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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철환의 음악동네 게재 일자 : 2019년 04월 25일(木)
솔직한 가사·세련된 이미지…‘한물간’ 트로트를 부활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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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영 ‘사랑의 배터리’

“두 마리 토끼 다 잡았네.” 시청률, 공익성 두루 1등급. PD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큰 상을 받아도 시청률이 바닥이면 어깨가 처진다. 막장드라마는 시청률과 비난이 동반 상승하니 일찌감치 한 마리는 포기한 셈이다. ‘재미있게 살고 의미 있게 죽자’. PD의 좌우명을 지키려니 때로는 죽기보다 살기가 어렵다.

채널이 많아지니 토끼를 잡는 기준도 달라졌다. 선호하는 채널이 뚜렷한 시청자는 집토끼, 채널 돌리다가 흥미로운 프로그램에 꽂히는 시청자는 산토끼다. 집토끼가 습성, 관성의 포로라면 산토끼는 유행, 풍문에 민감하다. 최근엔 화제성을 매주 조사, 발표하는 기관(굿데이터코퍼레이션)도 생겼다.

4월 셋째 주 비드라마 TV 화제성 1위는 TV조선의 ‘내일은 미스 트롯’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제 한물갔나 했는데 시청률이 12.9% 나왔으니 제작진이 짜놓은 정량, 정성 그물에 두 마리 토끼가 모두 걸려든 셈이다.

30년 전쯤 선배 PD(김영철)가 ‘주부가요열창’을 기획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여성, 그것도 주부만을 대상으로 하는 노래자랑이라니 과연 어떤 반응이 나올까 반신반의했는데 결과는 대히트였다. 연출의 포인트는 격조였다. 전국노래자랑의 서민적 분위기와는 달리 40인조 관현악단 연주에 충분한 리허설, 거기에 선곡, 무대세트, 조명, 출연자 의상까지 세심하게 배려했다. 주부를 바람 들게 한다는 우려는 사라졌고 오히려 주부들의 꿈을 이뤄주는 고품격 예능프로로 장수했다.

‘미스 트롯’은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자’는 역발상이 주효했다(콘텐츠민주주의 김도연 대표의 말). 중장년층의 ‘프로듀스 101’을 내세우며 한물간(?) 트로트의 패자부활전을 과감히 시도했다.

이쯤 해서 궁금해진다. 요즘 대학생들은 트로트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긴급 설문조사를 했다. ‘트로트 하면 떠오르는 느낌은?’ ‘괜찮은 트로트 가요를 꼽는다면?’ 조사 대상이 100명이 채 안 되는 스몰 데이터이긴 하지만 경향성이 포착됐다. ‘올드하다’ ‘진부하다’가 첫 문항의 대다수 답변이었다. 두 번째는 중구난방일 거라 짐작했는데 놀랍게도 어림잡아 30% 이상이 한 가수의 노래를 지목했다. 흥겹다, 분위기 띄우는 데 최고, 가사가 솔직하다, 가수가 세련되고 유쾌한 이미지다 등.

‘나를 사랑으로 채워줘요/사랑의 배터리가 다 됐나 봐요/당신 없인 못살아/정말 나는 못살아/당신은 나의 배터리’. 주인공은 홍진영(사진)이었다. 특히 앞에 소개한 노래 ‘사랑의 배터리’와 ‘산다는 건’ ‘잘 가라’에 표가 몰렸다. 세 노래의 작곡자가 ‘미스 트롯’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다. 조영수다.

▲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개인적 감회가 나를 포위한다. 제20회 대학가요제(1996년)를 연출하면서 부제를 ‘77학번에서 77년생까지’로 정했다. 사회자는 77학번 이문세였고 신입생이던 77년생은 어느덧 40대가 됐으니 세월은 무죄다. 그해 대상 곡이 열두 번째 테마(4인조)의 ‘새로 나기’였는데 곡을 만든 조영수는 당시 수줍음 많은 과학도(연세대 생명공학과)였다. 나중에 SG워너비의 히트곡들에 그의 이름이 있는 걸 보고 반가웠는데 홍진영의 트로트에까지 재능을 연장, 아니 확장하는 걸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었다. 일관성보다는 융통성이 돋보였다.

‘힘든 세상 어디 하나 기댈 데도 없는 이 세상 너뿐이다’로 시작하는 에픽하이의 노래가 있다. 여기서 너는 트로트이고 노래 제목 역시 ‘트로트’다. 취향에 등급은 없다.

울고 넘는 박달재, 불효자는 웁니다, 단장의 미아리고개 등의 가사를 쓴 반야월(본명 박창오·가수명 진방남)은 트로트를 ‘흘러간 노래가 아니라 흘러온 노래’라고 말했다.

‘산다는 건 다 그런 거래요/힘들고 아픈 날도 많지만/산다는 건 참 좋은 거래요/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홍진영 ‘산다는 건’ 중). 반야월은 한밤중에 떠 있는 달이라는 의미다. 달은 오늘 밤에도 뜬다.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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