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타일>도시 전체가 걷고 달리고… 美최고 뚱보도시 ‘다이어트 성공!’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5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헌팅턴시 인근에 있는 카벨 미들랜드 고교 내 식당에서 학생들이 오렌지를 나눠 먹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캡처

- 헌팅턴市 ‘10년의 노력’ 화제

주부들 나서서 신선시장 열어
지역의 또다른 중심지로 발전

교육당국도 식단 조절에 앞장
학교 조리사들 맞춤형 재교육
학생들이 재배한 채소 구매도

市도 ‘달리기·걷기 행사’ 개최
“지역 문화의 변화로 건강해져”

10년 전 미국 최고 ‘뚱보 도시’로 불렸던 웨스트버지니아주 헌팅턴(Huntington)이 최근 도시 차원의 다이어트에 성공해 비만이 범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미국에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각 개인의 다이어트 의지에 의존하기보다 지방자치단체와 주민, 학교 등 지역사회가 함께 나서 구조적으로 식단, 운동환경 등을 바꿔 효과를 거뒀다는 점에서 갈수록 비만율이 높아지는 도시들의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헌팅턴시 지역농산물 시장 ‘와일드 램프’에서 한 주민이 인근에서 재배한 토마토를 진열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캡처

25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 질병관리센터가 2008년 발표한 미국 도시별 성인비만율 조사에서 인구 4만7000명의 헌팅턴은 비만율이 무려 45.5%에 달해 미국 전체에서 가장 뚱뚱한 도시로 손꼽혔다. 성인 인구 2명 중 1명이 비만 상태였던 셈이다.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영국 유명 셰프인 제이미 올리버는 2010년 헌팅턴을 찾아와 다이어트 식단을 소개하는 ‘음식 혁명(Food Revolution)’이라는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올리버는 헌팅턴의 초등학생들이 토마토를 구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음식 혁명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면서 당시 에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프로그램이 끝난 뒤 헌팅턴은 곧 시청자들의 뇌리에서 사라졌지만, 이 도시의 다이어트 노력은 계속됐다. 프로그램을 통해 헌팅턴 주민들은 지역 농산물을 공급하는 신선식품 시장의 필요성을 알게 됐는데 불행히도 러스트벨트(쇠락한 미 북동부 및 중서부 공업지대)와 애팔래치아산맥의 교차점에 있는 헌팅턴에는 신선식품을 판매하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헌팅턴시 마셜대 교정에서 학생들이 신체 운동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설치된 공유자전거를 이용해 이동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캡처

이에 주부들이 나서 2012년 ‘와일드 램프’라는 시장을 열었다. 이 시장은 일주일에 6일 동안 문을 열고 지역 농산물을 판매했다. 특히 이곳에서 거래되는 지역 농산물의 80%는 무인판매 방식으로 신뢰 구조를 자랑한다. 농민들이 농산품을 진열해 놓고 가면 시민들이 돈을 진열대에 두고 상품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일손이 부족한 헌팅턴에 꼭 필요한 형태의 시장인 셈이다. 와일드 램프 덕에 지역 농민들에게 돌아간 수익은 130만 달러(약 14억9000만 원)가량으로 추정된다. 와일드 램프는 단순히 농산물 생산과 판매뿐 아니라 관련 교육, 축제 등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교육 당국도 학생들의 식단 조절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올리버가 영국으로 돌아간 뒤 론다 매코이 음식서비스국장은 올리버의 조리법 중 학생들이 싫어하거나 지방이 많이 함유된 것 등을 지역 특색에 맞는 조리법으로 변형·발전시켜 학교 조리사들을 재교육했다. 식재료 중 신선식품 비중을 대폭 늘린 헌팅턴은 학교 식단에 쓸 신선식품 구매에 지난해만 6만7000달러의 예산을 사용했다. 특히 지역 농민들 외에 학생들이 직접 재배한 신선식품을 우선해 사들였다. 매코이 국장은 “학생들이 친구들이 기른 채소를 먹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는 학교 식단에서 감미료 첨가 우유, 곡물류, 염분 등의 사용기준을 완화했지만, 헌팅턴은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당시와 같은 엄격한 식단 기준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또 헌팅턴은 시 차원에서 여러 달리기 대회를 개최하고 자전거도로를 만드는 등 시민들이 손쉽게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도 노력을 기울였다. 2015년부터는 ‘시장과 함께 걷기 행사’를 개최해 더 적극적으로 주민들의 운동행사 참여를 독려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 조사한 헌팅턴의 성인비만율은 10년 전보다 12.9%포인트나 낮아져 32.6%를 기록했다. 아직 미국 성인 평균 비만율(29.5%)에 비해 조금 높은 수준이지만 시 전체가 나서 비만율을 큰 폭으로 낮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WP는 미국이 그동안 다이어트에 좋은 식품 구매와 가정식 조리 등 개인적 차원의 노력에 초점을 맞춰 온 반면, 헌팅턴에서 나타난 변화는 지역 사회의 음식문화를 개선함으로써 비만율을 낮출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와일드 램프 창설자 중 한 명인 게일 패튼은 “헌팅턴이 아직 가장 건강한 도시는 아니지만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우리가 가는 방향은 개선을 바라는 시민들과 기업, 지역 정부, 기관들이 의지를 갖고 실행한 노력의 결과”라고 말했다.

워싱턴=김석 특파원 su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