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염색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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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머리카락 염색이 정계 화제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까맣게 머리 염색을 했고,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성글었던 박원순 서울 시장은 풍성한 검은 헤어스타일로 바뀌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도 어쨌든 머리카락이 새카맣다. 홍남기 경제 부총리는 머리 염색은 물론 눈썹에도 힘을 줬다. 홍 부총리의 변신 후 세종청사에 눈썹 문신이 인기라고 한다. 386의 대표주자인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오는 5월 8일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검게 칠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1기 의장 출신인 이 의원은 “운동권의 경직성을 벗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머리 염색부터 했다. ‘진보 = 꼰대’ 이미지를 벗기 위해 헤어스타일부터 바꾼 것이다. 민주당이 ‘머리 염색 정치’에 나선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6·13지방선거 때 앞서 박경미 등 여성 의원 5명은 사전투표율 20%, 김정우 등 5명의 남성의원은 투표율 60% 돌파 때 파란 머리 염색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선거 때 이것이 달성되자 머리를 물들였다.

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최근 공개석상에서 흰머리를 드러내 관심을 모았다. 장쩌민, 후진타오 등 역대 중국 주석들은 늘 검은 머리 전통을 지켜왔다. 시 주석도 집권 1기 땐 그랬다. 그런데 지난해 개헌으로 종신집권 시대를 연 이후 자신감 때문인지, 머리 염색 전통에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외신들은 이를 “절대권력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표현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땐 염색을 했지만, 청와대 입성 후엔 희끗희끗한 머리를 그대로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있다. 더 이상 표를 얻어야 할 선거에 나설 필요가 없는 만큼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흰머리로 자연스럽게 표현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등을 감독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거장 노라 에프론은 한 칼럼에서 “머리 염색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면서 “1960년대 여성 해방운동에 영향을 미친 것은 피임약보다 염색약”이라고 했다. 머리 염색시대가 열리며 나이와 상관없이 이미지 변신이 가능하게 됐고, 나이를 초월해 일과 로맨스에 자신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일도 사랑도 중요한 것은 본질이다. 특히 정치는 염색 때 약속한 초심을 지키는 게 핵심이다.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 염색에만 매달린다면 눈속임 정치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