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新동물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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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국회 선진화법이 적용되기 전인 제18대 국회(2008년 6월∼2012년 5월) 때는 국회 의사당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공중부양’ ‘최루탄 투척’ ‘12·18 폭력사태’ 등 의정사에 남을 전설적 사건들이 대부분 이때 일어났다. 각 당 원내대표실에는 전기톱, 해머, 쇠지렛대 등 공사장 장비와 농성을 위한 스티로폼, 이불 등이 준비돼 있었고, 심지어 민주노동당은 최루탄도 갖고 있었다. 원내지도부가 지시하면 순식간에 동원될 수 있는 장비들이 가득했고 준비도 일사천리였다. 이러다 보니 의원은 의정활동보다 몸싸움 능력이 더 평가됐다.

2008년 12월 18일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이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실에서 문을 걸어 잠근 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상정하려 하자 통합민주당이 전기톱과 소화기 등으로 회의장 출입문을 부쉈다. 당시 한 의원이 해머를 휘두르는 장면이 외신을 타면서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이 의원은 이후 국회로 돌아오지 못했다. 농성과 본회의장 봉쇄는 물론 의장 공관 봉쇄에 이르기까지 온갖 투쟁 방법이 다 동원됐다. 이런 18대 국회의 반성으로 19대부터는 국회 본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폭행·체포·감금·협박 등을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게 했다. 법안도 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을 줄이고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제도를 신설해 5분의 3 찬성이 있을 경우 최장 330일 이후에 본회의에 자동 상정되도록 했다.

의결정족수를 과반에서 60%로 올린 선진화법 때문에 19∼20대 국회에서는 ‘동물국회’는 없어졌지만, 반면 되는 일이 없는 ‘식물국회’가 시작됐다. 여야 간 합의가 없으면 어떤 법도 처리할 수 없으니 19대 국회에서는 ‘끼워팔기’ 법안 처리가 일상화됐다. 여당이 공무원연금법을 통과시키려면 야당이 요구한 세월호 특별법을 함께 처리하는 방식이다. 차라리 동물국회가 낫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25일 더불어민주당 등 여야 4당이 자유한국당을 제외하고 선거제도 개편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 등을 함께 패스트트랙에 올리자 과거 동물국회 때의 모습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본회의장 앞에 스티로폼이 깔리고 몸싸움도 시작됐다. 국회법을 자의적으로 해석, 법정 소송으로 가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신(新) 동물국회가 시작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