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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파워인터뷰 게재 일자 : 2019년 04월 12일(金)
“4차 산업혁명 정책, 제도개혁 없이 기술혁신에만 매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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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명예교수가 연구차 자료실을 찾았다가 잠시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김 교수는 “4차 산업혁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술발전에만 집착할 게 아니라 정부, 규제, 대외 등 3개 부문에서 혁신을 추진해야 하고 가장 중요한 게 정부 혁신이다”라고 강조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명예교수

‘기술만 배운’ 中양무운동 실패
‘다 바꾼’ 日메이지유신은 성공

AI·빅데이터·자율차 말하지만
20년째 규제개혁 못하고 있어

‘지식산업혁명’의 전제조건은
정부 - 규제 - 대외 ‘3대 혁신’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2030년이면 세계 대학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로봇공학, 나노 기술, 생명공학, 사물인터넷(IoT), 3D 인쇄, 자율주행차 등의 과학기술과 융합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발(發) 변화의 물결로 직업이 감소하고 대학의 역할이 축소될 것이란 의미다. 이런 비관론도 있지만, 정반대의 낙관론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 고용과 함께 교육 수요가 늘 것이란 의미다.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으로 보면 AI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접근하면 인간의 힘든 노동을 AI 로봇이 대신해 주고, 로봇이 할 수 없는 일과 고령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재교육 등 고등교육 수요도 증가해 대학의 역할을 더 확장할 수 있을 것이란 의미다. 김태유(68) 서울대 산업공학과 명예교수의 견해로, 그는 4차 산업혁명 대신 ‘지식산업혁명’이란 용어도 선호한다. 농업사회를 산업사회로 바꾼 게 산업혁명이고 산업사회를 지식사회로 바꾸는 게 지식산업혁명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 패권의 향방, 미래의 변화, 위기 상황을 진단한 책으로, 4차 산업혁명 관련 유튜브 조회 수 1위를 기록한 ‘패권의 비밀’의 주저자(lead author)다. 문화일보가 김 교수를 만난 것은 4차 산업혁명의 전환기에 우리 정부·사회의 대응과 자세,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가 어떨지에 대한 강렬한 궁금증의 발로 때문이었다. 분주한 연구와 강연 일정을 쪼개 서울 중구 새문안로 문화일보 사옥을 찾은 김 교수는 2시간의 인터뷰 동안 이런 가능성을 현실화하고 4차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정부혁신’ ‘규제혁신’ ‘대외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지금 4차 산업혁명을 추진한다고 하면서도 마치 실패한 중국의 양무운동(洋務運動·1861∼1894년에 청나라에서 진행된 자강(自强) 운동)처럼 기술발전에만 파묻혀 있는데, 성공한 일본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1868년 일본이 서구식 근대화를 목표로 추진한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교수 생활 전반부를 에너지 경제 분야에 할애해 깊이 연구하기도 했던 그는 미세먼지 현안과 에너지 공급에 대한 거시적이고 체계적인 대안과 아이디어도 개진했다.

―4차 산업혁명이 우리에게 새로운 ‘개항(開港)’을 요구한다고 했다. 국내 4차 산업혁명의 진행 수준을 진단해 달라. 성공할 수 있는 것인가.

“1차 산업혁명부터 접근해 보자. 8000여 년간 지속하던 농업사회를 산업사회로 바꾼 대혁신이 산업혁명이다. 1780년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성숙해 산업사회로 진입하는 데 150년 정도 걸렸다. 학자들이 전반부를 1차, 후반부를 2차 산업혁명으로 구분했다. 현재 산업사회가 미래지식기반 사회로 이행하는 대혁신이 지식산업혁명인데 이 또한 너무 길어서 전반부를 3차, 후반부를 4차로 통칭하게 된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패한 양무운동과 성공한 메이지유신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청나라는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패해 큰 충격을 받았다. 자존심이 완전히 무너졌다. 뼈저린 반성과 함께 ‘서양의 기술만 서둘러 배우자’(중체서용·中體西用)는 양무운동을 시작했다. 10년간의 투자 끝에 한때는 부강한 산업국으로 발전했다고 자부하게 됐다. 이른바 동치중흥(同治中興)이다. 이를 주도한 리훙장(李鴻章)은 ‘중국의 비스마르크’로 불렸다. 양무운동 7년 후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단행했다. 그러나 1894년 청·일 전쟁 때 청나라는 일본에 패했다. 1차 산업혁명에 실패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의 앞선 양무운동이나 일본의 뒤진 메이지유신 둘 다 과학기술 발전과 산업혁명을 추구했지만, 전자는 실패했고 후자는 성공했다. 중국은 제도혁신 없이 오직 기술발전만 추구했지만, 일본은 ‘혼만 빼놓고 다 바꾼다’(화혼양재·和魂洋才)는 각오로 제도혁신을 통해 산업혁명을 추진하면서 명암(明暗)이 완전히 갈렸다.”

―우리나라가 현재 과학기술 혁신만 추구하고 있다는 것인가.

“지금 우리는 AI,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등 기술발전에만 매몰돼 있다. 실패한 양무운동이 그랬다. 우리가 성공하려면 성공한 메이지유신처럼 제도혁신과 함께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래서 평소에도 정부혁신, 규제혁신, 대외혁신 등 3대 제도 혁신을 주창해 왔다. 우선 정부혁신이 중요하다. 이게 없으면 규제개혁에 성공할 수 없다. 김대중 정부 때 규제개혁위원회가 설치돼 연 1000여 명의 공직자가 규제 개혁·철폐에 매달려 왔는데 규제가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많아졌다. 규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과잉규제는 산업발전을 저해하고 10∼20년 후에 경제성장 동력의 상실을 초래한다. 지금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4차 산업혁명의 진척이 없는 것도 과거 10∼20년 전 규제 개혁을 못 했기 때문이다.”

―공직의 의사결정, 규제 철폐에 대한 올바른 접근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공무원의 전문성을 키우면 과잉규제는 풀리고 과소규제는 방지된다. 예컨대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낙후는 과잉규제 때문이다. 반대로 세월호 침몰사고나 의정부 연쇄화재는 과소규제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공무원을 어떻게 전문가로 만드느냐가 관건이다. 지금은 고급 공무원을 부처 내에서 순환 보직을 시키기 때문에 전문성을 키울 수 없다. 공무원의 승진, 전보에서 부처 간 벽을 넘어 유사 전문 분야에서 계속 종사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정보기술(IT) 산업 관련 전문가라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일하다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또 행정안전부로 승진해 유관업무를 맡는 방식이다. 보건복지, 에너지환경, 외교·안보 등도 마찬가지다. 공무원을 부처에 소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에 기반을 둔 ‘직무군’에 소속시키면 전문성을 갖춘 정책 관료 즉,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로 양성할 수 있다. 직무군 제도를 도입해 공무원을 전문정책 관료로 바꿔야만 과잉규제가 풀리고 과소규제는 방지해 4차 산업혁명에 성공할 수 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주관 기관이 대통령실이나 국무총리실이 돼야만 이 같은 제도혁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인재 육성과 인력 운용은.

“젊은 인재는 될 수 있으면 4차 산업혁명 분야에 종사하도록 해야 한다. 한 명의 젊은 영재가 벤처기업이나 중견기업에서 차세대 스마트 반도체를 개발하면 공장 자동화에서 가전산업에 이르기까지 전 산업의 생산유발 효과를 불러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 유동지능(流動知能·fluid intelligence)이 높은 젊은 세대는 이공계뿐 아니라 패션, 디자인 등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가 말하는 ‘일모작 직업’이다. 다른 한편으로 배려심, 경험, 경륜, 판단력, 이해력 등 결정지능(crystallized intelligence)이 높은 중장년 세대는 이모작 직업(일반행정관리 공무원, 상담·서비스 등)을 갖게 해야 한다. 지금 4차 산업 분야에 종사하는 젊은이들도 은퇴해서는 이모작을 통해 계속 활동할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오늘의 청년을 행복하게 만들고, 노년을 책임지는 게 이모작 사회의 핵심이다. 그래서 사회혁신을 위한 ‘은퇴가 없는 나라’란 책을 썼다.”

김 교수는 이 대목에서 한·러 관계의 극적인 개선이 앞으로 4차 산업혁명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바로 대외혁신에 속한다. 4차 산업혁명은 북극 항로를 중심으로 진행될 것이란 의미였다. 그는 “한국, 중국, 일본은 역사적·지정학적으로 경쟁 관계를 벗어날 수 없다. 보완 관계란 윈윈이 가능한 상생(相生)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며 “경쟁 관계란 승패가 엇갈리는 상충(相衝) 관계를 벗어날 수 없는데 러시아가 우리에게 친숙한 이웃은 아니었지만 수천 년간 반복된 악연도 없었다”고 말했다.

▲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명예교수가 북한 미세먼지 대책에 대한 대비와 함께 한·러 파이프라인 가스(PNG) 사업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 PNG가 우리나라를 비껴가는 순간 선조들이 지켜온 금수강산을 아무 쓸모 없는 땅으로 만들어 자손들에게 물려주는 참담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4차 산업혁명을 떠올리면 일자리의 급격한 감소를 제일 걱정한다. 청년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720만 개 직업이 사라지고 200만 개가 생긴다고 전망했다. 결국, 500만 개의 직업이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의 직업이 없어진다는 것이 마치 사실인 양 인용하고 전파하고 또 주장했다. 나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직업은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근무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어떤 변화를 예상할 수 있나.

“1516년 영국의 인문주의자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Utopia)’를 썼다. 그는 유토피아에서는 아침에 3시간 일하고 점심 먹고 한숨 자고 오후에 3시간 일하면서도 필요한 재화를 충분히 생산한다고 했다. 지금 우리의 노동, 생산 조건이 거의 이에 부합한다. 토머스 모어가 책을 쓸 당시에는 하루 12시간씩 일했으니 6시간 일하는 나라가 유토피아였다. 앞으로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 일은 로봇과 AI가 맡게 될 것이다. 새로운 직업이 더 많이 생긴다. 로봇과 AI가 엄청난 규모의 가치를 창출하면 결국 인간의 소비가 늘 것이고 서비스 분야에서 수많은 직업이 생겨난다. 4차 산업혁명이 성숙하면 가정에서 조리도 세탁도 하지 않게 되는 등 모든 가사노동이 서비스업으로 대체될 것이다. 또한, 노동시간의 감소와 여가의 증가는 여행과 오락의 급증을 초래해 수많은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낼 것이다. 1960년대만 해도 손톱을 관리해 먹고살겠다고 하면 농담으로 알았겠지만 네일아트는 이미 유망한 서비스업이 됐다. 직업이 없어질까 봐 4차 산업혁명을 지연시키자는 주장은 인구증가가 앞설까 봐 빈민을 구제하지 말고 질병과 기아를 방치하자는 주장(1798년 맬서스의 ‘인구론’)만큼이나 잘못된 것이다.” (2018년 다보스포럼에서 제기한 직업의 미래 보고서는 2022년까지 새로운 직업 1억3300만 개가 생기고 7500만 개가 없어져 결국 5800만 개의 직업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나의 예측이 옳았음이 증명됐다”고 했다.)

김 교수는 국내 자원경제학자 1세대로 에너지·자원, 정책·기술분야의 최고 전문가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전력에서 발전회사를 분리하고 민영화하는 정부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시기상조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정책에서 소외되는 좌절을 겪었다. 셰일오일의 등장에 따른 유가 폭락도 경고했다. 국세(國稅)낭비와 국부(國富) 유출을 막기 위해 해외 유전투자를 중단하자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절망해 제자들에게 에너지 연구에 대한 ‘절필’을 선언한 바 있다. 그런 김 교수가 환경 관련 최대 현안으로 부상한 미세먼지와 에너지 분야에 대해서는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중국발 미세먼지를 놓고 수년째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 미세먼지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중국의 미세먼지는 최악의 상태를 벗어나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에서 도입하는 파이프라인 가스(PNG)를 2014년에 계약했는데 곧 보급이 시작된다. 그런데 북한은 대책이 없다.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북한이 많은 저질탄을 무계획적으로 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우리가 제재할 방법도 없다. 지금이야 봄 한철 중국발 미세먼지 피해를 겪지만, 앞으로 한반도는 연중,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미세먼지 피해국이 될 것이다. 미세먼지에 관한 한 앞으로 중국보다 북한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하다.”

―해결책이 있을까.

“북한은 우리나라와 비교해 에너지 소모량이 25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미세먼지 발생은 우리의 2∼3배 정도 된다고 한다. 앞으로 북한 경제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하면 풍부한 석탄자원을 활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석탄발전을 모두 폐기한다 해도 북한의 석탄발전은 막을 방법이 없다. 북한은 지금도 미세먼지로 인한 조기사망자가 인구 비율 기준으로 중국보다 많다. 그렇다고 가난한 북한이 LNG를 구매해 쓰겠나? 북한이 저질탄을 대량 소비하면 우리 자손들은 1년 내내 세계에서 가장 나쁜 미세먼지를 마셔야 한다.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말하는 전문가가 아무도 없다. 대책은 첫째, 러시아 PNG를 한반도로 연결해 북한이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청정 석탄발전 기술을 개발해 북한에 보급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한반도의 대기 질 개선을 유도할 수 있다.”

―러시아 가스관이 꼭 북한을 거쳐야 하는 또 다른 배경이 있나.

“2011년 한국과 러시아는 남·북·러 가스관 건설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그때도 러시아 가스관이 북한을 거쳐야 할 7가지 이유를 제시한 바 있다. 세력균형과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는 보험 역할자, 강물과도 같은 가스관의 특성을 고려한 우리 몫 확보, 한국의 준 산유국 효과, 한·러 경제협력 윈윈 효과, 북한이 러시아 가스관을 손상할 가능성이 없는 점, 전쟁물자로 전용 불가능한 가스의 안전성, 중국 및 일본이 러시아와 천연가스 협상을 추진하기 전의 선점 효과 등이다. 이에 더해 심각해진 미세먼지 대책으로써 러시아 천연가스는 우리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선택이다. 미국은 셰일가스로 석유를 자급함에 따라 중동 의존에서 곧 완전히 탈피하게 된다. 미국이 ‘세계경찰’로서 역할을 포기할 경우 우리가 중동으로부터 LNG와 석유를 도입하는 데 따른 해양안전은 매우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에너지로 보면 마치 ‘섬’ 같은 존재다. 이 같은, 모두 9가지 측면에서 러시아 PNG 도입과 북한 경유(經由)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이 ‘국가 백년대계’라고 했다. 미국의 제재 등을 볼 때 현실적으로 쉽게 이뤄질 수 있을까.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하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미국 정책결정권자들은 미국의 주적(主敵)은 중국이지, 러시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다. 미국은 장기적으로 일본, 인도, 유럽연합(EU), 러시아와 함께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으로 가고 있다. 비록 당장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분할병합,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논란 등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언젠가 전격적으로 풀 것이라고 확신한다. 준비하지 않고 그 순간을 놓친다면 우리가 얻을 혜택은 하나도 없다. 한·러 협력은 건실한 한·미 관계를 위한 지렛대 역할도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한·러 관계 개선도 그런 점에서 유효한가.

“4차 산업혁명과 함께 북극 항로를 통해서 엄청난 운송 수요가 발생할 것이다. 한국과 러시아는 앞으로 몇백 년 동안 보완 관계가 유지될 것이다. 러시아는 가스가 많지만 우리는 없고, 러시아는 기초과학이 발전했지만 우리는 응용과학이 앞선다. 러시아가 지구온난화로 따뜻해지고 우리가 아열대로 바뀌면서 어업, 관광, 에너지 등의 분야에서도 힘을 합칠 게 더 많아질 것이다. 러시아 PNG가 한국에 들어오면 그만큼 한반도가 안전해진다. 파이프라인이 한반도를 경유해 일본까지 연결되면 동북아 전체가 안전해진다. 우려되는 점은 2016년 러·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가 PNG를 사할린에서부터 일본열도를 따라 설치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지금 북방 4개 섬 영유권 문제로 주춤하고 있지만, 만약 파이프라인 설치가 양국 간에 타결된다면 모든 시베리아 에너지가 중국, 일본으로 쏠리면서 한반도는 동북아의 맹지(盲地)가 된다. 지구온난화로 2030년이면 개통될 북극 항로는 대한해협을 거치게 된다. 에너지 공급만 충분히 받을 수 있다면 한반도 남부에 엄청난 규모의 물류단지, 배후산업시설을 동반한 거점항구를 확보할 수 있다.”

―파이프라인을 다루니 국내 전력산업의 현주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듯싶다.

“과거 발전사가 한전에서 분리되기 전에는 석탄, 가스 등 발전연료 구매에서 수요자가 가격결정권을 쥔 ‘바이어스 마켓(buyer’s market)’이었다. 호주, 중국, 캐나다 등이 한전에 석탄을 팔기 위해 서로 경쟁했다. 마켓 파워가 우리에게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발전사 분할 이후 완전히 매도자 주도의 ‘셀러스 마켓(seller’s market)’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발전연료를 해외에서 비싸게 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발전설비 문제 또한 심각하다. 5개 발전사가 경쟁하는 체제에서 발전원가를 한국전력이 떠안게 돼 있으니 어떤 발전사도 외국에서 이미 검증된 값비싼 설비를 도입하지 국내 기술로 새로 개발된 설비를 쓸 이유가 없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LNG 발전소의 가스터빈 150개 모두 미국 GE, 독일 지멘스, 일본 미쓰비시 히타치시스템에서 수입한 것이다. 가스터빈은 LNG 발전 설비비용의 30∼50%를 차지한다. 그런데도 단 한 개도 국산화하지 못했다. 제조업 강국 대한민국의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발전기술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화력발전 원가의 95%는 연료비와 설비장치 비용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듯 전력산업에 관한 실증연구도 제대로 해보지 않은 이들이 경제원론에 나오는 경쟁의 효율만 보고 발전회사를 졸속분리한 게 이렇듯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 발전연료와 설비도입에서 엄청난 국부가 유출되고 있다. 그 모든 부담은 전력을 소비하는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발전산업 분리경쟁으로 인해 미래에는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나.

“앞으로 청정 석탄발전 기술과 설비를 개발해서 북한에 보급해야 한다. 기술과 설비를 개도국에 수출해 탄소배출권을 확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든 다른 개도국이든 석탄을 생산하는 가난한 나라에 신재생에너지 사용을 강요할 수는 없다. 청정 석탄발전과 LNG 발전 및 탄소저감 기술은 지속 가능한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는 물론이고 수출산업으로, 경제성장 동력으로도 매우 유망한 분야다. 그렇지만 현재 5개 발전사가 석탄발전, 가스발전, 석유발전 설비를 골고루 나눠 갖고 경쟁하는 체제에서는 불가능하다. 발전사의 분리경쟁 체제가 대한민국 전력산업의 과거는 물론 미래까지 망치고 있다.”

―전력산업 구조조정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 수 있나.

“물론 있다. 5개 발전사에 골고루 나뉘어 있는 발전설비를 석탄발전회사, 가스발전회사, 석유발전회사 등으로 전문화하는 것이다. 당장 재편하기 어려우면 일단 한전의 독립사업단 체제로 운영하다가 독립시켜도 된다. 시장 만능주의를 맹신하는 신자유주의자와 전력을 모르는 경제학자들에 의해 왜곡된 전력산업구조는 언젠가 개편되지 않으면 안 된다. 더 늦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김 교수는 현재 한국 경제가 위기상황이라고 할 만큼 어렵지만 과거에도 중동 특수, 3저 호황 국면 등을 통해 도약할 수 있었듯 기회는 언젠가 또 찾아올 것이라고 희망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다만 우리가 준비하고 있어야만 하늘이 우리에게 준 기회를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 동력 확보를 위해 3대 제도혁신이나 발전사의 전문화가 절실하다는 데 많은 시간과 공력을 들여 깊이 있게 연구하고 인터뷰에서 집중적으로 강조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됐다. 인터뷰 후 가슴속에 담아뒀던 말들을 모두 털어내서인지 그의 표정이나 어깨가 좀 가벼워 보였다.

인터뷰 = 이민종 사회부 부장 horizon@
e-mail 이민종 기자 / 경제산업부 / 부장 이민종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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