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강제징용 ‘현금화’ 파장과 文정부의 韓日 악화 방치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거듭하는 가운데 나루히토 새 일왕의 즉위를 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자는 의견이 양국에서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톱 다운’ 방식으로 풀자는 방안에서부터 퇴위한 아키히토 국왕이 개인 자격으로 한국을 찾자는 아이디어까지 나올 정도다. 그러나 수시로 돌출하는 과거사 문제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 대리인 측이 일왕 즉위식이 열린 1일 지방법원에 일본제철과 후지코시의 국내 재산 매각 신청을 냈다. 레이와(令和) 시대 개막을 국가적으로 경축하는 일본 입장에서는, 잔칫집에 재를 뿌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국내 사법적 절차의 측면에서 볼 때, 대리인 측이 압류 재산 매각 신청을 통한 ‘현금화’에 나서는 것도, 문 정부가 사법 절차일 뿐이어서 행정부의 개입 여지가 없다고 밝히는 것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국정 전반을 고려해야 하는 집권 세력의 측면에서는 무책임한 행태다. 레이와 시대 개막에 대한 일본의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런 움직임은 그나마 일부 남아 있는 일본 내 지한파와 한국 편을 드는 시민사회의 입지를 좁힐 것이다. 일본 정부와 경제계로서는 당연히 총력 반발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1일 일본 외무성은 주일 한국대사관 측에 항의를 전했다.

한·일 관계는 복잡하고 어렵다. 그러나 안보와 경제, 미래를 생각한다면 어떻게든 풀어야 한다. 문 정부처럼 사법부 일이므로 어쩔 수 없다며 방치하는 것은 악화를 조장하는 일과 다름없다. 지난해 11월 국무총리 산하에 TF를 만들었지만,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일본 측은 한·일 청구권 협정 제3조 1항에 근거한 정부 간 협의를 요청하고 있다.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전쟁 중에도 협상은 한다. 일왕 교체기는 양국 관계를 정상화할 좋은 기회다. 두 정상이 만나 ‘총론 우호’부터 합의하고 ‘각론 조정’에 들어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