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위험천만한 탈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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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주필

오키나와 중심 2000만㎡ 빈땅
한·미·일 ‘2人3脚 동맹’ 상징
文정부 들어 원심력 급속 확대

중재자論은 본질적으로 反동맹
미국 빠지면 北 통일전선 격화
원래 비동맹 국가보다 더 위험

일본 오키나와는 한국인도 즐겨 찾는 여행지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협상의 한국 대표가 미·일 방위비 분담 현황을 더 상세히 파악하기 위해 그곳을 방문했다. 나하(那覇) 공항 주변 광활한 평야가 녹슨 철조망에 둘러싸인 채 방치돼 있었다. 2000만㎡가 넘는다고 했다. 의아해서 일본 정부 안내원에게 물었다. 대답은 이랬다. “한국에 전쟁이 나면 미국에서 공수되어 올 증원군의 1차 집결지로 사용될 땅이다.”(이용준 ‘대한민국의 위험한 선택’ 44쪽)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난 11일 워싱턴 회담 직후, 미 고위 당국자에게 직접 들은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대로 옮길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한·일 관계가 좋으면 한·미 동맹도 잘 된다. 반대로 한·일 관계가 나쁘면 중국과 북한을 상대할 에너지를 거기에 소모하게 되고, 중국과 북한 영향력을 높여주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말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6년 뒤 북한은 핵실험을 했다. 그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북한 제재를 해제해선 안 된다.”

두 사례는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미·일 안전보장조약은 ‘2인(人) 3각(脚)’ 군사동맹이다. 이것은 한국 방위는 물론 동북아 균형의 중추, 나아가 자유 진영의 최전방 방파제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최근 중대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미 사이엔 불신이 커가고, 한·일 불화는 폭발 직전이다. 이에 미국은 한국 비중을 줄이면서 일본과는 동맹 심화에 나섰다. 반대편의 북한·중국·러시아 관계는 급속히 강화되는 추세다.

한·미·일 동맹의 원심력에는 많은 요인이 작용하지만, 문 정권의 ‘탈(脫)동맹’ 기류가 결정적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에도 북한과 중국을 중시하자는 세력이 있었다. 그렇지만 미국 망명 생활까지 했던 김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미국과의 철저한 공조 위에서 추진했고, 노 대통령도 ‘미국 바짓가랑이’ 등 과격한 주장을 하면서도 자유무역협정과 제주해군기지, 중동 파병을 선택했다. 반기문·송민순 등 당시 책임자 면면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젠 학생 시절 반미·친북 운동을 주도하던 세력이 권력의 중심을 차지했고, 친북·친중 노선이 뿌리를 내렸다.

중재자 외교는 그 방법론이다. 운전자·촉진자·균형자 어느 경우든 중립 지대로 옮겨가겠다는 의미다. 주권국가인 만큼 사안에 따라 ‘가운데’ 심지어 반대편에 설 수도 있다. 그러나 동맹국에 해명할 수 있는 명분이 대전제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때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미국 반대편에 서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고 했지만, 박 대통령은 2015년 ‘그냥’ 톈안먼(天安門) 망루에 올랐다. 문 대통령은 사드 반대, 일대일로 등에서 중국과 더 밀착했다. 중국을 최대의 잠재적 적으로 여기는 미국에는 배신으로 비칠 것이다. 미국이 한·미 연합훈련에서 발을 빼는 것은 단순히 트럼프 대통령의 ‘머니 마인드’ 때문만은 아니다.

해방 직후도 현재도 북한은 미국만 배제하면 북한식 흡수 통일이 가능하다고 본다. 남한 친북·종북 인사들을 앞세워 체제 불만 세력을 끌어들이고, 북한 주민을 일사불란하게 묶으면 선거를 실시해도 이긴다는 것이다. 이것이 통일전선전략의 본질이고, 지금도 그런 대남 공작을 계속하고 있다.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하면 저절로 자유민주주의 통일이 된다는 것은 순진한 환상이다.

동맹은 거저 유지되지 않는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듯, 국가 간에도 함께 희생을 감수한 피의 동맹이 진정한 철통(ironclad)동맹이다. 한국은 베트남 파병 이후엔 그렇게 한 적이 없다.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에서는 전투병 파병이나 위험 지역은 한사코 피하려 했다. 지금도 남중국해 문제나 인도·태평양 구상, 중동 문제에서 미국 편에 흔쾌히 서지 않는다. 오히려 북한 및 이란 제재에서 성가실 정도로 끊임없이 예외를 요구한다. 한국은 미국 도움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고 지켰으며, 오늘의 번영과 자유도 일궜다. 이것을 잊으면 동맹 배신자가 된다. 동맹에서 축출된 국가는 정글에서 무리를 이탈한 동물과 같다. 탈동맹 국가는 비동맹 노선을 택했던 나라보다 훨씬 위험하다. 탈원전 폐해는 비할 바도 못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