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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파워인터뷰 게재 일자 : 2019년 04월 19일(金)
혁신에 가장 중요한 건 지속성… 진보·보수 따로 있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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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동 대통령 경제과학특보

자본·기술 거쳐 ‘사람투자 시대’
시행착오 축적된 ‘고수’ 키워야

안보이는 길을 열어가는 R&D
청년층 단순 기술만으론 안돼

AI·빅데이터 등 새 패러다임
40·50代 평생혁신 교육 해야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기술경제·혁신정책 전문가다. 기자는 그의 책 ‘축적의 시간’(공저·2015)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한국이 선진국으로 나아가는데 반드시 숙지해야 할 전략서로 여겨졌다. 이어 내놓은 ‘축적의 길’(2017)과 함께 이 교수의 책들은 ‘혁신 신드롬’을 일으켰고 관료, 정치인, 기업인, 직장인, 학생을 매료시켰다. 광범위한 팬덤층도 만들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대선 때 ‘축적의 길’을 정독한 뒤 감명받아 올 초에는 청와대 직원들에게 설 선물로 이 책을 나눠주기도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이 교수로부터 영감을 받아 기회 있을 때마다 “혁신은 실패를 먹고 자란다”고 강조한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지난해 8월 드루킹 댓글 조작 의혹 사건 관련 영장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서울구치소 안에서 이 책을 완독했다고 한다. 이 교수가 지난 1월 30일 ‘대통령 경제과학특별보좌관(특보)’으로 위촉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와의 파워 인터뷰는 지난 17일 오후 서울대 캠퍼스에서 이뤄졌다.

―원래 ‘대통령 경제과학특보’라는 자리가 없었지 않나. 문재인 대통령이 이 교수에게 완전히 반해서 그 자리가 만들어진 것 같다. 영문으로 특보가 ‘special advisor’로 돼 있던데, 경제과학특보가 하는 일이 뭔가.

“내 경력이나 학문 배경에 비춰 보면 과학과 경제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좀 해달라, 그런 취지로 만든 자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보로 임명된 지 석 달이 채 안 됐지만, 그동안 자신의 생각이 정책에 반영됐다든지 아니면 국정 운영에 좀 변화가 있다든지 그런 것을 느끼나.

“내가 말을 잘못 하면 견강부회, 아전인수 그렇게 될 수 있고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 부분이라 조심스럽다. 다만 내가 보기에는 일정 정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작년 하반기부터 경제 행보가 계속 이어지고 있고 벤처 행사 참석이나 기업인 만나는 것 등이 올해 들어서 많아지고 있다. 그런 중간중간에 내가 강조했던 개념들이 들어가니까 뭔가 경제와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아직 교수님이 제안한 것들이 국정 성과로 나타나기를 기대하기는 이른가.

“공무원과 관료사회에서 내가 제안한 것을 바로 정책으로 만들어 예산을 투입하고 성과로 전환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혁신은 길게 봐야 한다. 특히 내 제안들이 정책으로 ‘해석’돼 가는 과정, 그렇게 휴지에 물이 스며들듯이 그런 과정이 나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제시한 키워드와 개념들이 큰 방향에서 ‘해석’돼 가는 게 느껴진다.”

―지금 한국 경제의 각종 지표나 수치가 굉장히 좋지 않다. 경제과학특보로서 교수님이 상당히 부담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사실 경제 문제를 바라볼 때 단기적으로 경기를 안정시키는 것과 중장기적인 성장을 이끄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본다. 일반 시민들에게 와 닿는 경제 정책의 상당 부분은 장기 트렌드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단기 안정과 관련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사실 관심을 두는 혁신은 단기적인 경기 문제가 아니라 장기 트렌드에 관한 문제다. 그래서 내가 하는 얘기는 정부든 기업이든 단기적인 ‘업 앤드 다운’에 관심을 두는 곳에서는 큰 인기가 없다. 귀에 쏙쏙 안 들어오니까.(웃음) 제가 말씀드리는 트렌드는 적어도 10년씩 가는 장기 패러다임과 관련한 문제다. 우리 사회의 그 누구라도 한 사람은 최소한 희미한 촛불을 하나 들고 이 장기 트렌드 문제를 꼭 보고 배터리가 떨어질 때까지 신호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수님의 생각과 제언이 국정 운영 성과로 이어지는 걸 기대하는 게 당장은 쉽지 않다는 말씀인데.

“나는 혁신의 문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라고 본다. 이것은 대통령의 임기를 따질 게 아니다. 혁신 패러다임, 혁신의 루틴이라는 것은 상당히 오래 지속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바꾸고 정착하는 작업은 기본적으로 중장기적인 과제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역대 정부에서 혁신정책이라고 하는 게 지속성이 거의 담보가 안 됐다. 정권이 바뀌면 이전 정권의 정책은 다 지워져 버린다. 다른 것은 지워져도 괜찮을지 몰라도 혁신정책,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지고 산업적으로 성과가 창출되는 이 혁신정책은 지워지면 안 된다.”

―지금 말씀은 사실 거대 담론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권력구조나 정치문화와도 관련돼 있다. 특히 정권 재창출이 되든 정권교체가 되든 전임 정권의 실적이나 성과를 모두 무효로 돌려버리는 게 대통령 단임제의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국정 운영의 연속성을 보장하지 못하니까. 이걸 ‘politics of undo’ ‘무효화의 정치’라 부르기도 한다.

“혁신만큼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전임 정부의 것을 완전 백지상태로 돌리고 제로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면 기술과 경험, 시행착오가 축적되지 않는다. 정치는 잘 모르겠지만 그게 대한민국 국정 운영의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산업과 경제를 힘 있게 끌고 갈 새로운 기술이 어떻게 생겨날 거냐, 어떻게 그런 환경을 조성할 거냐 이런 문제에 한정할수록 더욱 그렇다. 특히 연구·개발(R&D)이라는 게 오늘 이거 했다가 내일 저거 했다 하는 건 문제가 있다.”

―경제과학 특보로서 대통령과 만나게 될 때 최우선으로 건의하거나 제안하고 싶은 내용은 뭔가.

“정부 혁신이다. 내가 꾸준히 대통령 정책실에도 얘기하고 있고 실제로 정책적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부의 존립 근거는 퍼블릭(공공) 서비스다. 정부가 공장이라면 공공서비스는 거기서 만드는 물건이다. 그 물건이 좋아야 한다. 우체국에 간다, 동사무소에 간다고 하면 작년보다 올해 더 서비스가 좋아야 한다. 그런데 정부 서비스는 본원적으로 경쟁이 없는 서비스이다 보니까 혁신이 없어도 사실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정부의 혁신은 민간 혁신을 이끈다. 정부는 우월한 위치의 구매력을 갖고 있다. ‘바잉 파워’가 엄청나다. 지금 정부의 직접 구매 비용만 100조 원이 넘어간다. 단일한 의사 결정 구조화에서 이런 바잉 파워를 행사하는 주체가 정부밖에 없다.”

―정부 바잉 파워의 내용과 방향이 경제의 혁신, 산업구조의 변화를 이끈다는 것인가.

“그렇다.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수준을 더 높이는 건 기술혁신을 채택함으로써 가능하다. 예를 들면 더 높은 수준의 국방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첨단 무기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런데 국방부가 무기를 만드는 게 아니다. 민간으로부터 사는 거다. 정부가 요구하는 스펙과 내용이 무기 혁신을 이끌게 된다. 정부의 바잉 파워가 어떻게 행사되느냐에 따라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기업가형 국가’(Entrepreneurial State)를 쓴 영국의 마리아나 마추카토 교수는 ‘국가가 경제의 판도를 바꾸는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책의 한 챕터를 털어 아이폰 사례를 썼다. GPS나 터치 기술 이런 걸 다 공공부문에서 제시했고, 애플은 공공부문이 퍼블릭 목적으로 개발하게 된 기술을 종합해서 만들었다는 거다.”

―그게 시장경제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정부 역할이고 정부가 혁신해야 할 이유라는 말씀이네.

“따지고 보면 미국의 기술 혁신 대부분은 정부가 선도한 것이다. 예컨대 로봇 기술의 상당 부분은 미 국방부가 리드한다. 중국의 인공지능(AI) 기술은 공안(경찰)이 이끈다. 범인을 잡기 위한 안면 인식 안경을 공안이 요구하니까 기업이 서로 경쟁하면서 밤새워 개발해 납품한 거다. 이렇게 개발된 안경을 쓰고 공안이 3만 명이 운집한 콘서트장에서 수배자 한 명을 잡았다는 뉴스를 본 일이 있다. 그 기술을 공안이 개발한 게 아니고 공안은 그런 스펙을 공급하라고 시장에 요구한 거다.”

―공공서비스의 질이 경제의 질을 결정하는 좋은 사례로 보인다.

“그렇다. 정부 혁신이라는 돌을 던지면 두 개의 파문이 생긴다. 경제가 그것을 마중물로 삼아서 높은 부분의 시행착오를 할 수 있는 일종의 트램펄린(안전망) 같은 역할을 해준다. 이게 민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다. 이것으로 다시 정부의 퍼블릭 서비스를 좋게 한다. 양쪽 효과가 동시에 있다. 우리 공공부문이 얼마나 큰가. 중앙정부, 지방정부, 공기업 등등. 주택공사가 엄청난 임대주택을 짓는데 거기에 에너지 관리용 칩을 하나 쓴다고 하면 판교에 있는 벤처와 정보기술(IT) 기업들은 개발하기 위해 난리가 날 거다. 그게 혁신으로 가는 길이다. 정부가 기업가적 마인드를 가지고 시장과 산업을 리드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되려면 정부와 공공부문이 굉장히 똑똑해야 한다.”

―우수한 인재들이 정부와 공공부문에 많이 들어가야 하겠다.

“그렇다. 지금은 기업이 혁신을 이루지 못하고 신산업을 만들어내지 못하니까 젊은이들이 직업적 안정성을 찾기 위해 공무원이 되려고 아우성인데 이건 잘못된 열기다. 기업가형 국가를 만들기 위해 똑똑한 인재들이 공무원이 되려고 한다면 그게 옳은 것이다. 아직 한국은 행정의 혁신 친화성 측면에서 갈 길이 멀다. 개선할 점이 많다.”

―대통령에게 또 무엇을 건의할 건가.

“사람에 대한 투자다.”

―교수님의 책 ‘축적의 길’에서 말한 이른바 ‘고수’(高手) 만들기인가.

“그렇다. 산업 정책의 패러다임 변화와 관련해서 사람에 대한 투자가 핵심적 키워드가 돼야 한다.”

―그럼 먼저 산업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 필요성을 설명해야 할 것 같다.

“1960년대 이후 1980년대 초반까지 산업 기반 없이 시작한 고도성장기에는 산업화의 동력이 ‘자본 투자’였다. 우리 산업 정책이 크게 변곡점을 겪은 건 1980년대 초·중반인데 이때부터 나라 전체가 약속이라도 한 듯 R&D를 하기 시작했다. 기업 연구소 숫자도 이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때 등장한 경제 키워드가 ‘기술 투자’다. 산업 기반을 마련한 후 제대로 먹고살려고 보니까 기술 없이는 안 되겠다, 이렇게 된 거다.”

▲  이정동 대통령 경제과학특보가 지난 17일 서울대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마친 뒤 연구실 밖 캠퍼스로 나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정부의 역할은 통제하고 지시하는 게 아니라 시장의 자율과 민간의 창의를 뒷받침해 혁신으로 이끄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자본 투자 시대가 20∼30년 지속되고 이후 기술 투자 시대가 지금까지 30년을 이어온 거라고 봐야겠네.

“기술 투자는 한국이 뭘 갖고 먹고살 것이냐를 고민하다가 선진국이 길을 내고 밟아온 것 중에 선택과 집중을 해서 빠른 시간 안에 추격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게 이른바 추격자, 즉 ‘패스트 팔로’(fast follow) 모델이다. 추격자 모델에서 중요한 게 기술이었다. 지금도 그 패러다임으로 가고 있는 거고. 그런데 앞으론 더 이상 기술 투자만으로는 안 된다. 추격자 모델을 지금 중국이 더 잘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산이 없다. 우리가 바뀌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래서 지향해야 할 게 ‘사람 투자’다. ‘자본’에서 ‘기술’로 옮아왔고 이제는 ‘사람’으로 가야 한다. 내가 ‘고수’ 얘기를 한 건 이 때문이다. 고수를 키우기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어떻게 투자할 거냐 이게 당면 과제가 됐다.”

―고수라 하면 기술을 가진 사람인데, 단연 기술 습득이 빠른 청년층, 젊은이가 유리하지 않나.

“과거 추격자 시절의 축약형 R&D 같으면 젊은 친구들이 더 잘할 수 있지만 앞이 안 보일 때 길을 열어가는 퍼스트 무버형 R&D는 시행착오의 경험이 축적된 나이 많은 고수가 더 잘할 수 있다. 기술선진국이라는 나라에는 나이 든 분이 많다. 안 가본 경험을 몸에 축적한 고수들이 필요하다. 그런 시행착오의 경험을 축적한 고수가 있냐 없냐는 기술선진국이냐 중진국이냐를 결정한다.”

―어떻게 고수를 만들어낼 수 있나.

“자본은 들여오면 되고 축약형 R&D는 열심히 하면 되지만 고수를 키우는 문제는 국가 전체가 프레임을 바꿔서 챙겨야 한다. 평생 혁신 학습을 해야 한다. 우리는 (대학을 졸업하는) 23세까지만 교육한다. 기껏해야 30대 석·박사가 끝이다. 그런데 그걸로 80세까지 활동할 수 없다. AI, 빅데이터 이런 패러다임 교육이 제일 필요한 건 23세가 아니라 40세, 50세다. 지금 제조업에 300만 명이 근무하는데 30∼50대가 170만∼180만 명이다. 제조업 근무 대졸자만 80만 명이 넘는다. 그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노출시켜 아이디어가 나오게 하고 축적된 경험을 살리게 만들어야 한다. 그게 고수다. 그런 사람들이 경제와 산업 현장의 ‘unsung hero’(이름 없는 영웅)들이다.”

―기술을 갖춘 젊은이만 필요한 게 아니고 시행착오 축적의 역량을 가진 고수가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한다.

“그런 의미에서 혁신 경제와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를 위해 세대교체가 아니라 세대결합이 이뤄져야 한다. 미국 창업자의 평균 나이는 45세다.”

―정부가 요즘 ‘혁신적 포용’이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내가 굳이 그걸 해석한다면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혁신의 성과가 모두에게 공유되고 미치는 것, 두 번째는 혁신의 과정에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것이다.”

―지금 말씀한 철학과 개념이 정권이 바뀌어도 정치 논리를 떠나 경제 산업 현장에 적용돼야 할 텐데.

“혁신은 사실 탈정치화가 필요하다. 혁신을 더 잘 발현케 하려면 정치적 논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혁신은 보수·진보의 문제도 아니고 여야의 문제도 아니며 정치적 논쟁이나 싸움의 대상, 이념적 대상이 돼서도 안 된다. 혁신의 탈정치화는 역설적으로 정치 리더십에 의해 이뤄진다. 이게 정치가 중요한 이유다.”

―혁신 경제와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가 보여주는 미래 비전은 무엇인가.

“과거에는 미래 비전이라는 게 ‘잘살아보세’ ‘국민소득 1000달러 달성’ ‘내 집 마련’ ‘마이 카(my car) 시대’ 이런 것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소득 3만 달러가 넘고 ‘3050클럽’에 가입한 상황에서 더 큰 아파트, 더 좋은 차 이런 게 미래 비전으로 와 닿지는 않는다. 이제 우리 국민 사이에서 ‘혁신이 어떤 방향으로 가면 좋겠다’라는 바람직한 상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나는 그게 ‘사람’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각자 자기 분야에서 조금씩 다른 시도를 해나가고 그걸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 그게 미래 비전이 아닌가 싶다. 경제나 산업계에 계신 분들은 내 얘기가 조금 구름 잡는 얘기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참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교수님이 ‘혁신은 조용필처럼’이라고 했는데, 산업과 경제 현장에 그런 고수가 많아져야 할 것 같다.

“지난해 조용필이 50주년 콘서트를 했는데 당시 막 유행하던 음악 기법을 도입해서 무대를 만들었다고 하더라. 나이 70이 다 된 사람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도 모르는 새로운 걸 시도하는 모습, 그런 고수가 가득 찬 사회가 얼마나 가치 있나. 자기 분야에서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고 그 시도가 뒷받침되는 사회, 실패가 용인되고 시행착오의 축적을 이룰 수 있는 사회, 창조적 파괴가 가능한 사회가 내가 꿈꾸는 미래 비전이다. 고수들을 위한 혁신 친화적 사회안전망이 있어 앞쪽에서는 창조가 일어나게 하고 뒤쪽에서는 밀려난 사람들을 뒷받침해주면서 양자를 다 잡아가는 것, 이게 혁신과 관련한 국가의 일이다.”


―좋은 그림이다. 다만 국가의 역할이 너무 커지는 것 아닐까. ‘큰 정부’의 우려도 있을 것 같은데. 시장의 자율성과 민간의 창의를 강조하는 경제관이 한편에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의 개입과 간섭을 중시하는 경제관이 있다고 본다. ‘큰 정부’는 한쪽에선 선호할지 몰라도 다른 쪽에선 거부감이 크다.

“제가 말씀드린 혁신 정부는 개입과 지시를 주로 하는 큰 정부와는 다르다. 과거처럼 추격자 모델을 선택하고 특정 산업을 찍어서 집중해 자원을 몰아주고 그걸 지시하는 정부라면 큰 정부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런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혁신 과정에서 창의를 뒷받침하고 실패를 용인하는 그런 안전망을 만들어주는 정부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큰 정부 논쟁과는 관련이 없다고 본다.”

―이 정부의 ‘혁신적 포용성장론’은 주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만 염두에 둔 것 같다. 대기업은 잘 보이질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지금 중소벤처기업이 정책적으로 취약한 지원 대상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렇게 보였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혁신 생태계가 중소벤처기업만 챙기고 대기업을 배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대기업도 당연히 경제의 생태계 안에서 꾸준히 혁신해야 하고 정부가 그걸 도와야 한다. 차세대 모빌리티나 AI, 빅데이터 이런 것이 기업 규모를 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정책적으로 특별한 지원이 필요한 분야에 대한 크고 작은 관심은 있을 수 있겠지만, 혁신 문제만큼은 기업 규모를 따지면 안 된다.”

―혁신을 유지하는 산업의 베이스는 결국 제조업 아닐까. 미국의 ‘리쇼어링’(제조업 본국 회귀)도, 중국의 ‘제조 2025’도, 독일의 ‘인더스트리 4.0’도 다 혁신 경제와 4차 산업혁명을 토대로 한 제조업 부흥에 강조점을 찍고 있다. 반면 우리의 제조업은 활력을 잃어가 걱정이다.

“내가 강조해온 것이다. 오죽했으면 ‘제조업 르네상스’를 외치겠나. 혁신에 한정해 얘기하면 우리 제조 현장의 생산성 수준 편차가 아주 크다. 제조 현장의 생산성 베이스캠프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밑에 있는 수준을 당겨 올려야 위로 더 나은 혁신으로 갈 수 있다. 제조 역량을 지켜나가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다.”

―서양은 혁신을 위한 축적을 오랜 시간에 걸쳐 해결했고, 중국은 대륙의 배후시장이라는 공간으로 해결했다. 한국은 뭐로 해야 할까.

“선진국의 시간과 중국의 공간을 이기려면 한국은 시스템적으로 시행착오의 양을 늘려나갈 수밖에 없다. 시스템이라는 말을 좀 더 분명하게 표현할 방법이 없긴 한데, 굳이 설명하자면 총체적 변화다. 정부 혁신, 기업 혁신, 금융의 뒷받침, 규제 재설계, 국민의 혁신학습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선진국의 ‘축적의 시간’과 중국의 ‘축적의 공간’을 우리는 ‘축적의 속도’로 이겨야 한다. 우리가 서구 200년의 자본주의 역사를 20~30년간의 압축성장으로 따라잡았듯 앞으로도 축적의 속도가 필요하다. 시행착오를 압축해야 한다.”

―교수님의 혁신론은 케인스보다는 슘페터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혁신이라는 말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경기가 어려울 때 재정을 푸는 케인지언 방식도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재정의 쓰임이 혁신의 방향과 맞아야 한다. 재정의 규모는 케인스 식으로 해도 재정의 씀씀이는 슘페터 식으로. 막대한 재정을 풀어 지속성 없는 단기 일자리만 늘리는 건 혁신 방향에 맞지 않는다.”

―국정을 운영하는 이들과 정치인들이 그 말을 경청하면 좋겠다. 정치 논리만 내세울 게 아니라 혁신 플랜을 장기 국정과제로 이어가는 게 정말 중요할 거 같다.

“나는 정치는 잘 모른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혁신의 문제는 여야가 있을 수 없다. 진보·보수도 있을 수 없고 요즘 말로 협치를 해야 한다. 그래야 혁신의 연속성이 가능하다.”

인터뷰 = 허민 정치부 선임기자 minski@munhwa.com
e-mail 허민 기자 / 편집국 국장석 / 부장 허민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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