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Focus >3연임 개헌·내전 등 민주주의 정착 실패… 아랍, 다시 겨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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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 10년…혼돈 계속

예멘에서도 4년째 내전 진행
튀니지는 공무원 시위로 위기

독재정권 몰아냈던 아랍국가들
구심점 될만한 대안세력 부재로
대중들 이슬람원리주의 이끌려

새 집권세력도 국정운영 실패
높은 실업률 등 경제난 이어져
기존 권위주의 세력 회복 빌미

2010년 말 시작돼 북아프리카, 중동을 휩쓴 민주화 불길 ‘아랍의 봄’에도 살아남았던 알제리, 수단 등의 독재자들이 올해 잇따라 축출되거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제2의 아랍의 봄이 도래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청과물 노점상을 하던 20대 튀니지 청년 무하마드 부아지지의 분신을 계기로 촉발돼 튀니지는 물론 이집트, 리비아, 예멘 등지의 악명 높은 독재정권을 교체하고 모로코 등지에서는 민주화 개헌을 이끌어 냈던 아랍의 봄의 불꽃이 10년째를 맞은 올해 다시 일렁이는 셈이다. 그러나 민중봉기 등을 통해 민주화를 시도했던 국가들이 군부 쿠데타, 내전 등 극심한 혼란만 겪은 채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등 아랍의 봄의 한계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다.
◇아랍의 봄은 가고 다시 겨울이 왔다=18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집트 의회는 지난 16일 압둘파타흐 시시 대통령의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늘리고 3연임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개헌안은 오는 22~24일 국민투표를 거쳐 최종 발효된다. 2014년과 2018년 두 차례 대선에서 90%가 넘는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된 시시 대통령은 이변이 없는 한 2030년까지 임기를 보장받게 된 셈이다. 2011년 호스니 무바라크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고 집권한 무함마드 무르시 정부를 군부쿠데타로 전복하고 정권을 장악했던 시시 대통령은 최근 행보로 봤을 때 30년간 장기집권한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능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민중봉기에 성공했던 다른 아랍 국가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중동의 대표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를 몰아냈던 리비아는 지난 5일 동부 군벌세력인 칼리파 하프타르 리비아국민군(LNA) 최고사령관이 휘하 부대에 트리폴리 진격을 명령하고 이들이 트리폴리 인근 30~50㎞ 지역까지 진출하면서 사실상 내전 상태에 돌입했다. 대를 이어 집권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에 대한 퇴진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던 시리아는 이후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의 창궐로 회복불능의 참화를 겪었으나 내전이 마무리단계에 접어든 현재 알아사드 대통령 측 정부군이 다시 주도권을 잡았다. 예멘에서도 4년째 내전이 진행돼 끊임없이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바레인 민주화 시위를 주도했던 시아파 지도자 셰이크 알리 살만 아흐메드 살만은 지난 1월 바레인 최고법원(대법원)으로부터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유일하게 성공적 민주화를 이뤘다고 평가받는 튀니지도 최근 공무원 노조 시위 등으로 사회 불안이 커지고 있다.

◇권위주의 토양에서 민주화 뿌리내리는 데 실패=아랍 국가들이 민주주의 정착의 호기를 놓친 것은 각국의 민주화 세력들이 당초 기대만큼 성숙하지 못한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오랜 기간 권위주의 정부가 반대세력을 철저하게 탄압한 결과 건전한 대안세력이 사라졌다”며 “혁명은 일으켰지만 이후 국정 운영에 성공하지 못하면서 다시 권위주의 세력이 돌아오는 빌미를 제공했다”고 진단했다. 독재정권을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구심점이 될만한 대표적 세력이 없다 보니 대다수 민중이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이슬람원리주의 등에 끌렸고 결국 정치·사회적 혼란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유럽,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대규모 난민 사태, 테러세력 유입 등 악영향이 커지자 혼란스러운 민주주의 정부보다 안정적인 권위주의 정부를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정책을 편 것도 아랍 국가들의 민주화가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아랍의 봄 당시 높은 실업률, 경기 침체 등 경제적 요인이 시위를 확산하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이후 등장한 새 정치세력이 이를 해결하지 못한 점도 민주화 실패의 원인으로 꼽힌다. 이집트의 경우 2010년 9.2%였던 실업률이 무르시 정부 당시 13~14%로 치솟았고 군부쿠데타로 시시 대통령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 오히려 10% 안팎으로 떨어졌다. 튀니지의 경우도 2010년 13%였던 실업률이 지난해 15.25%로 더 높아졌고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예멘 역시 14%가 넘는 고실업에 시달리고 있다.

◇희망은 계속된다=일각에서는 아랍의 민주화 열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과도기를 거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뉴욕타임스(NYT) 카이로 특파원이었던 데이비드 커크패트릭은 2011년 당시 상황을 기록한 저서 ‘군의 손아귀에’에서 “지식인들과 젊은층은 여전히 새로운 방식을 찾고 있다”며 “이들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군부에 신뢰를 보였던 민중이 더 이상 이들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며 “시행착오를 겪은 국가들이 과거 전철을 다시 밟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준우 기자 jwrepubl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