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南北 정상회담 또 하려면 중재자 역할부터 재검토해야

지난 2월 28일 미·북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40여 일 만에 남북 정상회담 논의가 다시 시작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조만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고위 당국자는 “본격적으로 북한과 접촉하겠다”고 했다. 이것이 성사되면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4번째 회담이 된다. 정상이 만나는 것 자체의 의미가 없진 않지만, 이젠 회담을 위한 회담 이상의 성과를 내도록 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북한에는 ‘우리민족끼리’ 전술이 통할 수 있다는 기대를 심어주고, 미국 등 국제사회에는 한국이 북핵 제재에서 이탈하려 한다는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27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지 1년이 다가오고, 미·북 협상의 물꼬를 틀 필요도 있다. 그러나 북핵 문제가 진실의 순간에 봉착했음을 하노이 회담이 보여주었다. 지난 1년 동안 한반도 비핵화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포장했지만, 이젠 양측 비핵화 개념과 전략에 엄청난 괴리가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따라서 남북 정상도 무조건 만나고 보자는 식의 회담은 유효하지 않다. 북한이 불응할 가능성도 있다.

북핵 문제의 진전 없이는 남북관계는 사상누각이라는 것이 더 분명해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11일 “제재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는 적대 세력들에 심각한 타격을 줘야 한다”고 밝혔다. 제재 완화가 없으면 도발할 수 있다는 협박이다. 북핵 폐기의 실질적 진전 없이는 제재 완화가 불가능하다는 단호한 입장을 북한 측에 전해야 한다. 미·북 정상을 한 자리에 앉히기만 하면 된다는 단순한 중재자 역할은 이제 양측 모두로부터 무시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