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인사 실패, 정권도 나라도 허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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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록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 정치학

평등·공정·정의 취임사와 달리
너무 빨리 찾아온 실망과 좌절
고위직의 심각한 흠결이 主因

진영 벗어나면 인적자원 풍부
‘군주 수준 알려면 측근 보라’
청와대와 내각 一新 시급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바로 이 말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는 어느 대통령 취임사보다도 울림이 있었고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나 취임 2주년이 다 된 현시점에서 그때의 울림과 기대를 간직하고 있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 실망과 좌절 또한 너무 빨리 찾아왔다.

이번에 문 대통령이 지명했던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흠결은 나라 지도층 일각의 진면목이기도 해서 새삼스러울 게 없다. 일찍이 1970년 시인 김지하는 1905년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긴 을사오적에 빗대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오적(五賊)으로 지목해 특권층의 부정부패를 신랄히 비판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오늘에도 일부 특권층의 부정부패는 당시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에 100% 도덕적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처럼 비도덕적인 것도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현재 지도층 일각의 편법·불법·비리·부패는 일반 국민이 용인해줄 수 있는 수준과 범위를 넘어섰다. 이렇게 사회 지도층 일부가 부패했으니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가 청렴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36개국 중 30위로 여전히 하위권이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부패는 한 민족의 늦가을’이라고 했는데, 지도층의 타락은 공동체의 쇠락을 가져온다는 게 인류 역사의 교훈이다.

영국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인간이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 역사의 가장 중요한 교훈이라고 지적했는데, 문 정부도 역대 정부의 인사정책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그 실패를 답습하면서 이번 4·3 재·보선에서 민심의 엄중한 경고를 받았다. 더구나 문 정부는 2016∼2017년 그 추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정부임을 자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재 등용은 국민의 뜻에 부합하고, 권력 사용은 겸손해야 하는데 적잖은 사람이 벌써 문 정부를 노무현 정부의 2기 정도로 여기고 있다.

수많은 내우외환(內憂外患)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가 518년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 경영에 참여한 관료들이 사비위빈(士非爲貧·벼슬 하는 것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함이 아님), 즉 벼슬을 치부의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도를 펼치기 위한 선비정신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일부 탐관오리가 없진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대다수는 국가 경영을 논했지 사익 추구를 위해 지위를 악용하지는 않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가 경영에 참여하는 지도자들은 국가이익과 집단이익, 또는 공익과 사익 중 어느 것을 우선시하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선진국과 후진국은 여러 가지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선진국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가 사회적 신분이 높으면 높을수록 도덕적 의무와 책임 또한 높아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뿌리를 내린 데 있다. 이 덕목은 고대 로마 이래로 서구사회를 지탱해온 힘이기도 하다. 로마 시대 귀족들은 평시에는 거액의 돈을 국가에 기부했으며, 전시에는 솔선수범해 참전했다. 로마제국의 저력은 바로 이런 고위층의 책임 의식에서 비롯됐다. 영국이 영토는 한반도보다 조금 더 큰 유럽의 조그만 섬나라에 불과하지만, 350년 가까이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도 사회 지도층의 희생과 헌신에 기인했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중 25세 이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생의 4분의 1이 전사했으며, 제1·2차 세계대전에서도 영국 고위층 자제들이 다니는 이튼스쿨 출신만 2000여 명이 전사했다. 이는 노동자 가정 자녀들의 희생자 비율보다 몇 배나 높은 수치다.

우리나라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여러 방면에서 인적자원이 풍부한 인재공화국이다. 진영 논리만 벗어나면 국가를 위해 헌신할 인재는 차고 넘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가 가진 두뇌의 우열을 측정하려면 그의 측근을 보면 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 진지하게 측근의 두뇌와 인품을 되짚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그야말로 ‘인재’를 등용해 남은 임기 3년 동안 국가적 난제들을 해결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청와대와 내각의 일신(一新)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