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공간>유학자 할아버지·독립운동가 아버지… 詩에 항일·분단이 남긴 고뇌 담겨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충남 당진의 읍내에 있는 이근배 시인 시비.

시인 이근배는

이근배 시인은 독립지사가 많이 나온 내포(內浦) 지역 충남 당진에서 광복 여섯 해 전인 1939년에 태어났다. 호적에는 1940년 3월 1일로 돼 있다. 출생일이 해를 넘긴 것은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가 3·1운동이 일어난 날을 출생일로 잡았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 장후재(張厚載) 학사는 한말 거유이며 의병장이었던 최익현의 문하생이었고 할아버지 각현(覺鉉)공도 호서에 이름난 유학자였다. 어린 날 할아버지 품에서 천자문을 읽으며 자랐고 사랑방에서 벼루의 먹 냄새와 한적 냄새를 맡으며 글쓰기의 첫걸음을 떼었다.

삼촌이 빌려오는 이광수, 심훈, 박화성, 김래성 등의 소설을 훔쳐보다가 소설가의 꿈을 키워 서라벌예대 장학생 모집에 응시, 을류 장학생으로 입학해 김동리, 서정주 교수의 가르침을 받았다. 정작 글쓰기에 들어서는 소설보다는 지용, 미당의 시에 빠져 시 쓰기로 돌아섰고 1960년 3월 서정주 선생의 서문을 받아 시집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를 출간했다.

본격 등단은 1961년 서울신문에 시조 ‘벽’이, 경향신문에 시조 ‘묘비명’이, 조선일보에 시조 ‘압록강’이 각각 당·입선되면서부터다. 그리고 1962년 동아일보에 시조 ‘보신각종’이, 조선일보에 동시 ‘달맞이꽃’이 당선되고 1964년 한국일보에 시 ‘북위선’이 당선되며 ‘신춘문예 5관왕’이라는 영예로운 꼬리표를 달게 됐다.

그의 등단 작품들의 모티브는 성장기에 아프게 겪은 항일, 분단, 전쟁 그리고 4·19혁명을 몰고 온 시대적 고뇌와 바람으로 점철된다. 특히 등단작인 시 ‘북위선’ ‘노래여 노래여’, 시조 ‘벽’ 등은 분단을 테마로 한 대표작들이며 신춘문예 작품의 한 전형으로 꼽혔고 자주 표절되기도 했다.

호흡이 길고 모국어의 가락을 잘 살려서 광복 50주년, 60주년 칸타타 작시를 비롯해 나라의 큰일이 있을 때의 축시나 김동리, 박경리 등 문단 큰 어른들의 영결식에서 조시를 읽기도 했다.

1976년에서 1984년까지 월간문예지 ‘한국문학’에서 일했고, 서울예술대, 재능대학, 신성대학, 중앙대에서 초빙, 석좌교수로 시창작을 강의했다. 한국시조시인협회장, 한국시인협회장, 지용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공초숭모회 회장, 대한민국예술원 문학분과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노래여 노래여’, 시조집 ‘동해 바닷속의 돌거북이 하는 말’, 장편 서사시 ‘한강’, 시선집 ‘사랑 앞에서는 돌도 운다’, 기행문집 ‘시가 있는 국토기행’ 등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중앙시조대상, 가람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2011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