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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Consumer 게재 일자 : 2019년 04월 18일(木)
강의듣고 시험까지… 3시간만에 ‘커피로스팅마스터’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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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가 카페에서 3시간 인터넷 수강만으로도 시험에 만점으로 합격한 후 취득한 커피로스팅마스터 자격증. 이 자격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등록된 민간자격이다.
- ‘자격없는’ 민간 자격증 수두룩… 기자가 직접 취득해보니

“‘직능원 등록 자격증’ 문구에 신뢰 급상승… 사이트 가입하니 무료강의 제공. 20분짜리 15개 동영상 중 9개 들으니 응시 가능. 제공된 39개 기출문제 본뒤 100점 만점으로 자격증 획득. 9만원 수수료 결제하자 발급까지… 아, 자격증은 돈으로 사는 것이었구나.”


취업난의 가중으로 ‘스펙’용 자격증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민간자격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국무총리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직업능력개발원(직능원)에 등록된 민간자격은 2008년 508개에서 2019년 4월 17일 기준 3만3636개로 급증했다. 올해 들어서만 2287개 민간자격이 새로 등록됐다. 과연 이 많은 자격이 제대로 검증이나 된 걸까. 기자가 직접 직능원에 등록된 한 민간자격 취득에 나서본 결과, 교육 과정 및 자격증 발급 절차가 낯뜨거울 정도로 허술하고 형식적이란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너무 많아 선택조차 어려운 자격들 = 지난 3월 21일 오후 5시, 업무를 마친 기자는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 자리를 잡은 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커피 관련 자격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기자의 눈앞에 커피 한 잔이 놓여 있다는 게 커피 관련 자격 정보를 찾은 사소한 이유였다. 커피바리스타, 커피라떼아트, 커피로스터, 커피바리스타전문가, 커피머신마스터 등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되는 커피 관련 자격은 수도 없이 많았다. 수많은 자격 중에서 기자는 커피로스팅마스터란 자격에 시선을 멈췄다. 커피 로스팅은 생두를 볶아 커피 특유의 맛과 향을 생성하는 공정이다. 이 공정을 배우고 익히면 커피에 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이 자격 취득 교육을 시행하는 온라인 교육 사이트(교육원)가 보였다. 교육원에 따르면 이 자격은 직능원에 등록된 자격으로 한 커피바리스타 단체가 자격증을 발급한다. 직능원에 등록된 자격이라니 살짝 믿음이 생겼다. 심지어 교육원은 강의까지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다. 오후 5시 30분, 기자는 바로 교육원에 가입해 강의를 신청했다.

◇부실한 강의와 허술한 수업 관리 = 강의는 총 15개 동영상으로 구성돼 있었다. 첫 번째 강의는 로스팅의 정의를 담고 있었는데 커피 생두를 로스팅할 때 화력이 약하면 밋밋하고 약한 아로마가 형성되고, 강하면 강한 아로마와 탄 맛에 쓴맛이 더해진다는 등 기초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두 번째 강의는 로스팅 머신에 관한 설명, 세 번째 강의는 생두를 감별하는 방법을 담고 있었는데 첫 번째 강의와 마찬가지로 모두 기초적인 내용이었다. 직능원 홈페이지는 커피로스팅마스터 자격을 “커피 로스터가 갖춰야 할 로스팅 이론을 활용해 로스팅 방법, 로스팅 장비의 사용 및 관리, 커피 관련 전반적인 기술을 습득하고 지도하며, 소비자의 기호에 부응할 수 있는 적절한 로스팅 테크닉을 갖추도록 직무를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한눈에 봐도 대단히 전문적인 지식과 역량을 갖춰야 하는 자격이다. 하지만 이 강의가 과연 직능원의 설명처럼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매 강의는 20분가량 짧게 진행됐는데도 불구하고 금세 따분함을 느끼게 했다. 어느 순간부터 기자는 강의에 집중하는 대신 웹서핑을 하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기자의 일탈을 지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기자는 웹서핑을 하는 동안 교육원이 운영하는 온라인 자격 교육과정이 몇 개나 되는지 살펴봤다. 커피로스팅마스터를 비롯해 다문화심리상담사, 정리수납전문가, 책놀이지도사, 자기주도학습지도사, 색채심리상담사, 한자지도사, 공부습관지도사 등 100개가 훌쩍 넘었다. 대부분 직능원에 등록된 민간자격이었다. 직능원 등록이란 광고는 강의의 질을 담보해주지 못했다. 등록은 말 그대로 ‘등록’ 그 자체에 불과했다.

◇3시간 만에 만점으로 자격시험 합격 = 기자는 강의를 더 듣는 일은 의미 없다는 생각에 짐을 챙기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강의를 60% 이상 들었다면 시험 응시가 가능하다는 안내가 보였기 때문이다. 기자가 들은 강의는 전체 15개 중 9개로 딱 60%였다. 당장 시험 응시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고작 스치듯 강의를 몇 개 들은 것만으로 시험에 응시하는 일은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교육원은 친절하게 예상 기출문제까지 제공했다. 기출문제는 사지선다형 문제 총 39개 문항으로 구성돼 있었다. 기자는 기출문제를 손에 쥔 채 시험에 응시하는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기자의 부정행위를 저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시험은 총 20문항이었는데, 단 한 문제도 기출문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고작 문항의 순서를 살짝 바꾼 게 전부였고, 어떤 문제는 문항의 순서까지 그대로 출제하는 배려심을 보여줬다. 결과는 100점 만점. 기자가 모든 문제를 푸는 데 소요된 시간은 5분도 되지 않았다. 카페의 시곗바늘은 오후 8시 30분을 살짝 넘어가고 있었다. 커피의 ‘커’자도 제대로 모르는 기자가 커피로스팅마스터 강의를 들은 지 불과 3시간여 만에 100점 만점으로 자격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이 자격을 취득한 건가 사들인 건가 = 자격시험에 합격한 기자는 교육원에 자격증 발급을 신청했다. 강의는 무료였지만 자격증 발급은 유료였다. 발급 수수료는 9만 원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신청 과정은 간단했다. 자격증을 받을 주소를 기록하고 카드나 무통장입금으로 발급 수수료를 결제하면 끝이었다. 이쯤 되니 자격증을 취득하는 게 아니라 돈으로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발급 수수료가 몹시 아까웠지만,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자격증 실물이나 만져 보자는 생각으로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냈다. 결제는 일사천리로 끝났다. 교육원은 커피로스팅마스터 자격이 취업 시 이력서에 정식으로 기록이 가능하고, 취득 후 갱신이 필요 없는 평생 자격증이라고 설명했다. 직능원 홈페이지에서 커피로스팅마스터란 이름으로 등록된 민간자격을 검색해보니 무려 9개나 나왔다. 짐을 챙기고 나오면서 기자는 카페 아르바이트생에게 혹시 커피로스팅마스터란 자격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모른다고 답했다.

글·사진 =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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