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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하재근의 TV세상 게재 일자 : 2019년 04월 23일(火)
사기꾼과 선거꾼은 오십보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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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

KBS 월화드라마 ‘국민 여러분’은 국회의원이 되려는 사기꾼의 이야기다. 사기꾼 양정국(최시원 분)은 폭력배와 연계된 사채업자 등 부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다. 그러다 한 사채업자에게 덜미를 잡히는데 그 사채업자가 양정국에게 국회의원이 될 것을 요구한다. 그 업자는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써서 정책을 좌지우지해왔지만, 정치인 관리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자 아예 만만한 하수인을 국회에 진입시키기로 한 것이다. 사채업자는 양정국에게 선거 전문가인 전직 3선 의원을 붙여주고, 이들과 팀을 이룬 양정국이 마침내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다는 이야기가 초반에 펼쳐졌다.

그동안 정치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가 종종 방영됐었는데, 언제나 국회의원에 대한 냉소와 혐오를 표현해왔다. 이번에도 그런 구도를 대놓고 표방한다. 사기꾼이 국회의원이 된다는 설정이 바로 그렇다. 사기와 정치를 동급으로 보고, 사기꾼도 얼마든지 될 수 있는 게 국회의원이라는 야유가 깔렸다. 극 중에서 선거 전문가인 전직 의원은 “입에 꿀 발라서 사람들 마음 살살 녹여 돈 빼내는 게 사기인데 돈 대신 표 빼내는 게 정치” “말로 사람 꼬시는 거 네가 제일 잘하는 일이잖아”라며 선거에 출마해 “사기 치자”고 말한다. ‘선거꾼’과 ‘사기꾼’이 오십보백보라는 얘기다.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표현한 말이다. 실제로 입에 발린 말로 대중을 현혹해 지지를 챙기는 것이 정치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포퓰리즘, 대중선동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민주정치의 문제다.

하지만 그것이 정치의 모든 것은 아니다. 정의감과 소신에 따라, 공동체를 위한 충정과 약자를 향한 연민을 가지고 국정에 임하는 정치인도 분명히 존재한다. 모든 정치인, 국회의원을 싸잡아 혐오하고 조롱하는 프레임은 이런 성실한 정치인까지도 도매금으로 매도한다는 게 문제다. 사기꾼과 마찬가지인 정치인과 성실한 정치인을 가리려면 정치를 면밀히 주시해야 하는데, 싸잡아 조롱하다 보면 정치로부터 관심이 멀어져 결국 성실한 정치인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고, 이러면 사기꾼들이 큰소리치며 활개 칠 토양이 형성된다.

바로 이것이 정치 냉소, 정치 혐오만을 표현하는 정치 배경 드라마의 문제다. 정치를 진흙탕으로만 그려 국민의 관심을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 말이다. ‘국민 여러분’이 지금까지 방영됐던 정치 배경 드라마의 이런 문제를 답습할지, 다른 모습을 보일지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

시동이 너무 늦게 걸렸다. 어차피 사기꾼이 출마하는 드라마라는 걸 뻔히 아는데 출마하기까지의 사연에 무려 3주나 소비했다. 사기꾼이 출마한다는 ‘황당한’ 이야기의 필연성을 시청자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제작진이 고심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고심할 필요가 없었다. 사기꾼과 국회의원이 연결되는 것을 시청자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현실이니 말이다.

이렇게 정치 혐오가 현실 세계에 넘쳐날수록 대중매체는 국민이 그 속에서 옥석을 가리고 정치에 보다 건전한 관심을 가지도록 견인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국민의 정치 혐오에 영합해 국회의원을 욕하면서 시청률을 올리려는 작품이 많았다. 이런 건 드라마판 포퓰리즘이다. ‘국민 여러분’은 과연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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