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시급한 ‘공급 중시’로의 정책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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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기업의 설비투자가 감소하고 민간부문에서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으면서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조선·철강 등 우리의 주력 산업은 중국의 강한 추격으로 산업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다. 여기에 내년부터 미국 경기침체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되며 미·중 간의 무역분쟁으로 중국 경기 또한 하방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약화와 중국 경기침체가 겹치면서 우리 경제는 내수 침체에 수출 감소로 일본과 같이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장기침체 국면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급하다.

먼저, 수요보다 공급을 중시하는 정책을 사용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임금을 올려 소비를 늘려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성장률을 높이려는 소득주도 성장 전략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내수 비중이 큰 경제에서는 작동할 수 있지만 수출 비중이 높은 개방경제에서는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고용을 줄이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또한, 일자리 부족과 성장률 둔화의 주된 원인이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약화라는 공급 측면에 있는 상황에서 임금을 올리는 수요 증대 정책으로 효과를 내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책 당국은 기업 투자를 유도해 과학기술력을 높임으로써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공급 중시 정책으로 승부해야 한다. 경쟁국들 또한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올인하고 있다. 일본은 ‘재흥정책’으로 신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으며 중국 또한 ‘제조 2025’ 산업 정책으로 미래의 산업 기술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 신기술 인력 유치와 양성도 중요하다. 정부는 인공지능(AI), 바이오 그리고 정보통신 산업 등 신산업 부문에 우수한 기술인력을 유치하고 양성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과거와 같이 구호만 있고 구체적인 추진 계획이 없는 정책으로는 4차산업 혁명 시기에 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출산율을 높여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 우리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생산가능인구도 큰 폭으로 줄고 있다. 현 상황이 지속되면 저성장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산율과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추진 중인 추경이 확정되면 효율적으로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 저성장으로 인한 세수 감소로 앞으로 재정 적자 확대가 우려되므로 수요가 없어 불필요한 사회 인프라에 재정이 낭비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육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린이집 공급을 확충하고 수도권을 비롯한 부심의 교통지옥을 해소해 집값이 안정될 수 있도록 재정을 사용해야 한다. 직장이 있는 도심 진입이 원활할 수 있도록 교통 인프라가 구축될 때 집값이 낮아지면서 출산율과 잠재성장률이 높아질 수 있다.

한국 경제는 큰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의 추격으로 제조업의 공동화가 우려되며 경기침체 장기화가 전망된다.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과제는 저성장의 함정에서 벗어나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낮추는 것이다. 공급 충격에 직면하고 있는 지금은 임금을 올려 소비 수요를 늘리는 수요 중시 정책 패러다임으로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공급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 산업 경쟁력 제고에 초점을 맞추는 공급 중시 정책으로 승부할 때 한국 경제는 저성장의 함정과 팽배해 있는 비관론에서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