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도슨트로 활약 중인 윤정애(왼쪽) 씨와 박귀주 씨가 도슨트의 의미와 역할, 보람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미술관 도슨트 윤정애·박귀주씨
미술사 등 이론교육 받고 투입
전시마다 자료준비·공부 필요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자존감
봉사활동이지만 큰 보람 느껴”
“쉬운 질문으로 관람객과 대화
미술에 대한 진정한 소통의 장”
서울시립미술관 해설사 153명
대부분이 40∼60대 여성들
“천경자 화백은 미술사적으로는 전통 한국화 기법을 계승하면서 서양미술 양식을 흡수, 독자적인 화풍을 개발했습니다 …(중략)…지금 이 작품은 ‘생태’라는 작품이고요. 1951년 한국전으로 부산에서 피란생활할 때 발표된 작품입니다. 당시 천 화백은 집안이 기울고, 여동생은 폐결핵으로 사망한 데다 첫 번째 결혼생활에도 실패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림에는 모두 35마리의 뱀이 그려져 있는데 당시 천 화백이 사랑하던 남성의 나이가 35살이었다고 합니다.”
지난 1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상설 전시실에서 도슨트 박귀주(여·59) 씨가 천경자 화백의 초기작 ‘생태’에 대해 관람객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생태는 한국전 당시 부산에 피란 간 천 화백이 그린 ‘뱀 그림’이다. 박 씨를 둘러싼 관람객들은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들으며 그림을 감상했다.
도슨트(docent)는 ‘가르치다’라는 뜻의 라틴어 ‘docere’에서 유래한 용어로, 소정의 지식을 갖춘 안내인을 말한다. 좀더 쉽게 말하면 미술관의 작품 해설사다. 그런 점에서 전시회 기획단계부터 전시 디스플레이, 리플릿 제작 등 전시회에 관한 전반적인 일을 하는 큐레이터와 구별된다.
도슨트는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자원봉사 개념의 일이다. 그럼에도 최근 경력 단절여성은 물론, 퇴직 여성 그리고 자녀교육의 부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가정주부 등 중년여성들에게 인기 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도슨트로 활약 중인 윤정애(여·62), 박귀주 씨는 “비록 봉사활동이지만 일을 하며 얻는 보람과 기쁨 때문에 10년 넘게 도슨트 일을 하고 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대학에서 사학과 박사과정을 밟으며 교양과목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남편 따라 필리핀에서 몇년 살고 돌아온 후 새일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 러던 차에 발견한 것이 서울시립미술관의 도슨트 1기 모집 광고였습니다. 그때가 2003년이었습니다. 선발돼 교육을 받는데 서울미술사 등 많은 것을 배웠죠. 흥미로웠습니다.”
‘1기’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16년 전 도슨트 생활을 시작한 윤 씨는 곧바로 ‘한·중·일 초상화 대전’과 ‘샤갈 전’ 등에 투입됐다.
이에 대해 박 씨는 “도슨트는 ‘급료’ 등을 생각하면 뛰어들 수 없는 전형적인 자원봉사 일”이라며 “그 같은 부담 없이 공부 쪽으로 좋아하시는 분이 하시면 만족도는 분명히 높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도슨트 생활을 하는 동안 지식을 축적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가장 컸다”고 강조했다. 박 씨는 윤 씨보다 1년 늦은 2004년부터 서울시립미술관 도슨트 2기로 관람객을 맞았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박 씨는 프랑스에서 오랜 기간 살다가 귀국,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외국어 도슨트를 뽑는다고 하자 “미술 전공은 아니지만 도슨트 일을 하면 적어도 프랑스에서 익힌 프랑스어는 잊어먹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프랑스어’ 부문에 지원했다고 한다.
그들의 설명에서 알 수 있듯 도슨트 일을 하려면 자부심과 책임감, 사명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도슨트는 늘 자료를 뒤지고, 책을 읽으며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 박 씨는 “아무래도 미학, 철학 개념을 많이 끌어들인 작가의 작품 전시가 어려웠고, 지난해 인공지능(AI)을 테마로 한 전시는 도서관에서 책 빌려다가 여러 날 공부하고 준비했지만 벅찬 느낌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윤 씨는 “미술관에서 열린 미디어시티 비엔날레 중에 하이테크놀로지에 입각한 영상미디어나 개념미술 등 생소한 분야와 맞닥뜨릴 때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 점 때문에 미술관에서 도슨트로 선정된다고 해도 그 이후 한국미술사, 동양미술사, 서양미술사 등 미술사와 함께 전시 전반에 걸친 미술 작품 설명 등의 이론교육을 미술관으로부터 받는다. 그 같은 이론교육과 더불어 전시 동선에 대한 설명 등 전시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 전시 시 안내 방법, 매너와 태도 등 다양한 교육을 받는다. 도슨트 일이 당사자에게 그처럼 자존감을 높여주는 일이라면 이를 소비하는 관람객들에게는 어떨까.
윤 씨는 “2000년대 초반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에 비해 요즘 관람객은 좀 산만한 분위기를 보여준다”며 “인터넷 등 정보 습득 경로가 많아서 그런지 도슨트의 설명을 ‘원 오브 뎀(One of Them)’ 정도로 치부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이어서 “정보의 홍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시대에 도슨트는 직접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로 작품 앞에서 서로의 ‘리액션’을 보면서 얘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이 아니냐”고 강변했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활약 중인 도슨트는 모두 153명. 대부분 40대에서 50대 여성이다. 여기에 60대 여성이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도슨트 제도를 도입하던 2000년대 초반에 비해 인원수가 늘었기 때문에 주 1회 정도 도슨트 활동을 한다. 시간은 약 40∼50분이다. 연령대는 20대부터 60대까지 고르게 분포돼 있지만 ‘자원봉사’ 일이라는 한계 때문인지 20∼30대 여성의 경우 외부에서 ‘직업’이 생기면 도슨트를 그만두기 때문에 인원은 많지 않다고 한다. 서울시 규정에 의하면 도슨트 같은 자원봉사의 경우 4시간에 교통비 조로 1만1000원이 지급된다고 한다.
“주 1회 정도 하기 때문에 도슨트 일이 부담될 정도는 아니지만 일이 배정 안 된 날에도 미술관을 찾는 일이 많습니다. 특히 전시가 시작되는 첫 주에는 관객의 입장에서 도슨트를 따라다니며 설명을 듣습니다. 서로 모니터링해 잘못 실수하는 부분을 체크하며 도와주는 것이죠. 그리고 도슨트끼리도 서로 입을 맞춰야 할 필요도 있고요(웃음)”
윤 씨의 얘기다. 미술관에도 ‘진상 관람객’이 종종 있다고 한다. 박 씨는 “다른 박물관의 외국어 도슨트 현장을 찾아갔는데 관람객과 도슨트가 부드럽게 대화식으로 작품에 관해 소통하는 장면이 보기 좋았다”며 “우리는 그런 생산적인 대화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저는 관람객들이 질문하는 것을 권하지 않는 편입니다. 질문을 많이 하시는 관람객들의 경우 대부분 본인 기준에 맞춰 집요하게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다른 분들이 설명 듣는 것에 방해가 되죠. 많지는 않지만 어떤 분들은 외국의 미술관 방문 등에서 얻은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 나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것이 소통이라고 볼 수는 없죠.”
여기에 대해 윤 씨는 조금 다르게 말했다. “맞는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제가 질문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자∼, 그림 속 사물이 뭐 같아 보이세요’ 정도로 작품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한 것이죠. 절대 어려운 지식은 물어보지 않아요. 자존심에 상처만 줄 수 있으니까요.”
윤 씨의 도슨트 활동에 대한 애정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같은 나이 대 여성에게 도슨트 일을 추천하고 싶냐”고 묻자 그는 “도슨트 일은 자존감을 높여주는 일이다. 내가 무언가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기쁘다. 여기에 봉사활동의 기쁨과 연이어지는 새로운 작가와의 만남, 그리고 관람객과의 만남이 늘 기대되는 좋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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