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권리옹호 Child First>방파제만 맴돌던 바닷가 아이들 “맘껏 뛰놀 곳 생겼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경북 포항시 구룡포 마을 어린이들이 ‘구룡포 아동놀이 문화공간’에서 안전 매트 위를 맘껏 뛰어놀고 있다. ‘과메기’ 산지로 유명한 구룡포 마을 주민들은 아동 놀이 문화공간이 지난해 11월 문을 열기 전만 해도 성어기 철이 돌아올 때마다 아이들을 방임할 수밖에 없어 마음을 졸여야 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제공

포항 ‘아동놀이 문화공간’ 운영

갈곳없던 구룡포 초·중·고교생
“안전한 문화시설 만들어주세요”
‘놀 권리’ 알리며 스스로 캠페인

어린이재단·아동복지委 힘보태
놀이기구 갖춰 작년 11월 오픈
市 ‘다함께 돌봄 사업’ 연계도

“방파제에서 아이들만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과메기 산지로 유명한 경북 포항시 구룡포. 이 마을 주민들은 과메기·대게 성어기인 겨울철만 돌아오면 아이들 안전 문제로 마음을 졸여야 했다. 학교는 겨울 방학에 들어가고 부모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과메기 손질로 바쁜 날을 보내야 하는 터라 아이들끼리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북지역본부의 김은지 사회복지사는 1일 “2015년 마을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는데, 아이들 대부분이 방과 후에나 방학 기간에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밤 8~9시나 돼야 집에 들어온다고 했다”면서 “방파제에서 아이들끼리 시간을 보내고 끼니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걱정하는 마을 주민들도 좀처럼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일손이 부족해 부모가 모두 배를 타고 나가면 1박 2일 동안 혼자서 지내야 하는 아이도 많았다.

이때부터 어린이재단과 지역 주민들은 아이들의 안전과 방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았고 지난해 11월에야 결실을 보았다. 경북 포항시에 마련된 ‘구룡포 아동놀이 문화공간’이 이렇게 빛을 본 것이다.

어린이재단 경북지역본부가 지역 활동가와 손잡고 2008년 조직화를 도운 구룡포 아동복지위원회가 구심점 역할을 했다. 아동복지위는 지역 주민 76명이 ‘우리마을 아이는 우리가 지킨다’ 구호를 내걸고 활동하고 있다. 아동복지위원회에는 어린이재단 외에도 구룡포 지역자생단체, 구룡포 지역 활동가, 아라장터 추진위원회, 초록우산 드림오케스트라, 아동자치회 등과 함께 지역의 아동이슈를 해결해 나가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아이들 스스로 놀이 문화 공간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제안했다는 점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구룡포 마을 어린이들로 이뤄진 아동자치회가 놀이문화 공간의 필요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실제로 아이들로 이뤄진 아동자치회는 2015년 9월 지역 사회의 놀이 공간 부재로 인한 문제를 인지하고, 아동 스스로 ‘놀 권리’ 보장과 ‘아동 놀이 문화공간’ 마련의 필요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2016년 8월 아동자치회 회원들은 제13회 대한민국 아동총회(보건복지부 주최)에 경북지역대표로 참석해 구룡포 지역 내 아동을 위한 놀이 공간이 부족한 상황을 알렸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최종결의문 제3항으로 ‘아동의 놀 권리 실현을 위해 안전하고, 접근성이 보장되는 아동전용복합문화시설을 잘 만들고 관리해 주세요’를 채택하게 했으며 국회에서도 이를 발표했다.

이 같은 아이들의 노력이 도화선이 돼 놀이 문화 공간 조성 사업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기 시작했다. 초록우산 드림 오케스트라는 2016년 9월 제4회 정기연주회를 통해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없는 열악한 구룡포의 놀이 환경문제를 알리고 이슈화했다. 2017년 3월에는 어린이재단과 함께 아이들이 꿈꾸는 아동놀이 문화공간의 모습을 구상하고, 구룡포 초·중학교 전교생을 대상으로 아동을 위한 놀이문화 공간의 필요성 및 이용 정도, 선호시설 등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같은 해 4월에는 지역 아동과 학부모, 주민들과 함께 아동놀이 문화공간 마련을 위해 ‘선진지’(양양 1318 무산지역아동센터·태백 철암도서관) 답사를 진행했고, 이를 통해 아동놀이 문화공간을 디자인할 수 있었다.

아동복지위원회는 급기야 자금 마련을 위해 저금통 캠페인과 송아지 사육, 구룡포 아라장터 지원, 후원자 개발 등 다양한 노력을 벌였다. 이에 힘입어 2018년 6월 아동놀이 문화공간의 내부 디자인을 결정하고 공사를 단행할 수 있었다. 아동놀이 문화공간에 필요한 놀이교구로 단장을 한 구룡포 아동놀이 문화공간이 마침내 11월 6일 문을 연 것이다.

지금은 보건복지부·포항시의 ‘다함께 돌봄사업’과 연계돼 아동놀이 문화 공간이 새롭게 운영되고 있다. 해당 사업은 초등학생에게 상시·일시 돌봄, 등·하원 지원 등 지역 맞춤형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방과 후 돌봄이 필요한 모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상시·일시 마을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지난해부터 시작해 현재 20개소가 신설된 상황이다.

구룡포 아동복지위원회와 포항시는 이를 위해 협약을 맺고 구룡포 아동놀이문화공간을 2019년 다함께 돌봄센터 1호점 ‘구룡포 꾸러기 마을 돌봄터’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전국 최초로 민간과 지자체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다함께 돌봄센터다.

구룡포 아동놀이 문화공간은 앞으로 지역사회 아동을 위한 다양한 문화 체험의 장으로 역할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아이들 교육 문제로 동네를 떠나는 가구가 적잖은데, 아동놀이문화공간이 활성화하면 지역 사회의 인구 감소 문제를 막는 데도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사회복지사는 “아이들이 영화를 보러 나가려고 하면 버스를 타고 30~40분 이동을 해야 한다”면서 “아동놀이문화공간에서 영화도 보고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관범 기자 frog7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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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권리옹호 Child First’는 문화일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공동기획으로 진행하는 연중캠페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