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손 잡아주지 않았다… 12살 소녀의 ‘짧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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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부에게 살해 당한 女중생

부모 이혼 후 친부 상습학대
옮겨간 계부 집에선 성추행
친부에게 돌아와 신고했지만
경찰은 매뉴얼 따지다 失期
친모마저 동조…‘보복 살해’

소녀에게 세상은 차갑다 못해 잔인했다. 친부의 폭행과 계부의 성적 학대에 몸과 마음이 망가져 친모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결국 계부에게 보복살인을 당했다. 경찰은 매뉴얼만 되뇌다 참극을 방치했다. 이 부끄러운 죽음 앞에서 정부기관과 아동보호단체의 사과나 반성은 없다. 정치권은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정치공방에 빠져 고개 한번 돌리지 않는다.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2위 경제 대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3일 전남경찰청과 광주경찰청 등에 따르면 A 양은 2009년 부모가 이혼한 후 전남 목포에서 친아버지 집에 살았지만, 친부로부터 수시로 매를 맞는 학대를 당했다. 친부가 형사입건된 2016년 5월 이후 광주의 친모 유모(39) 씨 집으로 옮겨와 살았으나 이번엔 계부 김모(31·구속) 씨로부터 신체적 학대를 당했다. 이후 2018년 초 다시 친부 집으로 거주지를 옮겼고, 친모 집을 오가며 생활하던 중 계부 김 씨로부터 성적 학대까지 당했다고 경찰에 호소했다가 이에 앙심을 품은 김 씨의 보복으로 한 맺힌 생을 마감했다. 손꼽아 기다리던 수학 여행을 이틀 앞두고 있었다.

피해 신고를 받은 경찰 대응이 적절했는지도 논란이다. A 양의 친부가 계부 김 씨를 A 양과의 ‘음란물 교환’ 등을 문제 삼아 목포경찰서에 진정한 것은 지난달 9일 오후. 목포서는 매뉴얼대로 범죄발생지와 가해자 거주지를 관할하는 광주경찰청에 사건을 이송했지만 서류 우편 발송 등에 시간이 걸려 사건 처리가 지연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사건 처리 과정에서 경찰 대응의 문제점은 없었는지, 친부와 계부 모두에게 잦은 학대를 당했던 A 양에 대한 사회적 돌봄 서비스가 적절했는지 등에 대한 직권조사를 하기로 해 그 결과가 주목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친부와 계부의 학대를 받아 양쪽 집을 오간 A 양에 대해 피해 사실을 인지하고 있던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대책을 마련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또 피해자 신변보호 결정은 지난달 14일 전남해바라기센터에서 A 양을 조사할 때 했어야 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경찰 수사단계에서 학대 정황이 발견되면 부모로부터 자녀를 우선 분리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도 많다. 학대 부모의 친권을 박탈하는 아동학대범죄처벌특례법이 있지만, 요건과 절차가 까다로워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광주지법은 전날 친모 유모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범행 가담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광주 = 정우천 기자 sunshin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