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정상회담>北은 ‘러 지지’업고, 러는 ‘北 불만’이용… 美태도변화 촉구

- 김정은 “美 책임” 언급 파장

제재 장기화 대비한 자력갱생
단계적 비핵화 고수 뜻 내비쳐

“韓·美, 北체제 보장 불충분”
푸틴도 회견서‘金 주장’ 동조
‘6자회담 체계 가동’ 제안까지
일각선 ‘北도 多者공감’ 분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지난 2월 말 ‘미·북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상황을 공유하면서 미국 책임론을 언급한 것은 러시아의 지지를 확보한 상황에서 미국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특히 “미국의 차후 태도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김 위원장이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입장을 당분간 고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25일 푸틴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하노이 회담 결렬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김 위원장이 “제2차 조미(북·미) 수뇌회담에서 미국이 일방적이며 비선의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밝힌 것. 이로 인해 “조선반도(한반도)와 지역 정세가 교착상태에 빠지고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상황 인식도 내놓았다. 푸틴 대통령도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북한도 비핵화를 원하고 있으며 체제 보장을 요구하고 있는데, 한·미의 보장 메커니즘은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김 위원장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한 것으로, 북·러 정상은 ‘단계적·동시적 비핵화’에 대한 견해를 공유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미국의 입장 변화도 강력 요구했다.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은 전적으로 미국의 차후 태도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선 것으로, 대북제재 장기화에 대비한 ‘자력갱생’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정상포럼에 참석한 김영재 북한 대외경제상이 이날 “북한은 유엔의 대북제재에 신경 쓰지 않으며, 미국이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푸틴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북한의 체제 보장에 대해 논의할 때는 6자 회담 체계가 가동돼야 한다”는 제안도 내놨다.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6자 회담 재개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미지수지만, 양 정상 간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이 다자협상을 이용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 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를 협상 판에 끌어들여 대북 제재 완화와 안보·경제 지원을 이끌어 내려는 의도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따라 북한 비핵화 협상이 당분간 교착 국면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북·러 간 경제·무역 관계는 더욱 밀접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