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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평 게재 일자 : 2019년 05월 02일(木)
하노이 결렬 두 달, 한국만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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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용 前 외교부 차관

北은 당황 벗어나 3갈래 전략
버티기, 友軍확보, 저강도 도발
‘연말’은 김정은 위한 시간벌기

文정부엔 여전히 희망적 사고
조기 정상회담 매달리지 말고
美와 조율하며 北에 할 말 해야


하노이 미·북 회담 결렬 두 달여가 지난 지금 미국과 북한은 나름의 전략 실행에 들어간 것 같다. 미국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화의 문은 열어 놨지만, 북한이 진정한 비핵화로 나와야 한다는 요구는 요지부동이다. 미 재무부의 대북 제재 발표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번복한 것도 북한이 협상장을 뛰쳐나갈 명분을 빼앗았다는 점에서 묘수였다. 회담 결렬 직후 당황한 모습을 보이던 김정은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럭저럭 버티기 전략 아래 3개 세부 전략을 가동하고 있다.

우선, 제재 완화가 당분간 힘들다는 판단 아래 북한 주민들에게 자력갱생 의지를 고취하면서 하노이 회담 실패의 책임을 물어 협상팀을 교체했다. 둘째, 미뤄왔던 러시아 방문을 통해 우군(友軍) 확보 외교에 시동을 걸었다. 머잖아 시진핑(習近平) 주석과의 회담도 예상된다. 김정은이 10개월간 4차례 방중한 만큼 시진핑의 방북이 정상이지만, 미·중 무역 협상에 손발이 묶인 중국이 움직이지 않으면 5차 방중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의 대화에는 당분간 응하지 않을 것이다. 기만전술이 들통난 이상 만나봐야 제대로 된 비핵화를 하라는 요구밖에 들을 게 없기 때문이다. 셋째, 저강도 도발이다. 김정은은 지난달 17일 신형 전술유도무기 시험을 참관했는데 미국 반응을 보면서 도발 수위를 높여 나갈 것이다.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등 고강도 도발은 신중을 기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예시킨 대북 제재 재부과와 한·미 연합훈련 실시, 나아가 미국의 군사 옵션 위험성이 있어서다.

김정은이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고 했지만, 실은 마땅한 출구가 없는 자신에게 시간 여유를 준 것이다. 내년에 가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전망이 녹록지 않게 돌아가면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을 시도할 수 있고, 잘 안 되더라도 차기 대통령 취임까지 기다리면 된다. 만약 트럼프 재선이 유망하다고 해도 선거를 앞둔 트럼프와 협상하는 게 지금보다는 낫다는 계산이다. 북한엔 익숙한 게임이다. 문제는 제재 압박을 견뎌내야 하는데 이는 김정은으로서도 큰 고민이다. 북한 경제는 2017년부터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고, 2013년 30억 달러에 이르던 대중 수출이 지난해엔 2억 달러 남짓으로 쪼그라들었다.

트럼프도, 김정은도 당장 협상에 나설 생각이 없다면 옆에서 뭐라고 해도 잘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희망적 사고가 아니라 객관적 상황 판단을 바탕으로 전략을 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노이 회담 전후의 실패가 되풀이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회담 결렬을 예측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회담 결과가 기대와 다르게 나오자 미·북 간 대화 조기 재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추진 등 비현실적인 대책을 내놓았다. 그 결과 미국에 불신을 샀고 북한에는 가볍게 여겨지게 됐다.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통해 한·미 간 같은 목소리를 내기로 한 것은 의미 있는 성과지만, 트럼프 메시지 이야기가 공개될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김정은 입장에선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인 트럼프가 듣기 좋은 메시지라면 왜 직접 보내지 않았을지 생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조급함이 앞선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북한이 연말까지 버티기로 한 이상 당장 대화 국면이 깨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비핵화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3차 미·북 정상회담은 어렵고 설사 열리더라도 아무런 성과가 없어 오히려 대화 모멘텀이 붕괴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미·북 정상회담 조기 개최 추진이 아니라, 한·미 간에 비핵화 로드맵을 정교하게 조율하고 이를 기초로 북한에 핵을 포기하고 경제발전을 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 중일 때임을 설득하는 것이다. 한·미 간 깊이 있는 협의가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북한도 우리와 대화를 원하게 된다. 국제관계에서도 대화를 하자고만 하는 건 하책이고 상대가 대화를 원하도록 만들어야 당당한 외교가 가능하다.

끝으로, 북한의 억지와 오만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짚어야 한다. 북한의 외무성 부상이 우리 대통령을 거명하며 주제넘은 말을 하는데도 가만히 있는 건 안 된다. 대통령 해외 방문 때 의전을 놓고 다투는 것은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국가에 대한 존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북한이라고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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