은 길어야 2050년이다. 그러나 미국 셰일 석유발 저유가 여파로 탈석유 가도는 순탄치 않다. 재정적자를 메우려고 휘발유·전기 요금을 3배까지 올리면서 기업과 국민 불만이 커져간다.

국영석유회사 아람코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아람코는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소유한 석유화학업체 사빅의 지분 70%를 인수하고, PIF는 확보한 거액 자금을 2030 계획에 쓰는 구도다. 이 과정에서 아람코의 괴물 같은 경영실적이 드러났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2240억 달러로 지금까지 세계 1위였던 애플(818억 달러)의 3배에 육박한다. 화석연료가 혁신산업을 눌렀다는 얘기가 나왔다. 사우디는 1980년 아람코 미국 측 지분을 사들여 국영화한 이후 실적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그러나 사빅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처음으로 회사채 발행에 나서면서 회계장부를 공개한 것이다. 사우디 정부 재정의 약 70%가 아람코에서 나온다.

‘채권 흥행’도 폭발적이었다. 지난해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 뒤 서방 투자자들이 사우디에 등을 돌리면서 100억 달러 목표 달성에 회의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9일 마감까지 10배에 달하는 1000억 달러 주문이 몰렸고, 120억 달러 발행에 가뿐히 성공했다. 최고 수익 기업의 돈 앞에 명분이 굴복한 셈이다. 2021년에는 최대 2조 달러 규모의 기업공개가 예고돼 있다.

아람코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970년대 한국 건설의 중동 진출엔 아람코가 발주한 송유관 공사도 기여했다. 에쓰오일 최대주주이자, 현대오일뱅크 2대 주주다. 사우디의 비전 2030에는 향후 20년간 원전 16기를 짓는 프로젝트도 들어 있다. 그중 우선 발주할 2기 사업에 한국은 미국·중국·프랑스·러시아와 5파전을 벌이고 있다. 한때 유력 후보로 거론됐지만, 문재인 정부의 원전 기피에 미국-사우디 간 원자력 밀약설이 불거지면서 수주전에서 크게 밀리는 기류다. 탈석유와 탈원전의 만남이 해피엔딩이 될 것 같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