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나>30년 연구 잔디박사 “그린만 잘 파악해도 3 ~ 4타 줄이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심규열 한국잔디연구소 소장이 지난 2월 괌 휴가 여행 때 지인들과 라운드 중 드라이버 샷을 하고 있다. 심규열 제공

심규열 한국잔디연구소 소장

잔디는 보호해야 하는 게 아니라
적당히 밟아야 高밀도로 잘 자라

짙은 녹색의 그린은 스피드 느려
그린 주변 배수구 있는 쪽 낮아

잔디는 ‘골프장 품격’의 가늠자
생육 상태가 ‘사장의 목숨’ 같아

심규열(59) 한국잔디연구소 소장은 30년째 잔디만 연구해온 국내에서 손꼽히는 ‘잔디 박사’다. 심 소장은 골프장 입구에 들어서 멀찍이 잔디의 색깔만 봐도 잔디가 어떤 상황인지 단박에 알 수 있을 정도의 잔디 전문가.

경남 진주 경상대에서 농생물학을 전공한 심 소장은 1987년 첫 직장이던 농촌진흥청을 다녔지만 1년 반 만에 골프장에서 잔디연구소를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안양골프장 산하 잔디연구소 창립 멤버가 됐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 잔디 관련 전공학과는 물론 교수진도 없었을 무렵 잔디에 대해 독학하다시피 했다.

심 소장은 1989년 잔디연구소에 입사해 지금까지 30년 근무하면서 관련 저서도 6권을 펴냈고 골프장 잔디 관리 관련 논문도 50∼60편 넘게 발표했다. 이제는 한국골프장경영협회 산하로 옮긴 잔디연구소의 소장을 10년째 맡고 있다.

초창기 잔디연구소는 잔디에 대한 지식도 없었기에 잔디 지식 체계화에 역점을 뒀다. 심 소장은 “연구소에 출근하니 이미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지시로 ‘안양중지’를 개발해놓은 상태였다. 이 회장은 일본의 그린 키퍼를 매달 한 번씩 초빙해 그의 잔디 관리 행적을 모두 적어놓았다. 이게 훗날 골프장 잔디 관리의 교본이 되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관리 정보가 공개가 안 될 무렵이어서 골프장마다 그린 키퍼 몇몇이 알고 있는 밑천이 전부였다. 심 소장은 “잔디연구소 출범으로 그동안 모은 관리자료를 오픈, 각 골프장에 정보와 기술을 제공하면서 잔디 양육기술의 대중화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심 소장이 골프를 배운 것은 안양골프장에 연구소가 있을 시절부터이니 30년이 넘었다. 당시 안용태 골프장 지배인 겸 잔디연구소장이 연구원들에게 안양골프장을 개방한 것. 처음엔 잔디에 상처를 내는 것도 안타까워 제대로 스윙을 못 했는데 사실 잔디를 아낄 필요는 없었다. 심 소장은 “잔디에 대해 잘못된 상식 중 하나가 잔디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들어가지 못하게 만든 곳이 많은데 잔디 습성상 위에서 밟아줘야 위로 자라는 것을 억제하고 옆으로 퍼지면서 밀도가 높아지게 된다는 설명. 물론 한도를 넘어서지 않는 범위여야 한다고도 심 소장은 덧붙였다. 이처럼 잔디는 적당히 밟아서 약간의 스트레스를 줘야만 잘 자란다는 것이다.

심 소장의 베스트 스코어는 2오버파 74타. 몇 해 전 경기 양주시 레이크우드골프장 코스 리뉴얼 이후 코스 점검차 나갔다가 기록했다. 그동안 골프를 쳐도 잔디만 살피다 보니 실력이 크게 늘지 않았다. 5년 전부터 퍼팅에 신경을 쓰면서 스코어가 잘 나왔다. 심 소장은 ‘퍼팅 잘하는 팁’으로 그린만 잘 파악하면 3∼4타는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그린 퀄리티’를 읽는 법으로 먼저 그린을 봤을 때 그린 색상이 짙은 녹색을 띠면 스피드가 느린 편이라고 했다. 비료를 많이 써 잔디가 ‘과생장’해 잔디 잎이 두꺼워져 스피드가 떨어진다는 것. 또 단단한 그린은 빠르고, 배토를 안 한 그린은 저항이 많아 느리다. 그린은 물 빠짐을 위주로 만들다 보니 물의 통로를 먼저 파악하는 게 그린 라이를 잘 읽는 첩경이다. 그래서 그린 주변에 놓인 맨홀의 위치를 파악하면 대개 그 주변은 내리막으로 흐르는 경우가 대부분. 제주의 경우 착시현상이 생기는 산악형의 경우 홀을 뚫어 놓으면 홀 안을 둘러싼 림 부분이 높이가 다른데, 림 폭이 넓은 곳이 높다. 홀드 역시, 수평으로 꽂기에 자세히 보면 그린 경사에 따라 높낮이가 약간씩 다르다고 조언했다.

심 소장은 “전 세계 잔디는 1500종이 되지만 스포츠용으로 사용 가능한 것은 30종 정도인데 국내에 들여와 사용하는 것은 고작 7종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국내 골프장 그린은 기후 탓에 모두 벤트 그래스를 쓴다고 귀띔했다.

심 소장은 홀인원은 2차례 경험했는데 모두 1년 새 행운을 안았다. 첫 홀인원은 10년 전 경남 진주골프장에서 50팀이 참석한 고교 동문 행사 때 3번 홀(파3·156m)에서 5번 아이언으로 작성했다. 이 홀인원은 200명이 참석한 만찬에서 우승자보다 그를 더 주목받게 했다. 두 번째는 경기 안성 에덴블루 8번 홀(파3·140m)에서 첫 홀인원 이후 7개월 만에 작성했다.

심 소장은 “골프에서는 잔디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면서 “요즘 같은 골프장 경쟁 시대에 골퍼가 골프장을 선택하는 조건 중 하나가 잔디 상태”라고 말했다. 잔디가 안 좋으면 선택받을 수 없고, 그린피 역시 비싸게 받을 수도 없기 때문. 그래서 잔디가 좋은 곳이 대개가 비싼 값을 받는 명문 골프장이라는 것. 잔디 품질이 좋으면 회원권 가격도 오르고 골프장 가치도 같이 올라간다. 그래서 골프장 그린 키퍼는 기술만 있으면 70∼80대 나이에도 좋은 대우 받으며 일하는 전문직종으로 통한다. 잔디연구소는 지난해까지 연간 20명씩 지금까지 460명의 그린 키퍼를 배출해 취업률 100%를 기록할 만큼 인기 직종으로 자리 잡는 데 한몫했다.

심 소장은 “골프장이야말로 잔디 상태에 따라 울고 웃는 업종인 것 같다”고 말했다. 골프장 영업은 코스 품질이 영업력을 좌우하기에 코스 품질이 좋으면 좋은 평가를 받고, 손님도 몰리기 마련. 오죽하면 골프장 사장은 잔디 생육 상태에 따라 파리 목숨과도 같다는 말이 나왔을까. 최근에도 잔디가 초토화된 한 명문 골프장 사장이 교체되기도 했다. 잔디로 인해 골프장 사장 자리가 바뀐 게 어림잡아 지금까지 수백은 넘을 것이란 얘기다. 잔디는 골프장의 품질을 가늠하는 척도이기 때문.

심 소장은 “골프만큼 좋은 운동은 없다. 골프는 젊은이와 나이 든 사람이 어울릴 수 있다. 등산은 퇴행성 관절염으로 관절 이상이 있을 순 있지만, 골프는 잔디밭만을 걷다 보니 관절에 무리가 안 간다”고 말했다. 심 소장은 잔디가 좋아서 지금까지도 잔디를 연구하고 있다면서도 앞으로 ‘잔디 전문병원’을 만들고 싶어 한다. 노후에 재능 기부하는 셈 치고 잔디를 건강하게 키우고 관리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