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수장들 비난· 폄훼했던 트럼프 “러 연관성 공개반박해달라” SOS쳤다

AP통신, 특검보고서 일화 소개
로저스 NSA 前국장에게 전화
前부국장 “40년 공직 드문 일”

취임 후 국가안보국(NSA) 등 정보기관을 비난하고 폄훼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작 러시아 스캔들(트럼프 대선캠프와 러시아 간 공모 의혹) 수사와 관련해 ‘SOS(긴급구조 신호)’를 요청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AP통신에 따르면 지난 18일 공개된 로버트 뮬러 특검팀의 수사보고서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뮬러 특검 임명 약 2개월 전인 2017년 3월 26일 마이크 로저스 당시 NSA 국장에게 전화를 건 사실이 담겼다. 그는 자신의 대선캠프와 러시아 간 연계 관련 보도는 허위라며 관련 보도를 반박하기 위해 무슨 일을 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로저스 국장과 옆에 있던 리처드 레짓 당시 부국장은 깜짝 놀랐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에 대한 메모를 작성했던 레짓 전 부국장은 “40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가장 흔치 않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로저스 전 국장에게 전화를 건 시점은 제프 세션스 당시 법무장관이 러시아 스캔들 수사 지휘에서 손을 떼겠다고 한 지 몇 주 지나지 않았을 때였고 NSA에 대한 폄훼 발언으로 이 기관을 소외시키던 상황이었다. 대외적으로는 NSA를 비난하면서 이면에서는 지원사격을 요청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통화에서 러시아 스캔들 수사로 러시아와의 관계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좌절감을 표현했다. 다만 로저스 전 국장은 특검에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지시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정보기관 수장들에게도 여러 차례 비슷한 요청을 했다. 그는 같은 해 3월 22일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중앙정보국(CIA) 국장,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과 백악관에서 회동 후 자신과 러시아 간에 어떤 연관성도 없다는 걸 공개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지 물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현안을 논의하는 회의를 시작하며 ‘러시아와 공모는 없었다’는 언론 성명을 발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경우도 두 차례 가량 있었다. 요청이 계속되자 결국 코츠 국장은 자신의 일은 정보 제공이지 수사에 관여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뮬러 특검은 보고서에서 “대통령의 요청을 받은 당국자들이 이를 부적절하게 수사에 개입하라는 지시로 해석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김남석 기자 namdo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