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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19년 04월 12일(金)
비밀공간… 이름도 없이… 원자폭탄 만든 그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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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남자들은 전쟁터로, 고향에 남은 남자들은 전쟁 관련 산업에 종사했기에 미국의 ‘맨해튼계획’이 비밀리에 추진된 ‘사이트 X’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알마 제공

- 아토믹 걸스 / 드니즈 키어넌 지음, 고정아 옮김 / 알마

2차 세계대전때 ‘맨해튼 계획’
우라늄 농축하는 도시에 투입
원자폭탄 관련 용어조차 숨겨

가족 떨어져 작은 막사에 살아
잡역부부터 核과학자까지 조명
무명의 여성들 덕에 종전 이뤄


세상에서 우리 모르게 벌어지는 일들이 수두룩하다. 우리 모르게 벌어지는 일들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삶을 끝도 없이 허물 때가 많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맨해튼계획’도 그런 일 중 하나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과학 프로젝트 중 하나”였던 맨해튼계획은 잘 알려진 것처럼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원자폭탄을 만드는 일이었다. ‘아토믹 걸스’는 세상 누구도 모르게 진행된 ‘맨해튼계획’의 실상을, 그곳에서 온몸으로 삶을 받아낸 노동자들의 증언을 되살린 책이다. 특히 숨겨진 원자 도시에서 일한 ‘숨겨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1942년 9월, 샌프란시스코 북쪽 110㎞ 떨어진 보헤미안 그로브에서 맨해튼계획의 시작을 알리는 한 회합이 열렸다. 회합 이후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벨기에 사업가 에드가 상지에가 보유한 막대한 양의 ‘고순도 듀벌로이(Tubealloy)’의 구입이 결정됐고, 그것을 실험할 부지 ‘사이트 X’도 사들이기로 했다. 테네시주 동부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역이 획기적 전시 모험 사업의 부지로 고려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 도시는 오직 한 가지 목적, 즉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에 쓸 우라늄을 농축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지만, 원자폭탄이라는 말이나 우라늄이라는 말은 그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비밀리에 진행된 프로젝트인 만큼 그곳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모두 다른 말로 대체됐다. ‘듀벌로이’는 우라늄이었고, 원자폭탄을 이르는 말은 ‘장치’(Gadget)였다.

세간에는 사이트 X, 즉 오크리지가 “미국의 두뇌와 육체가 평화로운 농지를 번영하는 현대적 공동체로 변모시키고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그곳은 “비밀스러운 특별구역이자 주거지”였으며, 복지와 인권의 사각지대였다. 남자들은 전쟁터로, 고향에 남은 신체 건강한 사람들은 전쟁 관련 산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클린턴 공병사업소(Clinton Engineer Works)라고도 불린 사이트 X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흑인들의 경우 교육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백인과 분리됐고, 하는 일도 대개 노동자, 청소부, 잡역부였다. 아메리카 원주민, 멕시코 출신 건설 노동자도 있었는데, 이들은 “아이들도 키우지 못하고 배우자와 떨어져서 작은 막사”에 살아야만 했다. 외지에서 초빙된 박사들은 “조립식일지언정 널찍한 집”에 산 것과는 대조적이다. 보안 때문에 서로의 이름도 모르고 지내는 경우도 허다했다.

많은 여성은 그럼에도 서로를 의지해 의문이 가득한 이곳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들었다. 캐티 스트릭랜드는 청소부로, 남편과 함께 K-25(기체확산 플랜트)에서 일했다. 종일 “자신이 맡은 구역을 깨끗하게 쓸고 닦았”지만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고,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관심사는 숙소에서 제대로 음식을 만드는 것이었다. 클린턴 공병사업소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27세, 당연히 사랑도 곳곳에서 피어났다. 각종 통제와 금기가 난무했지만, 사람들은 그곳마저 살 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애썼다.

에미상을 수상한 작가이자 프로듀서인 저자 드니즈 키어넌은 낮고 가난한 사람들이 클린턴 공병사업소에서 일하는 사이, 원자폭탄 혹은 우라늄 농축을 포함한 과학 발전에 기여한 여성 과학자들의 삶을 군데군데 포진시킨다. ‘핵시대의 주요 개척자 중 하나’로 평가받는 엔리코 페르미와 어깨를 나란히 한 이다 노타크, 리제 마이트너 등 여성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도 세밀하게 보여준다. 역사는 크고 작은 사건과 인물이 뒤섞여 만들어진다는 것을 저자는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책 말미 ‘드니즈 키어넌과의 대화’에는 이런 뉘앙스가 잘 드러난다. “나는 여성의 역할은 크건 작건 모든 역사적 사건에 새로운 관점을 더한다고 생각하고, 역사 서술이 포괄성과 정확성을 목표로 한다면 가능한 한 모든 관점과 경험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책 내내 맨해튼계획에 대한 이렇다 할 평가는 내리지 않지만 ‘들어가는 말’에서 이것만큼은 명확히 한다. 클린턴 공병사업소에서 일한 무명이 사람들 덕분에 “완전히 달라진 세상, 새로운 시대가 태어났다”고 말이다. ‘드니즈 키어넌과의 대화’ 마지막 대목에서도 이렇게 덧붙인다. “맨해튼계획에 들어간 돈, 인력, 자원을 빈곤, 암, 노숙과 싸우는 데 썼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아토믹 걸스’는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결정적 원인, 즉 원자폭탄에 얽힌 거시사와 미시사를 섭렵하며, 과연 우리 시대의 과제는 무엇인지 제법 묵직한 통찰을 던진다. 528쪽, 2만3500원.

장동석 출판평론가·‘뉴필로소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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