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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9년 04월 12일(金)
거짓말은 ‘권력’… 이기는 것은 대화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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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말 읽는 법 / 베티나 슈탕네트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기술발달로 ‘가짜뉴스’ 잇따라
‘포스트 트루스 시대’ 용어까지
인식론적 관점서 접근해 분석

거짓말, 생각을 상대에게 전달
사람들 행동을 바꾸려는 시도
중간이 없는 흑백사고 만들어

나치의 출현 등 비극적 인류史
알든 모르든 ‘결여된 진실’ 탓
듣는 사람도 결국은 현실 외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미국의 유력 언론들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가 ‘거짓말쟁이’다. 트럼프는 이들 언론에 대해 ‘페이크 뉴스’라고 되받아친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우리의 유튜브에서, 심지어 정치판에서 조작된 팩트로 제작한 온갖 페이크 뉴스가 줄을 잇고 역사적 사실마저 부정하는 거짓말이 횡행한다. 기술발달과 더불어 개인까지 뉴스 유통 수단을 갖게 되면서 거짓말이 날개를 달았고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마저 모호해진 시대다.

오죽하면 ‘포스트 트루스(post truth) 시대’ ‘포스트 팩트(post fact) 시대’라는 말이 우리 시대의 징후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용어로 정착했을까.

1966년생 독일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이 책의 저자 베티나 슈탕네트는 2011년에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을 출간해 독일뿐 아니라 미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철학자 해나 아렌트의 논란이 끊이지 않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에서 다루는 ‘악의 평범성’을 정면으로 뒤집었기 때문이다. 나치의 관료로 유대인 학살에 관여한 아돌프 아이히만의 예루살렘 재판과정을 보며 아렌트는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체제 속에서 악을 행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슈탕네트는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연기’한 거짓말에 속았다”고 판단했다.

슈탕네트는 2017년 독일에서 출간된 이 책에서 역사와 학문에도 내재해 있는 거짓말부터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거짓말까지, 철학 특히 인식론으로 접근해 분석한다. 이런 접근법은 흔치 않다.

거짓말은 인간 세계에서 가장 일상적인 것이고, 세상은 거짓투성이라는 푸념은 인류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저자는 “거짓말하는 우리 능력의 시초에는 ‘나’라는 자아가 있다. 인간이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말과 실천을 분리할 수 있는 능력 덕분”이라고 말한다. 거짓말은 인간 본성의 일부이며, 빼놓을 수 없는 능력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거짓말이라면 화들짝 놀라 부들부들 떤다.

더구나 거짓과 진실의 구분은 철학의 시초부터 지금까지 정리되지 못한 문제다. 진실이 존재하는지, 또 왜 존재하는지 하는 것은 인식론의 오랜 과제였다. 진실을 의식과 현실 사이의 관계로 이해하면서, 진실의 존재를 확신하지 않는 게 현대 인식론의 경향이다. 따라서 거짓말이 좋다, 나쁘다라는 이분적 접근은 거짓말의 정체와 개념을 직시하지 못하게 한다. 저자가 인식론적으로 거짓말에 접근하는 이유다.

반면 왜 거짓말이 있는지 하는 물음은 쉽게 대답할 수 있다. 거짓말은 인간이 원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뿌리는 인간 안에 있다. 그렇다 해도 거짓말이 끼치는 해악은 분명하다. 저자는 “모든 사람이 다 거짓말을 한다면, 결국 막판에 가서는 아무도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거짓말의 진실 가운데 하나다. 그저 저마다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랄까”라고 반문한다. 한마디로 거짓말은 신뢰를 깨트려 협력을 어렵게 만든다. “결국 신뢰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믿게 만드는 것보다 더 거짓말다운 거짓말은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무엇보다 거짓말을 하는 순간 우리는 진실과 허위가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 사이에 회색지대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에도, 거짓말을 하려는 의도에서 우리는 흑백사고에 매달리게 된다. 이로 인한 인간 사회의 극과 극의 대립은 저자가 꼽는 거짓말의 주요한 폐해다.

이런 인식론적 접근을 통해 저자는 ‘거짓말하기’라는 행동이 어떻게 선택되는지에 집중한다. 거짓말은 생각을 겨눈다. 저자는 “거짓말은 사람의 행동을 바꾸려는 시도다.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그가 세계와 관련해 하는 생각을 훔치고, 나의 생각을 전달해 그 자리에 가져다 놓는 것이 바로 거짓말”이라고 정의한다. 이처럼 거짓말은 오로지 대화를 통해서 현실로 나타나는데, 그렇다면 거짓말은 ‘대화’이고 더 나아가 대상을 지배하려는 ‘권력’이라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저자는 이를 나치의 출현 등 역사에 견준다. 저자는 “우리는 다른 모든 사람과 공유하는 세계보다 자기 마음에 더 드는 세계를 갈망한다. 거짓말은 이런 갈망을 노린 유혹”이라고 말한다. 나치의 사례에서 보듯 거짓말은 오로지 권력 관계 안에서만 현실로 나타나는데, 거짓말의 수신자가 거짓말하는 사람과 함께 행동하면서, 알면서든 모르면서든, 거짓말로 세상을 지어낼 때에 현실은 거짓말로 물들여진다는 것이다. 거짓말에서 진실의 결여만 볼 뿐, 거짓말이 존재하는 현실을 외면하는 우리의 습관이 나치의 출현 등 인류사에 비극을 남겼다.

어떻게 거짓말이 난무하는 가운데 진실을 찾고, 거짓말이 만드는 권력관계를 해소해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을까. 해결책도 진실을 발견하는 게 본질인 인식론에서 찾아진다. 이 세계에 절대적 진실은 없다고 했을 때 한계가 있는 ‘나’의 인식능력은 ‘너’를 필요로 한다. ‘함께 생각함’이 필요하다. 거짓말이 대화라면 그것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도 대화뿐이다. 저자는 “함께 지식을 찾는다는 것은 제3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솔직해야 남의 솔직함을 기대할 수 있다’는 개방성과 열린 자세를 통해 수평적 소통이 가능해져야만 한다. 그럴 때 거짓말이 가지는 권력관계는 해소된다는 것이다. 256쪽, 1만5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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