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나>“붓을 잡듯 섬세하게 터치… 쇼트게임·퍼팅서 발군의 실력”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왕열 화백이 지난달 27일 경기 용인시 고기리 작업실에 설치된 말을 형상화한 작품 ‘명상’ 앞에서 골프채를 들고 스트레칭하고 있다.

왕열 단국대 예술대학 동양화과 前 교수

1996년 입문…1년째 싱글패
빠르게 된 싱글이 오히려 ‘毒’
한동안 열정식어 점수 안나와

작업장보다 확트인 전경 좋아
요즘은 다시 라운드 자주나가
각양각색 코스 보는게 즐거움

프로에게 레슨 받으며 리빌딩
야구하듯 샷하니 비거리 늘어
골프는 자연스러운 흐름 중요

왕열(59) 단국대 예술대학 동양화과 前 교수는 ‘무릉도원(유토피아)’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해온 중견 화가다.

왕 화백을 지난달 27일 경기 용인시 고기리 자신의 작업실 ‘무릉도원을 거닐다’에서 만났다. 왕 화백은 최근 건물 뒤쪽에 골프 연습을 할 수 있는 간이 타석과 그물을 설치해놨다. 왕 화백은 “골프를 실컷 치려고 마음먹었지만 뜻대로 되질 않는다”고 말했다.

홍익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왕 화백은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60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국내에서는 동숭동 미술회관, 인사동 아트센터, 예술의전당, 천안아트센터 등 굵직한 전시관에서 열었고 해외에서는 독일 쾰른 아트센터를 비롯해 스위스 취리히, 프랑스 파리 등지를 두루 거쳤다. 그리고 지난해 한·중 수교 25주년을 맞아 ‘한·중 교류 초대전’에 초대됐다. 당시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치바이스(齊白石)의 작품이 한국에서 전시됐고, 왕 화백 작품은 20일 동안 후난(湖南)성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왕 화백의 골프 입문은 1996년. 왕 화백은 1994년 단국대 교수로 임용됐다. 단국대 예술대학은 천안캠퍼스에 있었다. 혼자 천안에서 생활할 무렵 퇴근한 뒤 딱히 할 일이 없던 차에 골프연습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후 아침 일찍 연습장에 갔다가 학교로 출근했고, 퇴근 후에도 저녁을 먹은 뒤 연습장에 다시 갔다. 한겨울 추위에도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열심히 연습했다. 왕 화백은 그 연습장에서 가장 열심히 연습한 골퍼 중 한 명이었다. 연습장 동호인 모임에 자주 나갔다. 모임에는 동료 교수나 사업가가 여럿 있었다. 이들과 친해지면서 자주 실전 라운드를 치렀다. 1년 만에 싱글 패를 받았다. 당시 30대였던 왕 화백은 프레야 충남CC(현 IMG골프장)에서 77타를 쳤다. 그날은 말 그대로 ‘되는 날’이었다. 마지막 18번 홀에서 1.2m 버디를 넣었으면 76타까지 칠 수도 있었지만 놓쳐 77타를 기록했던 것. 여러 차례 70대 문턱에서 마지막 홀 고비를 넘지 못하다 생애 첫 싱글 스코어를 챙겼다. 왕 화백은 늘 붓을 잡고 섬세하게 터치하는 화가였기에 골프에서도 천재적인 손놀림을 발휘했다. 쇼트게임, 특히 그린에서는 퍼팅 실력이 뛰어났다. 학교에 얽매이다 보니 실전 라운드는 1주일에 많아야 1∼2번뿐이었다. 그렇지만 골프를 배운 지 6개월도 안 돼 안정적인 80대 스코어에 진입했다.

그런데 골프가 너무 쉽다는 생각이 들면서 왕 화백의 골프 전성기는 이내 사그라들었다. 한 달 뒤 싱글 기념패를 받던 날 리턴매치에서 왕 화백은 90타를 넘겼다. 빠르게 싱글 스코어에 도달했던 게 되레 독이 됐다. 골프는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고, 골프 열정이 식었다. 왕 화백은 이후 지금까지 70대 스코어는 몇 번은 더 쳤지만 1년 만에 기록했던 그 한계를 25년 동안 넘지 못하고 있다.

왕 화백이 지금도 유일하게 즐기는 운동은 골프밖에 없다. 실내에 앉아서 작업하다 보니 골프장처럼 확 트인 전경을 접할 기회는 오직 골프 칠 때뿐이기에 여전히 골프를 즐긴다. 왕 화백은 요즘에도 주 1∼2번 정도 라운드를 나가는 편. 골프 약속만큼은 전라도, 경상도를 마다치 않는 왕 화백은 “아마도 한국의 좋고 멋진 소나무는 골프장에 다 있을 것 같다”며 “자연과 어우러진 각양각색의 코스를 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화백은 홍익대 미대 출신으로 구성된 한국 심묵회 회장을 지내면서 ‘미술인 골프대회’를 주관, 6∼7팀을 모아 대회를 열기도 했다. 미대 교수와 전업작가 등이 골프장에 모여 하루를 즐긴다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왕 화백은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무릉도원(유토피아)’이 주된 배경이 되고 있다”며 “그림을 통해 현대인들의 쉼터를 제공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원색의 컬러, 특히 붉은색이 많이 사용된다. 그의 붉은색에 대한 철학은 사람에게 기운을 북돋워 준다는 것. 또한 그림 배경으로 ‘새’와 ‘말’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림에서 새들은 ‘가족이 함께 여행하는 것’이며 말은 ‘명상’을 의미한다고. 특히 사람을 ‘목이 긴 새’로 자주 표현하고 간혹 등장하는 덤불 등의 식물은 사람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파초로 여긴다.

왕 화백은 요즘엔 골프에 대한 마인드가 바뀌었다. 왕 화백은 “이왕 골프를 하는데 스코어도 좋고, 기분도 좋게 하기 위해 스스로 스윙을 다듬기로 다짐했다”면서 “얼마 전부터 틈나는 대로 대전까지 찾아가 알고 지내던 프로에게 레슨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골프 입문 후 1년을 빼곤 연습에 대한 기억이 가물거렸던 왕 화백에게 20여 년 만의 레슨은 충격이었다. 프로에게서 스윙이 너무 부드러워 거리가 나질 않으니 야구를 하듯 패듯이 치라는 조언을 받았다. 이후 거짓말처럼 드라이버 비거리가 20야드 정도 늘었다. 왕 화백은 “오른손을 많이 활용하라는 얘기였다. ‘왜 오른손잡이가 오른손을 안 쓰고 왼손만 쓰냐’며 타박했다”고 설명했다. 레슨을 받은 이후 드라이버 헤드 스피드가 빨라졌고, 아이언 샷에 파워가 실렸다. 그린에서 스핀을 먹고 딱 멈추는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이후 왕 화백은 골프에 대한 자신감과 재미를 느꼈다. 요즘에는 동반자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샷이 좋아졌다”고 칭찬한다.

왕 화백은 “미술과 골프는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워야 하기에 순리대로 흐름을 즐기면서 해야 즐거워진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골프는 특히 동반자끼리 서로 배려해야 하는 스포츠”라고 말했다. 한 번은 골프를 친 뒤 함께 식사하던 중 서로 의기투합해 다시 골프장으로 올라가 하루에 두 번을 같은 코스에서 같은 멤버로 친 추억도 있다.

글·사진=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