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해찬式 재집권 전략의 虛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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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2년 만에 ‘주인’ 바뀐 광화문
웰빙정당에서 투쟁野黨으로
패스트트랙 악수로 野 회생

선거법·공수처로 재집권
조국 통해 사법권력 코드화
오만·독선은 실패의 지름길

광화문 광장이 지난 주말 자유한국당의 상징색인 빨강과 태극기로 가득 찼다. 지난 2005년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투쟁을 위해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앞장선 이후 14년 만에 보수야당이 대규모 장외투쟁에 나섰다. 일주일 전에 비해 인원도 몇 배나 늘었다. ‘웰빙 정당’이라고 비난받던 한국당이 이젠 거리의 야당, 투쟁 야당으로 변신했다. 친박·비박 의원들이 서슴없이 어깨동무를 했다. 패스트트랙 ‘4여(與)’가 한국당의 야성과 단합을 일깨우는 역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복(福)’을 타고났다고 했는데 이젠 이것도 점차 끝나가는 것 같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내부 갈등으로 답이 보이지 않던 한국당이 이렇게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기사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여권이 재집권 전략에 따라 무리하게 밀어붙인 선거제도 개편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강행 덕이 컸다. 정치 초년생인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이날 “도끼로 장작을 패듯, 독재 권력의 야만적 폭력의 비가 내려 서슴없이 대한민국을 부수고 있다”며 현 정부를 ‘좌파 독재정권’으로 규정했다. 지난 22일 장외집회 때 문 대통령을 ‘김정은 대변인’이라고 한 데 이어 이젠 과거 민주화 운동 때 진보진영이 독점해 왔던 독재 정권 프레임을 현 정권에 씌운 것이다.

여야는 다른 건 몰라도 선거법만큼은 그동안 합의로 처리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런데 여당이 공수처법과 함께 한국당을 제외한 다른 야당들과 뭉쳐 한국당의 강력한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패스트트랙을 강행하려 한 것은 재집권 전략을 위해 불가피했을 것이다. 현역 의원 중 누구보다 선거 전략을 수립해본 경험이 많은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의미심장한 발언들을 남겼다. 지난 25일 한 세미나에선 “정조대왕 이후 219년 동안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10년과 문재인 대통령 2년 등 12년을 빼고는 일제 강점기, 독재 또는 아주 극우적인 세력에 의해 나라가 통치됐다”면서 “이제 겨우 우리가 재집권했는데 이 기회를 절대로 놓쳐선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원외당협위원장 모임에선 내년 총선 목표를 지역구 240석, 비례대표 20석 등 260석이라고 했다. 비현실적인 주장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이 대표로선 허튼 얘기가 아니다. 지금 민주당 등 4당이 추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시행되면 이 정도는 아니라도 한국당을 고립시킬 수는 있다는 계산이다. 한국당의 친박이 정당지지율을 믿고 예전 친박연대처럼 떨어져 나가 신당을 만들 경우 야권이 분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권력의 유지와 재창출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 사법권의 장악이다. 문 대통령이 숱한 책임론과 비난에도 조국 민정수석비서관을 경질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 대통령은 ‘검찰을 생각한다’는 책에서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럽다’고 했다. 그래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이미 민변,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의 ‘코드 인사’를 완료해 탄핵 등 최악의 상황에 대한 방어막은 완성했다. 여기에 법무부 등도 개방직에 민변 출신을 배치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를 보면 검찰이 언제 태도를 표변할지 모르는 상황에 대한 안전판이 절실했을 것이다. 공수처가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수사기관이라고 주장하지만 ‘공수처 검사 인사위원회’가 친여 인사로 장악되면 민변 등 코드 법조인들의 공수처 진출이 자명하다. 2년이 되도록 대통령 친인척, 수석비서관 이상을 감찰하는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고 비워둔 청와대가 공수처에만 이렇게 목을 매는 이유가 있다. 벌써 일각에서는 초대 공수처장에 전직 고위 검사장을 거론하는 이들도 있다. 검찰과 국회를 견제할 공수처라는 새로운 칼이 생긴 셈이다.

최근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에서도 드러났듯이 검찰이 청와대 수석비서관에 대해 수사도 못 하는 것을 보면 공수처가 살아 있는 권력을 겨눌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제보자인 김태우 전 수사관은 기소하면서 상관인 조 수석과 임종석 전 비서실장 등은 털끝 하나 건들지 못했다. 지난주 국회 몸싸움 현장에서 이해찬 대표는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를 향해 “한번 혼나 볼래”라고 소리쳤다. 야당을 청산해야 할 적폐로 여기고 씨를 말리겠다는 ‘이해찬식(式) 재집권 전략’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